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저항’의 기억, ‘아름다운 저항’의 기록
     - 방현석의 『아름다운 저항』(일하는 사람들의 작은책, 1999)

‘기억’은 인간의 오랜 화두이다. 그렇기에 ‘기억’에 대한 문학예술작품이 적지 않게 있다. 연인이 동일한 상황을 각각 다르게 기억한다는 설정을 토대로 하여 홍상수의 영화 <오!수정>의 이야기는 진행된다. 주인공들은 서로 같이 있었던 상황을 전혀 다르게 기억할 뿐 아니라 키스할 때 떨어트린 물건이 숟가락인지 젓가락인지도 다르게 기억한다. 미세한 것에서도 다른 기억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자신에게 ‘의미화’된 것들만을 기억하는 것이다. 최근 <이노센스>라는 애니메이션으로 또 한번 주목받고 있는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는 사이버 공간이라는 것이 인간의 ‘기억’을 재창조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인간의 뇌와 네트Net의 결합은 기억의 발생, 지속, 유통(소통)에 있어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기억의 방식’이 가능하다고 웅변한다. ‘여성노동자 영상보고서 <밥꽃양>’은 ‘기억은 존재를 넘어 계속된다’라는 문구를 통해 이 ‘영상보고서’에서 보여주는 것들이 인간의 ‘존재’를 넘어 지속되어야 함을 강하게 표현하고 있다. 위 3가지의 영화,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는 ‘영상’이라는 동일한 방식을 통해 ‘기록’을 하고 있다. ‘기억’이라는 공통의 키워드를 지닌 채. 나는 방현석의 책 『아름다운 저항』을 ‘기억’에 관한 책으로 읽었다. ‘노동운동’이라는 ‘아름다운 저항’을 기억하고자 하는 책으로 말이다.

소설가 방현석은 ‘1980년대가 만들어낸 노동운동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십년간』, 『당신의 왼편』 그리고 비교적 최근에 나온 중단편 모음집 『랍스터를 먹는 시간』 등 외 여러작품을 통해 현실 노동운동을 소설이라는 형식으로 세밀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런 만큼 우리에게 ‘방현석’과 ‘노동운동’이라는 ‘만남’은 그리 새로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에세이와 인터뷰라는 형식으로 노동운동사를 “산책”하듯이 쓴 『아름다운 저항』의 형식은 다소 생소하다. 물론, 그의 소설 속 인물들과 그 인물들 사이의 대화를 읽으면서 우리들은 작가가 현실에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하듯이 만났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아마도 이런 만남은 생활 속에서 자연스러운 것이었을 테고 그런 만큼 그는 일상의 생동감이 묻어난 ‘에세이’도 적지 않게 쓸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책을 읽다보면 ‘에세이’와 ‘인터뷰’라는 형식의 범상치 않은 ‘힘’을 느끼게 된다.

저자는 사건이 일어난 시간적 순서대로는 아니지만 1945년 해방 이후부터 1997년 ‘노동법개정 총파업투쟁’까지의 굵직한 노동운동 사건들을 다룬다. 저자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자칫 사건의 나열로 인해 딱딱하고 지루하게 전개될 수 있는 사건들을 ‘에세이’라는 형식을 통해 생동감 있게 다루고 있다. 이로써 독자들은 글 속의 사건으로 부드럽게 빠져든다. 하지만 그것을 결코 ‘몰입’은 아니다. 현실의 시공간을 통해서 과거를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인해, 독자들은 책에 몰입되지 않고 현실의 스스로를 의식하며 사건과의 긴장감을 유지해 나간다. 에세이라는 글쓰기 형식의 ‘힘’은 바로 여기에 있다. 자신의 현실적 조건은 망각하지 않으면서도 과거의 사건을 떠올리게 함으로 인해 ‘과거’를 현실로 불러들여 ‘과거의 사건’을 현실 속에서 ‘살아있게’ 한다.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이 과거를 생동감 있게 만드는 이 ‘힘’은 에세이 이후에 이어지는 해당 노동운동 사건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인물과의 인터뷰를 통해 더욱 증폭된다. 독자들은 이 길지도 않은 인터뷰를 통해 ‘현실감’을 확실히 찾는다. 그리고 과거 노동운동 속에서 피어났던 열망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인식하게 된다. 30여년 전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를 외치며 분신한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의 인터뷰를 통해, 광주항쟁 당시 광주에 있었으며 이후 홍희담의 소설 『깃발』의 실제 주인공인 정향자 씨의 인터뷰를 통해, 그리고 그 외 많은 이들의 인터뷰를 통해 우리는 묻게 된다. “그때와 지금, 무엇이 달라졌는가? 무엇이 변해야 하는가?”라고 말이다. 어쩌면 작가는 우리에게 ‘아름다운 저항’의 기억을 기록하는 행위를 통해 우리에게 ‘희망’을 주고자 하는지도 모른다. 과거 역사 속의 인물들이 지금도 싸우고 있음을 말함으로서 우리도 ‘변화’를 위해 싸우는 이들의 ‘싸움’에 동참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싸움’은 자신이 서있는 곳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희망의 소재는 지금-여기에서, 우리 자신들의 존엄성과 삶을 지키기 위한 ‘싸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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