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카모메 식당>
1. 나의 토요일/우리의 토요일 -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 가족들을 위한 포럼 이야기
지난 9월 1일 <한국에서 성적소수자의 가족으로 산다는 것-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 가족들을 위한 포럼>이 끝났다. 이 포럼이 어땠는지를 표현하라면, 아주 좋았다, 라는 말로 충분하다. 가슴 아프고 안타까운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음에도 참석한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자들의 가족들은 이 슬픔의 정서를 이길 수 있는 넉넉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발표와 발언이 끝날 때 마다 나온 박수 소리, 타인의 이야기를 경청하려는 진지한 태도, 진지함 사이사이 마다 준비된 것처럼 나오는 유머와 웃음. 이런 요소들은 4시간이 길지 않게 만들었고, 아쉽게 만들었다. 비록 1시간 동안 준비된 ‘다과회’ 시간에 몇 사람과 이야기를 하지 못했지만 소중했다. 상대방에게 먹을 것을 전하고, 인사하고, 음료수를 건네는 모습 사이로 한 레즈비언이 다른 레즈비언 어머니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보였다. 어머니는 그 친구를 안아주었다. 이 날의 중요한 전경이다.
주최 측에서 준비한 영상물을 보고 난 직후 첫 번째 발표자로서 나는 말문을 열었다. 전날 새벽 3시까지 준비한 A4 1장 반 정도의 분량의 이야기를 했다. 내 글의 요지는 ‘이성애자로서의 성찰’이었다. 친구가 레즈비언임을 처음 말 했을 때의 나의 느낌을 놓치지 않으며, 나의 위치를 계속 점검하며 글을 썼고, 그 느낌으로 발표를 했다. 나의 발표 이후 다른 가족들(어머니와 언니)의 발표는 나와는 달랐다. 그들은 ‘성찰’에 초점이 있기 보다는 스스로가 가족을 어떻게 지지하게 되었는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두 가족의 모습이 사뭇 달랐지만 그들의 발표에는 유머의 대목들이 있었다. 그것은 삶의 유머, 삶의 농담이었다. 나는 조용히 생각해본다. 나의 성찰과 그들의 유머 사이를. 그리고 성찰과 유머 각각을 말이다.
2. 나의 일요일/우리의 일요일 - 영화 <카모메 식당> 이야기
일요일 오후. 오후에 시내 걷기를 몹시도 원했던 난 친구와 함께 동대문에서 종로까지 청계천을 따라 오는 듯 마는 듯 하는 비를 맞으며 걸었다. 모처럼 갖게 된 휴일이라 모처럼 영화를 보고 싶었다. 친구의 추천으로 본 영화는 <카모메 식당>. 이 영화는 일요일에 나의 일상을 닮아 있었다. 삶의 여유. 이 영화는 삶의 여유에 관한 영화이다.
한 일본 여성이 핀란드에 일본 정통 음식을 하는 식당을 개업한다. 한 달 정도 되었지만 이 집엔 손님이 없다. 그러다 첫 손님으로 “일본 오타쿠”로 여겨지는 핀란드 청년이 오고, “눈 감고 지도를 찍었을 때 찍힌 나라로 무작정 떠나겠다”고 하며 찍었는데 그곳이 핀란드였다고 말하는 일본 여성이 오고, 텔레비전에서 에어기타대회(기타 없이 기타를 치는 듯 흉내 내는 대회)를 보고 핀란드에 왔다 가방을 잃어버린 일본 여성이 오고, 남편이 떠나고 강아지가 죽은 것을 잊지 못해 황폐한 삶을 살던 핀란드 여성이 오며 이 집에 점점 더 손님들이 넘쳐난다. 인물들의 감정은 과하지 않다. 하지만 이 영화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과한 유머’를 만들어낸다. 그 과한 유머는 엉뚱하고 비합리적인 설정들 때문에 그렇다. (이 설정들은 영화를 보며 직접 즐기시라!)
핀란드의 한적한 마을이라는 설정만으로도 이 영화에 그려지는 삶은 여유롭다. “느림의 철학”을 아는 동네가 핀란드의 이 마을이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여행 장려 영화’는 아니다. 지금여기에서의 삶의 여유를 말하는 이 영화와 여행을 통해 삶에 강제적으로 외삽하는 여유는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지금여기에서의 삶의 여유’는 <카모메 식당>을 처음 연 미도리의 삶을 통해 영화 전반에 걸쳐 보여진다. (이것도 직접 영화를 보시라!!)
‘지금여기에서의 삶의 여유’는 상징적인 영화 속 에피소드를 통해 드러나기도 한다. 최근 2년 사이에 부모님 모두가 돌아가신 마사코. 그는 에어기타대회가 열리는 나라에 가보고 싶어 핀란드에 온다. 그녀는 가방을 잃어버리게 되고, 가방이 돌아올 동안만 카모메 식당에서 일을 하게 된다. 그녀는 후에 가방을 찾는데, 그 가방엔 핀란드 숲 버섯이 가득하다. 그건 그녀가 핀란드인들 삶의 여유의 근원이 숲이라는 소식을 듣고 핀란드 숲에 가서 땄던 그 버섯이다. 이 버섯을 따서 카모메 식당으로 돌아온 그녀는 버섯을 많이 땄는데, 없어졌다고 말한다. 그 버섯이 그녀의 여행 가방에서 발견된 것이다. 여유로운 핀란드 숲의 버섯, 그것은 사실 먼 곳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녀가 여행을 가기 위해 떠나려 했던 바로 그곳(여행의 짐으로 상징된다)에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한가득 말이다.(그녀의 가방에 버섯이 한가득 있었다.)
미도리는 일본을 떠났지만 일본에서 어렸을 때부터 했던 합기도의 기본 동작을 매일 밤마다 한다. 그녀의 삶은 핀란드이든 일본이든 언제나 “하고 싶지 않은 일은 하지 않으며”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이다. 그녀는 여유를 찾아 핀란드로 온 것이 아니라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핀란드에 온 것이다. ‘지금여기에서의 삶의 여유’는 잠시나마 ‘서울을 떠나지 않으면서도 서울을 떠났던’ 나의 일요일 오후와 겹쳐진다. “여기가 로도스다, 여기서 뛰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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