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젠더5 Articles

  1. 2008년 06월 19일 "인도의 제3의 성: 히즈라"
  2. 2008년 06월 09일 트랜스/젠더정치학
  3. 2008년 02월 27일 [펌] 나를 증명할 길은 수술뿐인가 / 루인 (6)
  4. 2007년 08월 16일 "한국에서 성적소수자의 가족으로 산다는 것" (7)
  5. 2007년 05월 14일 Un/going Home

인도의 제3의 성: 히즈라

National Geographic Channel에서 방영(9/1/03)한 [터부: 성(Sexuality)] 중에서 "인도의 제3의 성: 히즈라" 부분만을 클립으로 올린다. 마침 전남대학교의 김경학교수가 번역해서 출판한 책 [남자도 아닌 여자도 아닌 히즈라](1998)가 있기에 인류학 영상교재로서의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관심있는 사람은 이 책과 함께 감상한다면 인도 사회의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영상 클립에 대한 서현정 박사의 직접적인 해설에 이어서, 여기에 히즈라에 대한 이해를 돕기위해 인도에서 공부했고, 인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인도 현지에서 철저한 fieldwork을 수행한 경험이 있는 전남대학교 인류학과 김경학교수의 히즈라에 대한 해설을 부탁해본다. 그는 이미 히즈라에 대한 책을 번역한 바 있기에 아마도 더 이상 적절한 분이 없을 것 같다. (이문웅)

참조: 세레나 난다(Serena Nanda)의 [남자도 아닌 여자도 아닌 히즈라](Neither Man Nor Women: The Hijras of India, 1990), (김경학 옮김), 한겨레신문사(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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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제3의 성: 히즈라]

세상에 받아들여지기 위해 성을 완전히 포기해야만 한다면 어떠할까?

새로운 성을 확정하는 것이 어떤 곳에서는 전혀 새로운 초자연적인 능력을 가져다준다. 10억이 넘는 인구를 갖고 있는 인도는 다양한 문화를 가지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분리된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히즈라(Hijra)는 가장 중요하고도 심오한 면에서 남들과는 다른 사람들로, 완전한 남자도 여자도 아닌 제 3의 성을 지닌 사람들이다. 모나 아메드 역시 히즈라이다. 히즈라는 거세를 받은 사람이라는 뜻으로 인도인들은 이들을 자웅동체, 동성연애자, 성불능자, 또는 소명을 받은 자로 여긴다. 이들은 남자도 아니고 남자로 살 수도 없다. 모나 역시 남자로 태어났지만 마음 깊은 곳에 다른 느낌이 있었다고 말한다. 스스로 남자로 생각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는 것이다. 인도에서는 성전환 수술이나 동성연애가 불법이므로 그에게 방법은 히즈라가 되는 것 밖에는 없었다. 히즈라가 되기 위해서 남성의 성기를 제거하여야 했고 거세 후 가슴이 생기고 털이 없어지고 목소리가 바뀌는 신체적 변화를 경험한다. 성기뿐 아니라 성(性)호르몬도 없애는 거세의 탓이었다. 많은 문화에서 제 3의 성은 받아들여지기 힘든 것이다. 특히 종교들의 관점은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불교나 힌두교는 다른 종교들에 비해 비교적 관대한 편이다. 많은 문화에서 거세라는 현상을 살펴볼 수 있지만 현재는 거의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문화적 특성을 배경으로 하여 인도에는 이들 히즈라가 여전히 50만이나 남아있다. 모나는 공연수로서 여러 다양한 행사들에서 춤추고 노래한다. 그리고 사회의 이방인으로서 그 수입으로 살아간다. 히즈라들은 자신들끼리 사제관계, 공동주거로 일종의 가족을 형성한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이들을 감정적, 경제적으로 더욱 뭉치게 하는 것이다.

이들은 남자도 여자도 아닌 존재이므로 초자연적인 느낌을 준다. 인도인들은 이들이 축복과 저주를 모두 내리는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남성성과 여성성을 모두 갖추었기에 특별한 힘이 있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그래서 결혼이나 탄생 축하 잔치에 축복과 공연으로 돈을 번다. 그러나 이들은 그와 동시에 공포와 두려움, 거부감의 존재가 되기도 한다. 사회가 서구화될수록 난폭하고 거칠고 시끄러운 이들을 꺼려하고 부끄럽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히즈라의 경제적 기반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자신이 히즈라가 아닌 한사람의 인간으로 보여지길 바라는 것이 모나의 간절한 소망이다.

