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미2 Articles

  1. 2008년 01월 03일 영화 <사랑니>의 시공간, 그리고 하이힐 (4)
  2. 2007년 07월 13일 눈을 감고 대화를: 입과 귀와 소리 (4)

얼마 전에 <사랑니>를 두 번째로 봤다. 정유미의 불안하고 풋풋한 연기를 한 번 더 보고 싶고, 이 영화에서 겹쳐지는 인물과 시간의 구성을 미흡하게 이해한 면이 있어 한 번 더 보고 싶었다. 다시 보니 정유미의 연기는 더 좋았고, 이 영화의 같지만 다른 인물과 과거-현재-미래의 시간을 뒤섞어 버리는 서사 구조는 정말 인상적이었다. 현재 하고 있는 사랑에서 문득 옛 연인과의 비슷한 상황과 행위를 마주치게 되면 기분이 묘한데, <사랑니>는 이 순간을 잘 포착했을 뿐만 아니라 이것을 통해 사랑이 무엇인지를 끈질기게 묻는다.

이 영화의 시간 개념이 공간적으로 단번에 드러나는 장면은 조인영(김정은 분)이 자기 집에서 러닝머신으로 운동을 하는 장면이다. 한국형 옛집 지붕 아래에 어색하게 놓인 러닝머신과 그 위에서 자연스럽게 운동을 하는 조인영의 모습은 시간이 응축된 공간을 보여준다. 이런 공간은 시간에 의해 교란되고, 주체의 정동에 의해 교란된다. 후반부에 고등학생 이석, 30살의 이석, 정우 그리고 30살의 조인영이 인영-정우의 집에 모여 있는 한 장면에서 공간의 교란은 잘 나타난다. 평상에 누운 30살 이석은 옆에 같이 누워있는 정우에게 나무에 핀 꽃을 보며 “꽃이 피었네” 하고 말한다. 정우는 “꽃이 피었지” 하고 응수한다. 지금까지 30살 이석과 정우와 잘 어울리지 못하던 고등학생 이석도 “정말 꽃이 피었네” 하고 말한다. 그리고 인영과 이석은 마주 보고 웃는다. 고등학생 이석이 본 것은 지난날 모텔에서 인영이 들고 온 난에 핀 꽃이다. 인영과 이석은 다른 꽃을 보며 다른 기억을 느낀 것이다.

이 영화에서 이 세 명의 남성이 한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긴장감이 돈다. 그들이 모두 인영과 사랑하는 관계라는 긴장감과 그들이 각각 차지하고 있는 시간 때문에 그렇다. 그들은 어떤 측면에서는 과거에만 있거나 현재에만 있거나 그래야 하는 존재들이지 같은 공간에 있어서는 안 될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그들은 그 공간에서 모두 ‘동상이몽’을 꾸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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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은 시간과 주체의 정동에 의해 교란된다.


영화에는 하이힐이 몇 번 등장한다. 하이힐을 카메라가 주목하는 장면은 두 번 정도이지만 30살 조인영이 하이힐을 일상 시에도 싣고 있음을 감안한다면 꽤 자주 나온다. 고등학생 이석에 대한 사랑이 옛 첫사랑에 대한 사랑인지 아닌지 고민하던 인영은 영화 중반부에 가면 현재의 고등학생 이석을 자신이 사랑함을 알게 된다. 하지만 이것은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아닌 듯하다. 옛 사랑이 아닌 현재의 사랑이지만 현재의 사랑이 옛 사랑보다 반드시 더 강렬한 것이 아닌 만큼 인영은 옛 사랑에 대한 상념에 빠진다. 혹은 사랑 그 자체에 대한 생각에 빠진다. 이 때 인영은 차 속에서 하이힐을 벗어놓고 있다. 조수석에 하이힐을 비추고 카메라는 인영의 발을 보여준다. 그 발뒤꿈치에는 반창고가 붙어 있다. 그녀는 아픔을 참으면서 하이힐을 신고 있었던 것이다.

하이힐은 분명 여성들에게는 강요된 미적 도구이다. 하지만 이 강요 속에서 여성들은 하이힐을 선택해서 신으며 자신의 미를 찾고 자신감을 갖기도 한다. 사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속에서의 여성은 항상 이중적이다. 온전한 강요가 없으며 온전한 능동성이 없다. 여성들은 이 사이에서 계속 교섭하고 엇나간다. 하이힐은 예쁘지만 아픈 존재이다. 고등학생 인영이 고등학생 이석이 다른 사랑을 택한 것이 너무 슬퍼 눈물로 양호실에 누워있을 때 양호 선생님은 인영을 재우고 실내화를 벗고 하이힐을 신으며 거울에 자신의 다리를 비춰본다. 그리고 30살 인영은 하이힐을 벗고 묘한 사랑에 대한 상념에 빠진다.

인영에게 자신이 인정하게 된 사랑도 이런 하이힐과 같은 존재가 아닐까. 고등학생 이석을 사랑하는 게 현재 조건에서는 손가락질 받는 일이다(‘원조교제’. 영화에서 인영은 이것 때문에 학원 학생들에게 따돌림 당한다). 하지만 이 보다 더 고민인 것은 자신의 안에 있었던 사랑이 계속 변하고 요동치며 뭔지 알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일 것이다. 그녀는 현재 동거남 정우와 옛 사랑 30살 이석, 그리고 현재 새롭게 사랑하게 된 고등학생 이석의 사랑 속에서 아픈 사랑니를 어루만진다. 사랑니. 사랑이라는 말에 붙은 아픈 것이 아니겠는가.

