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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re.. 1881년 12월 25일, 폴란드 바르샤바에 불어닥친 대학살에 자멘호프 일가는 지하실에 숨어서 공포의 밤을 지냈었다.
1878년 이미 국제어 'Lingwe universala'의 초안을 완성했던 그는 이런 현실에서 언어만으로 민족 차별을 없애기는 어렵다고 느껴서 이스라엘을 만든 시오니즘운동에 한때 몰입했다가 팔레 스타인과의 적대감을 알고 손을 떼었다.
1887년 7월 14일에 '에스페란토 박사'라는 필명으로 국제어의 창안을 발표하고 톨스토이 등 많은 지식인들의 지지를 받았다. 국제어의 사상인, 민족간의 우애와 정의를 추구하는 동호인들이 확산되어 1905년에 프랑스의 브로뉴 수메르에서 제1회 에스페란토 세계 대회를 열었는데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하나의 언어 만으로 사이좋게 교류하는 현실을 보면서 결의가 점점 확고해졌다. 중립언어만으로 각 종교간의 중계 역할인 '히레르주의'를 완전히 수행할수 없다고 판단되어 '민족주의'를 그냥 두고 자멘호프는 1906년 '인류인주의'를 부르짖었다. 자기는 인류의 일원이고, 타민족의 어떤 편견이나 차별도 하지 말자는 사상이다. 세계 평화를 바라며 모든 민족의 편견과 차별에서 인류를 해방시키기 위하여 언어와 종교의 면에 전력을 기울여 투쟁한 자멘호프는 에스페란토로 된 방대한 저작을 남기고 제 1 차 세계 대전이 끝나기 직전인 1917년 4월 14일에 바르샤바에서 58세를 일기로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원문 출처:http://myhome.shinbiro.com/~xtra/cxuzamen.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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