와하까는 멕시코에 있는 주 이름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투쟁의 이름입니다. 사빠띠스따의 투쟁으로 유명한 치아빠스 주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주로 지금 그곳에서는 거대한 싸움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싸움은 우리 삶의 존엄성을 지키고, 지긋지긋한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싸움입니다.

그 곳의 투쟁에 대한 소식 및 투쟁의 사진들을 볼 수 있는 곳을 몇 곳 링크해두었습니다. 와하까 투쟁과 연대하는 마음으로 이 링크가 끌없이 이어지길 바랍니다. 그리고 와하까 투쟁이 승리로 끝나 이 링크가 더 이상 늘지 않아도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삶의 존엄성으로 충만해질 수 있는 링크가 계속 이어지길 바랍니다.

한국에서도 와하까 싸움에 함께하기 위한 움직임이 있습니다. 2006년 12월 22일 금요일은 와하까 민중의회(APPO)와 사빠띠스따 민족해방군(EZLN)이 함께 정한 국제공동행동의 날입니다. 한국에서는 오후 2시에 멕시코 대사관에서 항의방문이 있을 예정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 날인 12월 23일 토요일 저녁 7시 광화문역 옆에 위치한 미디액트에서는 와하까 투쟁을 다룬 영상 상영이 있을 예정입니다.

와하까 싸움에 함께 합시다.

"싸빠띠스따가 와하카 인민들과 주고 받을 메시지는 오직 이것이다 : 당신들은 혼자가 아니다, 당신들은 혼자가 아니다."

1. 민주주의로 향하는 길, 멕시코 와하카의 민중 봉기와 인디미디어 / 김해숙 [전문보기]

2. 와하까 민중봉기 / 브래드 윌의 마지막 영상

""지난 10월 27일은 민중의 저항이 무엇보다 그보다 거세게 이루어진 하루였다. 와하카 지방정부는 물론 멕시코 정부도 연방경찰을 투입하여 진압에 나섰다. 와하카 지역에서는 수 대의 헬기가 마을 주변을 정찰했으며, 약 4천 명의 경찰이 강제 진압에 동원되었다. 시위 중인 교사들과 시민들은 계속적으로 율리시스 뤼즈의 해임을 요구했으나, 사태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그는 단호하게 시위대의 요구 사항을 거절하고, 이러한 사태가 오래가지 못하고 종결될 것이라 단언했다. 10월 28일, 멕시코 정부 역시 평화 운운하며 시민들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기보다는 경찰투입으로 사태의 종결을 서둘렀다.

시위가 장기화되면서 와하카의 투쟁은 멕시코 국내는 물론 국제적인 관심을 끌게 되었다. 물론 결정적인 운동의 흐름을 만들어낸 사건은 단연 '브래드 윌(Bradley Roland Will)의 죽음이었다. 그는 10월 27일, 사복을 입은 무장괴한에게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 그는 뉴욕의 인디미디어센터의 다큐멘터리 활동가로, 멕시코 이전에 이미 볼리비아와 브라질에서도 활동한 바 있었다. 그는 당시 시위대의 약간 뒷부분에서 촬영을 진행하고 있던 상태였으며, 정확하게 가슴 아래쪽에 총격을 입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있던 그가 총격을 받고, 그것도 급소가 정확히 맞고 사망한 것에 대해 표적 사격이라는 의구심도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 <참세상TV>에서 [영상보기]

3. 21세기에도 혁명은 계속 된다 / 돕헤드 (이 밖에도 돕헤드의 블로그에서는 와하까 소식을 계속 접할 수 있습니다.) [전문보기]

4. 싸빠띠스따 공식 성명서 - 와하카 관련 [전문보기]

5. 와하카의 투쟁과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투쟁은 하나다! / 사회진보연대

"멕시코 남부에 위치한 와하카(Oaxaca)는 전통을 간직한 곳이며, 그 지리적 환경은 고고학적으로 중요하다. 역사적인 유물이 많아 관광지로도 유명하다. 와하카의 산맥은 과거 제국주의에 의한 식민지화를 거부하고 자신들의 전통과 생활방식, 정치체계를 지키고자 한 원주민들의 은신처였으며 저항과 인내의 거점이기도 하였다. 와하카 주의 규모는 매우 크며 이곳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고 16개의 언어가 존재한다. 강고하고 독립적인 자치구들도 많이 존재한다. 와하카 주민들은 오랜 시간동안 고유의 자율적이고 집단적인, 자기통치적인 공동체를 유지하며 살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인 배경은 와하카 투쟁의 기원이 되었다. 한편 와하카 교사노조는 26년 동안 지속적으로 민주화운동을 경험했다. 22개 지부로 구성된 와하카 교사노조는 전국교사노조에서 가장 민주적이고 강건한 지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래서 최근 몇 년 동안 와하카 교사노조는 와하카 사회운동을 이끌고 있다." [전문보기]

6. 2006년 12월 10일에 있었던 와하까 민중대행진 사진 [전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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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상영회에 오셨었나요?
    저는, 그날 하루종일 자막 넣는 작업을 하다가
    상영회엔 정작 못갔다는 ㅠㅠ
    마감을 코앞에 둔 원고가 있어서요.
    못뵈어서 넘 아쉽지만, 만날 날이 있겠지요? ㅋ