(정리: 서현정,; 서울대 인류학과 졸업, 박사, 2001년; 서울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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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히즈라(Hijras): (김경학 교수)

서구문화는 일반적으로 이분법적 특성이 있다. 즉 정신과 신체, 남성과 여성, 동양과 서양, 동성애와 이성애 등 세상은 철저히 이항 대립적으로 분화되어 있으며, 이의 분류와 모순되는 범주는 비정상적인 것으로 취급을 받는다. 따라서 생물학적 성과 문화적 성을 이분법적이고 귀속적이며 불변하는 것으로 보는 서구적 보편주의 내에서는, 이분화 된 성 범주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 예컨대 태어날 때부터 양성적인 사람들(양성구유자)과 자신의 생물학적 성과 반대되는 성에 해당되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동성애자와 성전환 열망자)은 외과적인 수술을 통해서든 정신과적 치료를 통해 어느 한 편의 성으로 교정을 받아야 할 대상이 된다.
그러나 다양한 비서구 문화는 이러한 이분화 된 성 체계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을 처리하는 다양한 방식을 가지고 있으며, 둘 이상의 문화적 성이 있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신화 상으로나 현실적으로도 생물학적 성과 문화적 성이 개인의 일생에 걸쳐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이 존재함을 보여준다. 이러한 문화적인 사례들은 서구의 성 범주와 성애적 정체성이 그 사람의 모든 정체성을 결정짓는 것으로 보는 서구의 보편주의에 대한 재고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이분화 된 성 체계에 대해 도전하고 있는 문화들에는 인도의 히즈라(hijra)집단, 사우디 반도의 이슬람사회인 오만(Oman)의 한에쓰(xanith)집단, 북미 원주민의 베르다체(berdache), 타히티(Tahiti)섬의 마후(Mahu)집단 등이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생물학적 성과 반대되거나 또는 남성도 여성도 아닌 "제3의 성“ 또는 “또 하나의 성”(alternative gender) 범주에 속하는 성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동성애적 관계에서 수동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이들 문화는 서구의 성의 이분화와는 달리 다양한 문화적 성 정체성을 인정하고 있다. 예컨대 북미원주민들 가운데 모하브족(Mohave)은 4가지 종류의 성 정체성, 예컨대 여성, 남성적 속성을 지닌 여성(여성 베르다체), 남성, 여성적 속성을 지닌 남성(남성 베르다체)을 지니고 있다. 이와 같은 문화적 사례 가운데 오늘날까지도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남성도 여성도 아닌 “또 하나의 성” 범주 집단인 인도의 히즈라(Hijra)를 다소 상세히 소개함으로써 서구적 성 범주에 대해 재고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인도의 히즈라는 여장을 하고 여성처럼 행동하는 남성들로 구성된 다소 종교적 색채를 지닌 공동체이다. 히즈라 문화는 모신(Mother Goddess)을 섬기기 위해 자신들의 생식기 제거수술을 받는다. 이 거세수술에는 남근과 고환이 외과적으로 제거되지만, 서구에서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성전환 수술처럼 그 곳에 여성의 질을 이식하지는 않는다. 거세수술을 통해 히즈라들은 남성도 여성도 아닌 존재로 규정을 받는다. 이들의 전통적 역할은 애매모호한 자신들의 생물학적 성의 특성 때문에 남아의 탄생과 혼인의례 끝에 다산과 가계의 지속을 강복하는 의례의 수행이다. 히즈라의 전통적 역할이 영적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되는 이유는 양성구유적 속성과 금욕주의적 속성을 지니는 인도 신성의 삼위일체의 하나인 쉬바신(Shiva)과 모신에 히즈라가 자신들을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이들을 현지조사한 미국의 인류학자 세레나 난다(Serera Nanda)는 수많은 히즈라들 가운데에서 대표성을 띠고 있는 4명 히즈라의 생애사(life history)를 그녀의 저서 ꡔ남자도 아닌 여자도 아닌 히즈라ꡕ(1998, 한겨레신문사)에서 소개함으로써 히즈라들의 다양한 특성을 분석하고 있다. 이들의 공통적인 점은 모두가 생물학적으로는 남아로 태어나, 그 이후의 인생에서 자신의 성 정체성을 변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히즈라가 되는 과정은 급진적이지 않고 상당히 점진적이다. 사람들은 청소년기에 자신과 반대되는 성적 특성을 보일 수도 있다. 예컨대 여장을 하고 여자처럼 소변보고 여성 이름을 지어 부르고, 몸짓, 말투뿐만 아니라 여자와만 손잡고 놀러 다니는 등 모든 면에서 여성적인 특징을 보일 수 있다.
