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아모리1 Articles

  1. 2008년 01월 19일 비독점관계 (5)
일 기 2008년 01월 19일 12시 15분

비독점관계

비독점관계라는 ‘이름’을 ‘사용’하지만 이 이름이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대상을 부정(비(非)―)함으로써 스스로를 규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동안 계속 새로운 '이름'을 고민하다 중단했었다. 비독점관계라는 단어에도 쉽게 도착했던 것은 아니다. ‘일원론의 사랑’이라는 생각을 거쳐 비독점관계에 근접해갔다. 그리고 ‘폴리아모리polyamory’라는 말을 통해 좀 더 적극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다.

독립적인 이름을 갖는다는 점에서 폴리아모리는 비독점관계라는 말보다는 긍정할 수 있는 단어이다. 아쉬운 것은 어떤 힘이 폴리아모리(혹은 비독점관계)를 실현할 수 있는지가 적극적으로 전면에 부각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대일 독점관계와는 다른 방식을 생각할 때 수의 문제는 중요하지만 수의 문제로 환원되지는 않는다("일대일 관계여도 비독점일 수 있다"는 입장들이 있다). 이런 점에서 폴리~ 라는 수식어는 양과 질을 모두 말하는 것으로 생각해야 하고 이런 측면에서 적극적으로 사고되어야 한다. 그리고 본질적인 '힘'에 대해 좀 더 고민해야 하고, 이것이 새로운 관계의 이름에 표현되어야 한다.

'비독점관계'에서 중요한 힘은 '거리두기'이다. 상호독립적으로 서 있으면서도 연결되어 있는 것, 나는 이게 거리두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것은 '있으면 좋고 없으면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아래 인용한 문장은 나의 이런 고민을 깊이 있게 해줄 단초를 제공해준다. 더 구체적으로는 생각중이다. ^^

들뢰즈는 니체에게서 차이에 대한 전혀 다른 태도를 발견한다. 그것은 차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긍정하고 열망하는 태도이다. “유형의 다수성, 자기 자신이고자 하는 의지, 자신을 두드러지게 하고자 하는 의지, 내가 거리를 두는 파토스(Pathos der Distanz)라고 부르는 것은 모든 강한 시대의 특성이다. 오늘날에는 극단적인 것들 사이의 긴장과 간격이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우상의 황혼』, 15:176). 거리의 파토스는 차이를 긍정하려는 열정이다. 차이의 긍정은 차이의 생산과 창조를 의미한다. 이 점은 니체가 『도덕의 계보』에서 고귀한 사람, 강한 사람의 도덕에는 거리의 파토스가 존재한다고 말할 때 더욱 분명해진다. “그들은 이러한 거리의 파토스에서 가치를 창조하고 가치의 이름을 새기는 권리를 비로소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도덕의 계보』, 14:353~354).
-- 『니체, 영원회귀와 차이의 철학』(그린비, 2007) 1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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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허허허 이놈의 비독점관계. 언제 한번 수다를 떨어보자우요-

    navi
    2008년 01월 22일 01시 02분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 개인적으로는 '외국어'인 폴리아모리보단 비독점관계라는 게 이해하기 쉬워요..;_;

    '상호독립적으로 서 있으면서 연결되어 있는 것' 이러한 관계가 꼭 연인들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공동체와 공동체 사이에 필요한 부분이 아닌가 싶어요. 그와 관련해서 '네트워크'라는 색다른 관계에도 관심이 가구요.

    2008년 01월 27일 21시 43분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폴리아모리-비독점관계에 대해서는 좀 더 고민이 필요할 것 같아요. 최근 찾아본 것에 의하면 자료가 엄청 많으니('외국어' 영문입니다. ㅎㅎ) 꾸준히 볼 생각입니다.

       댓글주소  수정/삭제 2008년 01월 27일 23시 01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