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력1 Articles

  1. 2008년 06월 05일 표현력의 계보
일 기 2008년 06월 05일 10시 34분

표현력의 계보

노동은 자본에 반대한다. 하지만 노동이 자본에 반대하는 것으로만 규정된다면 노동의 창조성은 가려진다. 그렇기에 우리는 ‘반대’하는 노동이 아니라 자본을 ‘생산’하는 노동에 주목해야 한다(디오니소스의 노동). 페미니즘은 가부장제에 반대한다. 하지만 페미니즘은 가부장제의 반대항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페미니즘은 가부장제에 의해 삭제되고 죽임당한 ‘여성적인 것’의 활성화와 살려냄(생산), 그리고 그 살아있음 자체로 그 힘을 표현한다. 이럴 때 ‘여성’은 생물학적 구분(차별)(sex), 사회적 구분(차별)(gender)에 갇히지 않고 ‘여성이 아닌 여성’의 시간으로, 젠더적 구분이라는 폭력적 구획의 시간이 아닌 약동하는 살아있는 생명력에 표현의 시간(eros)으로, 삶의 시간(kairos)으로 열린다. 성적 소수자로 불려지는 많은 이름들, 아직 이름이 없지만 곧 이름이 붙여질 그 성적인 이름들은 이성애중심주의에 반대한다. 하지만 이 성적인 이름들의 표현력은 이성애중심적 질서를 넘어선다. 그들 또한 자신을 표현함으로써 존재한다. (반대만이 아니라!)

자본과 가부장제와 이성애중심주의는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표현력을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여긴다. 촛불을 들고 걷고 말하는 것이 이명박(과 그의 집단들)에게는 공격으로 여겨지는 것처럼. 실제로 이것은 공격이기도 하다. 오늘날 말하는 것처럼, 촛불을 드는 것처럼 강한 행동은 없다. 그렇기에 정부는 배후를 찾고, 언로(인터넷, 핸드폰, 동영상)를 차단하려 하고, 단지 거리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경찰을 동원해 잡아 가 버린다.

공격받는다고 스스로 느끼는 자들은 혼란함, 흥분, 우울, 공포 등의 감정들(수동 정념)에 둘러싸인다. 하지만 창조적 힘으로 활성화된 주체들은 유머, 재미, 짜릿함, 즐거운 흥분의 감정들과 그것들의 혁신을 느끼고 추구한다(내가 춤출 수 있어야 혁명이다! 재밌게 놀아라!).

하지만 표현력은 대상을 자신의 표현을 위한 필수 요소로 기입하지 않는다. 그들은 재현과 대상 없이 표현하고 표현할 뿐이다. 그들은 표현들의 소용돌이에서 새로운 것을 공통적인 것을 창안한다.

나는 오늘날 내가 ‘공격받는다’(촉발)고 느끼게 하는 것들에 귀 기울이고 고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나를 불편하게 하고 때로는 격분하게 하고 냉소하게 하더라도. 나의 힘, 표현력은 이것을 온전히 경험할 때, 자랄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네트워크는 이 힘들이 집단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감정의 네트워크. 감정으로 소통하라!). 촛불이 내 초에서 옆의 초로 옮겨지듯이 말이다. 우리들 안에 있는 촛불을 드러냈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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