이러한 특징들을 보이는 청소년에 대한 타인들의 반응들, 예컨대 부모와 교사의 부정적인 처벌, 친구들의 괴롭힘, 다른 남자 청소년이나 성인들의 성적 접근 등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외부인들의 반응과 함께 집에서 멀리 도망쳐 구속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욕구, 방해받지 않고 여성적인 행위를 하고 싶은 욕구, 남성들과 성관계를 맺으려는 욕구 등이 부과되면서, 그들은 자신들의 행동을 인정해주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것처럼 보이는 히즈라들과 비공식적 관계를 나누다가 결국 히즈라 공동체에 공식적으로 입문하게 된다.
물론 이들이 히즈라 공동체에 가입함으로써 자신의 성적 모호함을 완전히 해결할 수는 없다. 이러한 가입은 자신에게 새로운 성 역할을 급작스럽게 받아들이게 하지 않고 지금까지의 긴장과 가정불화로 가득 찬 과거 삶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히즈라 공동체로 공식적 입문한 이후에도 자신의 성 정체성의 모호함은 여러 해 지속될 수 있다. 이러한 성 정체성의 모호함은 자신이 거세수술을 받기로 결정을 내리기까지나 수술은 받은 후까지도 계속될 수 있다. 서구인들이 성전환수술을 받은 후 완전한 여성적 정체성을 갖게 된다고 주장하지만 히즈라의 사례를 통해서 보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는 것 같다. 수술 후에도 대부분의 히즈라들은 자신들의 동성애 빈도가 늘어감에 따라 남성이 아닌 여성적인 성 정체성이 점차 강화됨을 알 수 있다.
히즈라들의 이야기에 비추어 보면, 서구 사회과학의 보편적인 주장인 성 정체성과 그 역할이 초기 유년기의 결정적 시기(약 18개월부터 3살까지)에 일단 형성되어지면, 그것이 영구불변한다는 견해를 재고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인도의 히즈라 이야기들은 성 정체성과 성 역할이 인생의 후기에도 변화되어 질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특히 동성애적 행위와 히즈라의 역할 간에 일련의 관련성이 있다는 점은 성 정체성의 발달과정이 급진적이 아닌 점진적인 성격을 보이며, 최소한 일부 사람들은 성 정체성 변화를 평생에 걸쳐 경험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인도의 히즈라 집단에 대한 이와 같은 분석은 다소 치우친 감이 있더라도, 그들이 다른 일반 인도인들과 많은 점들을 공유하고 있으며, 인도 사회와 문화의 많은 요소들을 자신들의 삶 속에 반영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히즈라와 여타 문화에서 등장하는 또 하나의 성 범주에 속한 사람들은 문화적 성 범주와 인간 성애의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다. 비서구문화에서 보이는 또 하나의 성 역할과는 달리 서구의 성전환은 또 하나의 성 범주를 부정하고, 영속적인 이분화 된 생물학적 성과 문화적 성에 대한 문화적 구성물을 오히려 강화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전자와는 크게 다르다. 따라서 서구문화는 성전환 열망자를 과도기적 지위로 규정지으며, 결국 전환을 열망하는 문화적 성에 맞게 생물학적 성을 만들어 줌으로써, 생물학적 성과 문화적 성간의 부조화의 딜레마를 빠져 나와, 성의 이분화라는 “흔들릴 수 없는 명제”를 지켜나간다.
우리 주변의 동성애자들의 자기 진술적 이야기에 따르면, 세상에는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이라는 이분법에 흡수되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확고한 생각으로부터 보다 확고한 동성애자로서의 정체성을 지닐 수 있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게이(남성 동성애자)나 레스비언(여성 동성애자)들이 동성애자라는 정체성을 견고하게 확립하게 되는 과정에는 인도의 히즈라의 경우와 유사한 면이 있다.