    디디
    2006년 12월 24일 12시 56분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상영회에는 갔었어요. 30분 전에 가서 미디액트 5층에 있었죠^
      영상은 잘 봤어요. 자막 작업도 깔끔해서 보기 좋았고요. 저는 디디 님이 오셨는지 알았는데 없으셨군요. 이번엔 아쉽지만 나중에 또 인연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즐거운 연말 보내세요^^

       댓글주소  수정/삭제 2006년 12월 25일 04시 40분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들을 땅으로 떠나 보내지만
대지는 우리의 것입니다, 동지여
이 곳에서부터 전의를 다져야 합니다.
전투는 지속될 것이고 우리의 적은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더 많습니다.
언제가 우리가 더 많을 것입니다.
내일은 우리의 것입니다, 동지여"

- 쿠간의 장례식에서 블랑카가 한 대사, 그리고 블랑카의 장례식에서 나온 대사



켄 로치의 「랜드 앤 프리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이 개봉된다고 했을 때 난 「랜드 앤 프리덤」이 다시 보고 싶어졌다. 마치 오래된 갈증으로 목이 칼칼해져서 물을 찾는 느낌 같았다. 대학 1학년 때 혁명에 관한 영화라는 말에 잔뜩 호기심을 가지고 봤지만 잘 이해하지 못해서 그랬던 것일까. 나의 갈증은 무척 오래된 것 같았다.


영화를 다 보고 글을 썼는데 그만 그 글이 모두 날아가서 글쓰기를 그만두었다. 그러다 다시 영화를 처음부터 보았다. 그런데 이 영화는 처음부터 심상치 않은 영화였다. P.O.U.M.(통일노동자당)의 당원이며 이 영화에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노년에 데이브 카(이안 헌트 분)가 집에서 쓰러진다. 두 명의 구급 대원이 데이브가 사는 아파트에 올라가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하는데, 이 아파트 계단에 써있고, 붙여있는 전단지가 예사롭지 않다. 아나키스트를 상징하는 ‘A’ 표시, ‘NOT RACISM’이라고 써있는 붉은 전단지가 일상의 배경으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이 밖에 ‘NF’와 ‘ARA’라는 약어의 낙서가 있는데 이것은 내가 모르지만 무슨 뜻이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혹시 누가 아시면 도움을...) 이 밖에도 이 영화 초반부에는 영화에 끝과 다시 만나는 소도구가 보이는데 그것은 붉은 손수건이다. 이 손수건에 베어있는 슬픔과 아련함은 영화가 끝나면 알 수 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날 때 이 손수건은 투쟁의 상징물이 된다.


이 영화의 마지막 대사는 윌리엄 모리스의 시이다.


“전투에 참여하라

아무도 실패할 수 없다

육신은 쇠하고 죽어가더라도

그 행위들은 모두 남아 승리를 이룰 것이므로”


윌리엄 모리스라는 이름으로 구글에서 검색해보니 이 사람도 무척 흥미롭다. 윌리엄 모리스의 대한 소개는 많지만 그의 혁명성에 초점을 맞춰서 소개된 책은 박홍규 교수가 번역하고 해설한 『에코토피아 뉴스』이다. 이 책에 대한 알라딘의 소개에서 유독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짧게 언급된 이 책의 본문이다.


“지금 제가 당신에게 묻고자 하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노동의 대가가 없는데 어떻게 사람들이 일을 하게 되는가? 특히 어떻게 그들이 열심히 일하게 되는가 하는 점입니다.”

“노동의 대가가 없다고요?”

해먼드는 진지하게 말했다.

“노동의 대가는 '삶'입니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뛰어난 노동에 대해서도 대가가 없지 않습니까?” 내가 물었다.

“아닙니다. 많은 대가가 있습니다,” 그가 말했다.

“그것은 바로 ‘창조’라는 대가입니다. 과거의 사람들이라면 그것을 ‘신이 받는 임금’이라고 말했을지도 모르지요. 뛰어난 일을 뜻하는 ‘창조의 기쁨’에 대해 당신이 대가를 지급받고자 한다면, 그 다음에는 아이를 낳는 데 대해서도 대가 청구서를 보낸다는 말까지 듣게 될 겁니다.”

- 본문 165~166쪽 중에서


이렇듯 이 영화는 ‘혁명을 둘러 싼’ 것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특히 이 영화에서 묘사된 인물들의 모습은 복잡하기 이를 때 없다. (이것에 대해서는 노바리 님의 글에서 잘 묘사되어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 영화도 혁명의 한 과정으로 배치되는 것이 아닐까. 블루칼라의 시인. 왜 켄 로치를 그렇게 부르는지 조금은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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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노동의 대가는 삶, 신이 받는 대가는 창조.
    창조하는 삶.. 아후 아침부터 이렇게 힘이 되는 글을. (감사.. 꾸벅) 단, 쫓기지 않고 자율적으로 창조하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2006년 12월 19일 09시 15분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쫓기지 않고 자율적으로 창조하는 삶"이란 루냐가 추가한 글도 무척 마음에 들어요. '우리가 어떻게 매일 새로워질 수 있는가?' 이 질문은 예전에 내 친구가 그리고 내가 했던 생각이었는데, 루냐의 글이 고민의 고리를 풀 수 있는 하나의 단초를 알려주는 듯 하네요.

       댓글주소  수정/삭제 2006년 12월 19일 09시 58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