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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년 06월 17일 [이송희일] 도그마적 성모럴 벗어던지자
도그마적 성모럴 벗어던지자

‘사회문화적 성’에 대한 몰이해… 화랑과 히즈라, 버다치가 주는 교훈

S#1 자연스러운 것



92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과테말라 인디오복권운동가 리고베르타 멘추는 자서전 집필을 위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 우리는 동성애자인가 아닌가에 따라서 차별을 두지는 않습니다. 라디노(백인과 인디오 사이의 혼혈인종)들은 동성애자를 보면 참을 수 없는 듯이 혐오하는데, 인디오에게는 그 정도까지의 혐오감은 없습니다. 자연스러운 것은 모두 좋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서구 자본주의와 라디노정권에 대항하면서 형성된 그의 세계관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의 주장과 대척점에 있는, “섹스(sex)가 인간의 성정체성을 결정짓는다”는 주장은 몸의 기능에 따라 사람을 차별짓고 사회적 역할을 강요해왔다. 과연 생물학적 성과 다르게 움직이는 성은 비자연스러운 것일까?

한국사회에서 ‘사회문화적 성’(gender)에 대한 이해는 아직 일천한 수준인 것 같다. ‘남성 생식기’가 있고 없고에 따라 일상적 차별이 공공연히 행해지고, 심지어 그것이 고정불변의 것인 양 오해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기나긴 한반도 역사 중에 조선 600년이라는 시간의 지층에 잠시 머무는 하프 타임일 뿐이다.

히즈라·버다치, 경외의 대상

S#2 히즈라(hijras), 여자도 아닌 남자도 아닌


사진/ 사내아이에게 강복하는 히즈라. 히즈라는 중성으로 태어난 사람들이나 생리적으론 남성이지만 여성적 정체성을 지닌 사람들을 의미한다.


우리는 인류 역사를 관통하는 하나의 보편적인 성체계가 있다고 믿는 데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전세계 곳곳에서 보고되고 있는 ‘또 하나의 성’에 대한 사례들은 남성성/여성성, 혹은 이성애/동성애가 전부라는 고정관념에 강력하게 쐐기를 박는다.

가장 많이 거론되는 사례는 바로 인도의 히즈라(hijras)다. 히즈라는 중성으로 태어난 사람들이나 생리적으론 남성이지만 여성적 정체성을 지닌 사람들을 의미한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성전환수술을 받았거나 그것을 지향하는 트랜스젠더와는 다르다. 이들은 델리, 봄베이와 같은 인도 거대도시 안에서 하위문화를 형성하며 집단으로 존재하는데, 탄생과 혼인 같은 경조사에서 의례를 집전하며 사람들에 따라서는 ‘남편’을 맞이해 살기도 한다. 이들이 추구하는 것은 다름(dharm: 종교적 의무), 혹은 니르반(nirvan: 무욕과 평정의 상태)이다. 이상적인 히즈라로서 정체성을 지니면 집단의 우두머리인 ‘구루’의 영예를 얻기도 한다.

특이한 것은 인도사람들이 그들을 부정적으로 생각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도인들은 신의 매개자로서 히즈라를 두려움과 경외의 대상으로 삼았다. 다양한 성애와 성정체성을 실험했던 힌두신 크리슈나를 통해 삶이 획일적인 성체계에 구속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문화인류학은 히즈라와 같은 용인된 ‘또 하나의 성’이 세계 곳곳에 존재했음을 속속들이 밝힌다. 사우디아라비아 반도에 자리한 이슬람 국가 오만의 한에스(xanith) 집단, 타히티섬의 마후(mahu) 집단, 삼비아의 투님-투님, 도미니크공화국의 구에베도체 등에서 발견되는 모호한 성은 남성 아니면 여성, 이성애자 아니면 동성애자로 모든 것을 묶는 서구의 성체계가 어쩔 수 없는 타협으로 트랜스젠더라는 용어를 개발해낸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이들은 인간이란 존재는 애매모호한 성들이 좌충우돌하는 지대이며, 이것은 곧 신들과 자연의 힘이 만들어낸 경이로운 성역임을 드러낸다.