(김경학: 전남대학교 인류학과 교수)
 
 
 
출처 링크 :
http://vaa.anthropology.or.kr/dong/content.aspx?idx=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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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부/트랜스젠더 2008년 06월 09일 21시 13분

트랜스/젠더정치학

이 글은 루인, 「젠더를 둘러싼 경합들(gender dysphoria): 트랜스/젠더 정치학을 모색하며」, 『여/성이론』 15호, 여이연, 2006에서 결론 절을 발췌한 것이다. 이 글을 요약하려 했지만 고민들이 정리되지 않아 한 절을 옮겨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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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트랜스/젠더정치학을 모색하며

젠더 정치학은 남성과 여성이라는 양성 간의 불평등이나 권력 관계를 다루는 것 혹은 젠더(여성)의 관점으로 세상을 다시 해석하는 인식론에서 ‘젠더란 무엇인가’하는 젠더 자체에 던지는 질문과 개개인들이 젠더와 어떻게 협상하고 수행하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경합․갈등․협상을 경험하는지를 질문하는 것으로 변할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그리하여 트랜스/젠더 정치학은 (트랜스)남성과 (트랜스)여성이 어떻게 젠더와 경합하는지를 묻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들(트랜스건 아니건 상관없이)이 여성, 남성이라는 젠더 호명과 어떻게 경합하고 협상하며 자신의 젠더 정체성을 구성하는지를 묻고, 여성과 남성이 있다는 믿은 자체가 젠더(이데올로기/신화)이기에 그런 것이 환상임을 밝히는 작업이다. 이를 위한 한 방법으로 트랜스젠더가 자신의 몸과 어떻게 경합․갈등․협상하는지를 묻는 질문구조 속에, 어떻게 시스젠더의 문제가 없는 것처럼 여기거나 질문구조(문제시)에서 제외―질문 자체를 안 하는 방식―하고 있는지를 질문할 필요가 있다. 성기는 몸의 극히 일부일 뿐이지만 과잉 의미화하는 언어체계에서 그것 자체를 다시 질문하자는 것이며, 그리하여 트랜스젠더를 통해 시스젠더를 안정화하는 구조를 질문하고 남성/여성이란 체계 자체를 질문하자는 것이다. 시스젠더의 몸 역시 구성적인 몽일 때, 트랜스젠더의 몸만이 구성이 아니라 시스젠더의 몸 역시 외과적 구성임을 제기하고, 트랜스젠더의 몸이 사회적(/외과적) 구성이라고 말하는 그 권력 작동(해석체계)를 질문할 필요가 있다. 서로가 서로의 젠더를 구성하고 ‘안정화’함으로써 환성을 구축하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젠더가 이미 있다고 가정하면 그것이 아무리 구성 중에 있는 것이라고 말을 해도 결국 본질주의와 결정론의 덫에 빠지기 쉽다. 젠더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정말 구성 중에 있는 과정이라면, 젠더란 무엇인지, 젠더가 끊임없이 의미를 가지게끔 하는 체계는 무엇이고 어떻게 작동하는지, 상대방을 특정 젠더라는 건 어떤 맥락 속에서 의미를 가지는지, 상대방(개인이건, 의료체계건, 국민국가건)이 요구하는 젠더를 수용하길 거부하는 사람은 왜 그런지, 수용하는 것 같지만 끊임없이(혹은 간간히) 갈등하는 사람은 어떤 맥락인지, 그런 갈등과 협상은 어떤 맥락에서 발생하는지, 젠더들 간에 발생하는 긴장과 폭력은 어째서이고 젠더마다 동일한 문화적 무게를 지니지 않음은 어째서인지 등을 물을 때 더욱 풍성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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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그렇지만 어떤 글을 나의 어떤 카테고리에 넣을 것인가를 고민한다. 이 글을 공부/페미니즘 게시판에 넣은 이유는, 현재 나는 이 글을 '페미니즘'을 둘러싼 고민 속에서 읽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동안은 '페미니즘'을 둘러싼 고민 속에서 이 글을 고민할 것이다. 이 때, 내가 무엇을 페미니즘으로 정의하는가를 말해야 한다. 나는 페미니즘은 트랜스한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고정적인 것이 아니다. 때때로 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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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hani.co.kr/section-021003000 ··· 004.html  강조는 퍼온이.


나를 증명할 길은 수술뿐인가

수술을 하건 안하건 난 ‘여성’일 뿐, 트렌스 젠더는 자신의 몸을 혐오해야 하나… 페니스가 있으면 남성이고 질이 있으면 여성이라는 식의 구분·판단 자체가 문제

▣ 루인 성전환자인권연대 지렁이 연구활동가

나는 트랜스젠더이다. 꾸미는 걸 좋아하고 색색으로 매니큐어와 페티큐어를 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런 나를 낯설게 쳐다본다. 때론 뚫어져라, 공포(혐오)의 눈빛으로 쳐다본다. 재미있다. 언제 폭력이 발생할지 알 수 없는 긴장감에서 생기는 감정들.


내가 바란 몸과 사회가 요구하는 몸

트랜스젠더이지만 수술을 하지 않았고 호르몬 투여도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국가 공인 성별로 통하고 커밍아웃을 한 집단에서조차 나를 주민번호의 성별로 대하는 경우가 많다. 아직 의료 과정에 들어가지 않은 것이 아니라, 현재로선 그럴 의향이 별로 없다.

수술을 고려하지 않거나 욕망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더 마른 몸, 더 예쁜 얼굴, 더 작은 얼굴 크기를 바라는 욕망. 수술과 함께 성형수술을 동시에 고민했다. 하지만 이것은 어떤 맥락에서 발생한 욕망일까. 이 질문과 함께 수술을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런 욕망이 여성은 이러이러해야 하고 이런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규범과 트랜스젠더는 “이렇다”라는 시선으로 트랜스/여성을 박제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바랐던 몸과 한국 사회에서 요구하는 몸 사이의 긴장을 읽으며 수술의 의미는 다르게 다가왔다. 과연 지금의 나는 내 몸을 혐오하는가.