영화 마지막 장면. 맹장 수술을 한 고등학생 인영은 고등학생 정우에게 말한다. “나 다시 태어나면 이석이 되고 싶다”고 말이다. 이 말은 쉬운 말이 아니라 좀 더 곱씹어 보고 있다. 인영은 왜 이석이 되고 싶어 했을까. 그가 되면 그녀는 사랑을 온전히 맞이하게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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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다시 태어나면 이석이 되고 싶어' 그가 되면 그녀는 사랑을 온전하게 맞이하게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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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음.. 멋진 감상글인걸? ^^ 나도 몇 년 전에 봤는데, 글 읽으니 새록새록 기억이 난다. 좋았는데..^^

    꿈의택배
    2008년 01월 04일 16시 35분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좋은 영화지^^ 두 번째로 보니 첫 번째 때 보이지 않던 대사와 장면들이 조금 보여서 놀랐어^^

       댓글주소  수정/삭제 2008년 01월 06일 10시 50분
  2. 우공님. 글 잘 읽고 갑니다. 섬세한 감정선이 흐르고 있는 영화같아요. 저는, 아직 정리가 안되네요, 특히 시간. ㅠ 덕분에 좋은 영화 한 편 봤어요. ^^

    2008년 06월 16일 23시 14분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저도 시간은 어설프게나마 설명하고 말했던 것이에요. 풀어야 숙제이죠. 이 영화에서 표현되는 인물들의 감정은 참 절묘합니다. 전 대사와 대사 사이에 들어오는 행동들이 특히 그러한 것 같아요. 햐, 말하다 보니 영화 다시 한 번 보고 싶네요 -

       댓글주소  수정/삭제 2008년 06월 17일 00시 13분

정유미. <사랑니>에 나온 정유미라는 배우가 인상적이었다. '청춘의 불안함'이 그대로 표출되는 배우이기 때문이었는데, 앞으로도 정유미에게서 그런 느낌이 날지는 잘 모르겠다. <폴라노이드 작동법>, <사랑니>의 정유미가 내겐 인상적이었던 또 다른 이유는 그녀의 목소리 때문이었다. 낮은 톤에 차분하고 앳되며 어딘가 울 것 같은 외로움이 있는 목소리. 나는 그녀의 영화에서 그녀의 목소리를 이렇게 기억한다.

신지혜. 마포FM <100.7 문화향기>의 진행자 3명 중 한 사람이다. 그녀는 월요일마다 방송을 진행한다. (이 방송 자체의 날짜가 옮겨지면서 신지혜의 방송도 화요일에서 월요일로 옮겨왔다.) 우연히 이 방송을 들었을 땐 정유미가 진행자인 줄 알았을 정도로 내겐 같은 느낌이 전해졌다. 자주 듣다보니 신지혜의 목소리가 좀 더 '경쾌'한 듯 하지만 그래도 많이 비슷하다. 이 방송은 인터넷으로 들을 수 있어, 요즘 옛 방송들을 다시 듣기로 듣고 있다.

지난 5월 29일자 방송은 선곡이 좋았다. <테마가 있는 음악이야기>, <시네마 레터>가 이 방송 코너의 전부인데, (다른 날 다른 진행자의 코너들은 잘 모르겠다.) 두 코너에서 나온 노래 전곡이 좋았다. 좋아하는 목소리에 듣기 좋은 음악. 오랜만에 청각이 즐겁다. 그러면서 내가 좋아하는 이들과 눈을 감고 목소리만을 들으며 대화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과 귀와 소리가 있다.


==================
2007년 5월 29일 100.7 문화향기에 방송된 노래 목록
방송 다시 듣기: http://www.mapofm.net/bbs/board.php?bo_ ··· 5b1%25e2#
[Opening]
#1 이문세 - 그 때 내가 미처 하지 못했던 말


[테마가 있는 음악이야기]
- 스윙

#2 글렌 밀러 오케스트라 - In the mood
#3 Benny Goodman - Sing Sing Sing
#4 듀크 엘링턴 - Take the A train
#5 Swing Kids OST - Bei Mir Bist Du Schon


[시네마레터]
- 태양의 노래
 
#6 태양의 노래 OST - Street Live (it's Happy line)
#7 태양의 노래 OST - 요코하마 street live (sky line)
#8 태양의 노래 OST - It's Happy line
#9 태양의 노래 OST - Good bye Days


[Closing]
#10 나윤선 - Tangerine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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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랜만에 왔는데.. 이리 고마운 일이.. ^^

    2007년 07월 14일 21시 38분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 우공 오랜만-
    우공도 블로그 밑에서 조용히? 숨을 쉬고 있는 것 같군요. 우공의 살아 있음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기에 이렇게 말했는데, 혹시 우공의 여러 가지 활동이 있다면 미안해요-

    신지혜는 혹시 93.9(cbs fm)에서 오전 11시마다 '신지혜의 영화음악'을 진행하는 그분이 아닌지 모르겠네요. 그분이라면 저도 참 좋아하는데-

    사진도, 글도, 반가운 마음으로
    잘 보고 갑니다.

    그리고, 너무 많이 외롭지는 않기를.

    루냐
    2007년 07월 21일 23시 11분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루냐, 미안해 하지 않아도 돼요. 블로그 밑에서 조용히 숨을 쉬고 있을 때도 있어요. 게다가 신지혜 님의 진행하는 다른 라디오 프로그램도 소개해줬으니 감사할 일입니다.아직 동일인지는 확인하지 않았지만 루냐가 좋아한다면 좋을 거라고 생각해요^^

      나의 자립의 다른 이름이 외로움이기로 해요^^

       댓글주소  수정/삭제 2007년 07월 26일 18시 37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