텔레비전이나 언론 등에서 성전환자들을 인터뷰한 글에 주로 등장하는 얘기는 “몸을 혐오한다”는 것. 여성들은 페니스가, 남성들은 젖가슴이 너무 싫다는 얘기들. 맞다. 나 역시 나의 페니스가 ‘싫다’. 하지만 인터뷰 과정에서 어떤 언어로 질문을 구성했고 어떤 맥락에서 이런 말을 했는지 정치하게 읽지 않으면 곤란하다. 나는 내 몸을 혐오하지 않는다. 성기 재구성이나 호르몬 투여를 아주 안 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그것이 몸을 혐오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수술을 하건, 하지 않건 상관없이 나는 “여성”이다.

나는 지금 “국가 공인 1번”으로 통하는 몸으로 “2번”이라고 말하고 있다. 왜 지금의 몸으로 내가 원하는 성별을 요구하면 안 되는가. ‘성전환자 성별 변경 등에 관한 특별법(안)’은 성별 변경 요건으로 정신과 의사를 포함한 의사 두 명의 인정이 있어야 한다고 규정한다. 그렇다면 의사의 진단과 내 주장이 대치할 때, 의사는 나를 “남자며 성전환증 환자가 아니”라고 진단하고, 나는 나를 “여자며 성전환자”라고 말할 때, 누구의 판단에 따라야 할까. 법안대로 한다면 나는 가짜 트랜스거나 ‘정신병자’일 뿐이다(그런데 성정체성장애(GID)도 정신병 목록에 올라 있다). 법안 공청회 자리에서 발제자와 많은 토론자들이 의사의 판단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는데, 의학과 의학적 판단 역시 시대의 맥락에 따른 해석 아닌가. 의사 개개인 역시 사회와의 관계 속에 위치할 때, 갓 태어난 아이를 남자와 여자로 구분하고 “성전환증 환자”임을 판단하는 것 또한 의사의 해석일 뿐이다(어떤 의사는 자신이 매력을 느끼지 않으면 mtf(male to female)가 아니라고 진단하고, 어떤 의사는 상담기간 중 mtf가 치마가 아닌 바지를 입고 왔다고 상담기간을 몇 년 더 연장했고, 한 ftm(female to male)은 자신은 질을 제거하고 싶지 않은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의사에게 묻자 의사는 그런 ftm은 없다고 대답했다, 또한 수술 뒤 ‘이성애’ 관계를 형성하지 않으면 수술을 거부하기도 한다). 이런 해석(더 정확하게는 의사를 매개로 하는 혹은 의학과 밀월관계에 있는 국민국가의 해석)을 굳이 따를 이유는 없다.


하리수만이 트랜스젠더가 아니다

하지만 이런 나의 목소리를 “수술하지 않겠다는 성전환자도 있는데 너는 왜 굳이 수술을 하려고 하느냐”란 식으로 받아들인다면 이보다 유감스러운 일도 없다. 당신이나 내가 상상하는 성전환자가 전부는 아니다. ‘하리수’만이 트랜스젠더가 아니며, 모든 트랜스젠더가 ‘하리수’와 같은 것도 아니다.

호르몬 투여를 하는 모든 사람이 성전환자는 아니며(어떤 여성은 여성이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남성호르몬을 투여한다), 모든 성전환자가 호르몬 투여를 하는 것도 아니다. 마찬가지로 성기 재구성을 하는 모든 사람이 성전환자는 아니며, 모든 성전환자가 성기 재구성을 하는 것도 아니다.

이런 맥락에서, 트랜스젠더는 기존의 이성애나 성별 규범을 강화한다는 비난은 불편하다.

트랜스젠더는 기존의 이성애와 성별 규범을 강화한다는 비난(하리수가 등장했을 당시, 이런 비난이 특히 많았고 여전히 많다)은 마치 트랜스젠더든 퀴어든 다 ‘인정’은 하지만 그래도 한마디 훈계하겠다는 태도라고 느낀다. 하지만 그래서 뭐? 트랜스젠더가 젠더를 ‘위반’하기에 성별 규범까지 위반하고 ‘다른’ 식으로 행동할 것이란 인식 혹은 그런 요구는 상당히 문제적이다. 이런 언설들은 트랜스젠더를 지금의 사회구조 바깥에서 사는 ‘완벽한’ 외부자·타자로 설정한다. 하지만 지금의 젠더 사회에서 살며 성별 규범에 자유로운 사람은 별로 없다. 트랜스젠더는 무언가의 대안이 아니다. 기존의 인식을 흔드는 행위들이 ‘대안’적이지 않으면 쓸모없는 것처럼 여기는 인식이 오히려 성별 규범을 강화할 수 있다.

이런 비난이 불편한 또 다른 이유는 성전환자와 비성전환자의 서로 다른 맥락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전환)남성이 군대에 가고 싶고 갈 수 있으면 꼭 가겠다는 말, (성전환)여성이 ‘여자보다 더 여자답게’ 행동하는 것을 성별 규범의 강화로 받아들이는 건, 매순간 남성임 혹은 여성임을 시험받고 증명해야 하는 상황을 무시하기에 가능하다. (성전환)남성이 조금만 ‘여성스러운’ 행동을 해도 “쟤는 별 수 없이 여자야”란 식으로 반응하고, (성전환)여성이 과잉 여성화할 때에만 “천생 여자”란 말을 하는 상황에서, 이성애나 성별 규범을 더 강화하는 듯한 행동들은 지금의 사회에서 자신을 주장하는 협상력이다.


정신적 성과 육체적 성의 불일치?

흔히 트랜스젠더를 “정신적인 성과 육체적인 성이 불일치하는 사람”이라거나 “남성(여성)의 몸에 갇힌 여성(남성)”이란 식으로 설명한다. 하지만 불일치하는 건 ‘정신적인 성’과 ‘육체적인 성’이 아니라 자신의 몸 해석과 타인의 해석·호명이다. “정신적인 성과 육체적인 성이 불일치”한다는 식의 설명은 젠더 경합(gender dysphoria)을 사회적 맥락과는 무관한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방식이며, 이런 식의 설명이 수술만이 ‘유일한 해결’인 것처럼 상상하게 한다. 나는 지금의 몸으로도 충분히 "여성"이라고 여기지만 끊임없이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타인의 시선들로 인해 더 많은 긴장과 갈등을 느낀다. 페니스가 있고 수염이 있으면 남성이고, 질이 있고 젖가슴이 있으면 여성이라는 식의 구분·판단 자체가 문제(question·problem)이다. 여성이면서 페니스가 있으면 왜 안 되고 남성이면서 자궁이 있으면 왜 안 되는지 묻고 싶다. 사실, 계속해서 나를 "여성"이라고 말하지만 "여성" 혹은 트랜스여성/mtf으로 스스로를 부르지 않! 는 편이다. 때론 그런 명명에 불편함을 느낀다. 다만 성별 이분법 사회에서 나를 주장하는 한 방식으로 그런 언어들을 사용할 뿐, 난 트랜스젠더이다. 이런 나에게 수술은 나임을 주장하기 위한 (유일한) 근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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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잘 읽었습니다
    제 가까이에도 이 분과 같은 생각을 하는 분이 있어서
    이런 글을 접하게 되면 친구가 하나 더 생긴 기분이예요

    나루
    2008년 02월 28일 07시 38분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많이 드러나지는 않았지만(어쩌면 '감춰진'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이런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 더 있을 거라 짐작만 하고 있었는데, 나루 님은 그 분을 알고 계시군요. 루인 님의 또 다른 글은 <여/성이론> 15호에 실려 있다고 합니다. 원래는 15호를 읽고 메모하려고 했는데, 제가 가지고 있는 것은 14호이네요. 시간이 허락한다면 15호 글도 메모해서 올려볼 계획입니다. ^^
      나루 님의 댓글이 무척 반가웠습니다^^

       댓글주소  수정/삭제 2008년 02월 28일 09시 41분
  2. 오호! 15호도 기대하겠습니다
    아무리 자주 들러보는 곳이라 해도
    댓글을 달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시간이 필요해요 : )

    나루
    2008년 02월 28일 09시 53분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그러고 보니 저도 나루 님 블로그에 댓글을 달지는 않는군요^^
      다음에 즐거운 마음으로 달께요~~

       댓글주소  수정/삭제 2008년 02월 29일 09시 24분
  3. '루인'님이라고 하는 분은 몇 번 본적도 있고, 알고 있었는데 아마도 제대로 글을 읽어본 건 처음인 듯.. 고마워~ 그리고 얼마 전에 봤던 <엘 워드> 에서 '맥스'가 잠깐 생각났어. 남성호르몬을 투여하고 있지만, 유방 제거 수술은 하지않을 생각이라던... 어딘가 접하는 부분이 있는것 같아서. 내 블로그에도 옮겨가고싶어^^ 담아갈게.

    꿈의택배
    2008년 02월 29일 00시 37분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9월 1일에 있게 될 <한국에서 성적소수자의 가족으로 산다는 것-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 가족들을 위한 포럼>에 발표자로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포럼’이기는 하지만 토론과 논쟁이 주요하게 이뤄지기 보다는 동성애자 및 트랜스젠더의 가족과 친구들이 그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말했을 때의 고민과 감정들을 이야기하는 자리입니다. 저는 동성애자의 친구라는 위치로 발표를 하게 되었어요. 레즈비언 친구가 이 포럼에 참석해줄 것을 제안했고, 제가 그것을 받아들여 이런 자리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이 날 발표자들이 모두 발표문을 작성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는 제 생각과 감정을 차근차근 다시 되짚어보고 성찰해보기 위해 발표문을 작성할 계획입니다. 1인당 발표 시간이 15분 정도로 긴 발표문을 쓸 수도 없고, 생각과 감정을 많이 말할 수는 없겠지만 (이 포럼에서 발표자로서 발화자는 가족과 친구이지만 저는 참석한 이들 중 동성애자들과 트랜스젠더들의 이야기도 많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며, 포럼도 그렇게 준비되고 있다고 합니다) 최선을 다해 분량을 제약받지 않고 글을 써 볼 생각입니다.

최근 글을 쓰기 위해 나 자신을 돌아보고 생각을 하다 동성애자/트랜스젠더 그리고 이외 남성(성)/여성(성)이라는 정체성으로 환원되어 말해질 수 없는 사람들과 그들의 정체성에 대한 나의 생각이나 감정이 ‘동정’이나 ‘무조건적인 배려’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동정’과 ‘무조건적인 배려’는 상대를 하나의 주체로, 대화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생각을 계속 해왔지만 구체적인 대화(이 대화는 실제 사람과의 대화가 아니어도 스스로 그것을 항상 염두해두거나 고민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를 하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포럼에서 제 발표의 초점을 레즈비언 친구와의 대화에 두려고 합니다. 이 대화는 어디서 끝이 날지, 어디로 갈지, 무엇을 서로에게 남길지 등이 정해져 있지 않으며, 그렇기에 기약 없지만 기꺼이 즐거운 것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기 위해서 선차적으로 필요한 것은 내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쓰기 과정은 계속 내 안을 바라보고, 내 안에서 밖을 바라보며, 그래서 대화를 하는 과정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저를 아는 사람들이 이 포럼에 참석해서 저 뿐만 아니라 다른 발표자들과 참석자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가능하다면 이야기해주길 원합니다. 저는 이 포럼이 삶을 어떻게 살지를 고민하며 삶의 새로운 시간들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래 자세한 포럼 일정과 소개를 올려둡니다. 이 글에 달린 트랙백과 링크해두는 홈페이지를 방문하셔서 글을 읽으시면 더욱 좋습니다.

<우리, 여기에, 함께> 웹사이트 http://kscrc.org/together/

-- 우공uGonG

"한국에서 성적소수자의 가족으로 산다는 것-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 가족들을 위한 포럼"
                                                     

며칠 전에 부모님께 커밍아웃을 했습니다.
커밍아웃한게 후회될 정도로 힘들고, 많이 괴롭습니다.
부모님께서 이해를 하지 못하세요..
부모님은 동성애자라고 하면 그냥 변태라고만 생각합니다.
부모님의 이해를 도울 수 있도록 동성애자 자식을 둔
부모님들 모임같은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나라에는 그런 모임이 없나요?
                                                                 - 고민게시판에서-

여기에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의 가족과 친구들이  나와서 직접 자신들의 이야기를 나누며,
성적소수자의 가족으로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의미와 현실적인 대안을 모색하는 한국최초의 역사적인 포럼이 열립니다.
성적소수자들의 가족들과 친구들이 나와서 커밍아웃을 받아들였을 때의 충격을 말하고,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었는지,  성적소수자들의 가족으로 살아가는데 힘든 점이 무엇인지 ,  우리 사회에서 성적소수자들의 가족들을 위해서 해결해야 할 문제점들은 무엇인지 짚어보려고 합니다.
또한 일본,미국, 유럽등의 외국에서의 성적소수자의 가족들을 위한 모임을 소개하고 함께  한국적 현실에 맞는 대안점 을 찾는 시간을 만들고자 합니다.
많은 성적소수자들과 성적소수자들의 부모님, 친구들의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일시: 2007년 9월1일 토요일 오후2시~6시
장소: 영상미디어 센터  미디 액트(광화문 동아일보 옆 일민미술관 5층


- 진행순서

1부 가족과 친구들의 이야기

발표:  김정숙 ( 동성애자의 어머니)           김지영  ( 트랜스젠더의  동생)
          김현정 ( 동성애자의   언니)            우 공   ( 동성애자의 친구)

2부 다른 나라 이야기

발표: 일본의 부모님 (  <LGBT의 가족과 친구들을 잇는 모임> 회원)
         프로젝트팀 - 미국과 유럽의 가족지지모임 현황 소개

• 포럼후에는 간단한 다과와 함께 이야기 할 수 있는 시간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찾아오시는 길: 5호선 광화문역 5번출고 /1호선,2호선 시청역 4번출구 프레스센터 방향 5분거리

문의  kscrc@kscrc.org | 0505-896-8080 (Tel) | 0505-893-8080 (Fa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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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 &lt;우리, 여기에, 함께&gt; 프로젝트: 성적소수자 프로젝트

    Tracked from ENCUENTRO : 바람의 노래 2007년 08월 16일 20시 30분  삭제

    아래의 글은 &lt;우리, 여기에, 함께&gt; 프로젝트 홈피(http://kscrc.org/together/)에서 퍼 왔습니다. 얼마 전 레즈비언 친구가 이 프로젝트를 소개함과 동시에 참여를 제안해와서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아직 구체적인 방식을 정한 것은 아니고, 추후 프로젝트 준비팀과 연락을 통해 방식을 고민하게 될 것 같아요. 주변에 관심 있는 분들도 프로젝트 팀에 연락을 해보시면 좋겠네요. ===============안녕하세요? 한국성적소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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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으윽. 저는 안타깝게도 저 시각에 다른 일이 있어서 못가는군요.

    2007년 08월 17일 13시 29분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 시간내서 가볼께. 조금있다.. 세미나서 보자구

    BlogIcon
    2007년 08월 17일 13시 54분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고마워. 이 날 보자. 그리고 어제 세미나 때 한 이야기는 나중에 좀 더 얘기하자고. 개강까지는 즐거운 마음으로 쉬어~

       댓글주소  수정/삭제 2007년 08월 18일 14시 31분
  3. 9월1일까지는 오후 4시까지 회사에서 일할 운명이지만,
    우공에게 기를 모아 보낼게요. 아쟈뵹.

    루냐
    2007년 08월 17일 18시 55분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아쉽네요. 혹시 회사일이 끝나고 올 수 있다면 와요. 공식 행사는 6시까지 이지만 일정에 나온 것처럼 포럼 이후에도 다과 자리가 있으니까요. 그날 기는 안테나 바짝(!) 세워서 완전 잘 받을께요~~^^

       댓글주소  수정/삭제 2007년 08월 18일 14시 48분
  4. 어흥! 나는 이 날 다른 포럼땜에 못가-
    당신은 책 안팔아???

    2007년 08월 19일 19시 40분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 기 2007년 05월 14일 01시 25분

Un/going Home

인디포럼 개막식에 참석하게 되었다. 개막작 중 한 편인 Un/going Home 제작한 사람을 알고 있었고, 개막작에 선정된 것을 축하해주기 위해 갔다. Un/going Home은 '한국인 입양아 트랜스젠더 레즈비언' 김혜진 님의 대한 다큐이다. 1년 동안 작업한 것을 다큐로 만들었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면서도 러닝 타임을 줄이는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 탄생한 작품이라고 한다. 중간에 아찔했던 '대형사고'가 있기도 했다고.

이 다큐는 내겐 '고민'으로 다가왔다. 자막으로 모든 말이 나오고 있었고 그 말들은 그리 어려운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자막을 읽으면서 나는 자막을 해석하고 있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김혜진'이라는 사람과 나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되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타인과 대화할 때 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대략 상정해 놓고 그의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의 배경을 이해하려고 한다. 일상적인 대화에서 사람들이 하는 말은 자세한 설명보다는 그가 일상 속에서 느꼈던 감정들의 즉각적인 표현인 경우가 많고, 그렇기 때문에 그의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배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배경'은 정말 다양하고 복잡하기에 내가 한 사람의 모든 배경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설사 배경을 다 안다고 해도 그의 이야기를 다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근데, 나는 이 '배경' 중 무의식적으로 '어떤 성을, 혹은 성적 정체성을 지니고 있는지'를 우선적으로 판단/인식하고 대화를 하고 있단 사실을 알았다. 그렇기 때문에 내겐 낯선 성적 지향-성적 정체성을 지닌 김혜진 님의 이야기를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내가 얼마나 '양성' 이분법 체계에 갇혀 대화를 하고 생각을 해 왔는지 여실하게 드러난 것이다. 이 경험은 '그들도 사람이야'라고 자뭇 '쿨'하게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 경험(체험)은 '남성성'이란 주제로 생각과 글을 지속시키려고 하는 내겐 주요한 분기점이 될 것 같다.

우연히 웹 써핑을 하다 2005년 <한겨레21> 신윤동욱 기자가 김혜진 님을 인터뷰한 기사를 찾았다. 난 이 기사를 읽고 김혜진 님이 '트랜스젠더' 일뿐 아니라 '레즈비언'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어떤 활동을 했는지 조금 알게 되었다.

나, 트랜스젠더 레즈비언! (클릭)

Un/going Home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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