오만의 한에스는 ‘여자 같은 그리고 부드러운’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들은 여성들과 함께 팔짱끼고 노래를 부르지만 이슬람 율법에 따라 남성형으로 지칭된다. 또 성교시 수동적인 포즈를 취하지만 여성의 옷을 입거나 거세하지는 않는다.

S#3 버다치(berdache), 사회적 성


사진/ 북아메리카 150여 부족에 존재했던 버다치. 여성과 남성의 의상이 혼합된 옷을 즐겨 입었다.


북아메리카 어느 인디언 부족에서 성년식이 벌어지고 있다. 불을 지펴놓고 사람들은 둥그렇게 모여 앉았다. 한가운데 성년식 주인공인 소년이 서 있고 가족과 마을사람들은 노래 부르고 춤춘다.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는 사이, 소년이 여자의 노래를 부르거나 아기 바구니나 여자 옷을 가지고 불 바깥으로 빠져나오면 그 소년은 자신의 ‘선택’에 따라 여성도 아니고 남성도 아닌 새로운 삶을 살 권리를 갖는다. 사람들은 앞으로 그를 ‘아리하’(alyha)라고 부르게 된다. 여성은 ‘와메’(hwame)라 불린다. 16세기 이후 스페인을 비롯한 서구 열강의 선교자들은 이들을 ‘버다치’(수동적인 동성애자를 일컫는 프랑스 속어)라 부르며 난폭한 사냥개를 풀어 죽음으로 몰고 갔다.

북아메리카 150여개 이상 부족에 존재했던 버다치들은 여성의 사회적 역할을 담당했다. 그들은 여성과 남성의 의상이 혼합된 옷을 즐겨 입었고, 남자를 배우자로 취해 버젓이 마을 가운데 움막을 짓기도 했다. 훗날 인디언사에서 용맹한 부족으로 이름을 떨쳤던 샤이엔족의 버다치들은 여성과 남성의 이름을 함께 지녀 반남반녀인 자신의 존재를 상징했다. 이렇듯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에게 생물학적 성보다 중요한 것은 후천적으로 습득한 사회적 성이었다. 인디언들은 버다치들을 우주와 만물의 이치에 더 가까운 존재라 믿어 그들을 경외의 대상으로 삼았다.

혜공왕, 묘정, 공민왕…

S#4 화랑, 그 시작점

지금까지 설명한 ‘또 하나의 성’에 관한 사료들은 뒤돌아서면 금방 잊어버릴 수 있는 먼 나라 이야기일 수 있다. 여전히 한국사회는 ‘음양의 조화’가 모든 성모럴을 지탱하는 중요한 원천이 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조선사회의 성 관념은 남존여비를 유지하려는 지독한 가부장제(이것을 이성애라 표현하지 않는 것은 ‘이성애’ 역시 자신과 쌍방간의 성적 욕구와 사랑의 감정을 능동적으로 공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를 바탕으로 ‘또 하나의 성’은 물론 흔하디 흔한 동성간 성행위조차 아예 용인하지 않았다.

8살에 왕위에 올랐다가 여자놀이를 즐겼다고 신하들에게 살해당한 신라 혜공왕(삼국유사), 출중한 용모 때문에 신라 관리들은 물론 당나라 황제에까지 사랑을 받았다는 묘정(삼국유사), 노국공주가 죽자 아름다운 소년들을 가까이 해서 궁중 기강을 문란케 했다는 오명을 얻은 공민왕(고려사 세가), 소쌍이라는 시녀를 사랑했다가 궁궐에서 쫓겨나간 세종의 두 번째 며느리 봉씨(이조실록) 등의 사연은 사서의 희미한 흔적들로 남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조선시대 이전의 한반도 역사에 대해선 아직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조선시대 초기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불태워졌던 전 시대의 수많은 ‘사랑의 찬가’들에 대해 추리만 할 뿐이다.

99년 이종욱 교수가 박창화의 필사본이 확실하다고 주장하며 출간한 <화랑세기>의 진위 여부를 놓고 벌어졌던 한국 사학계의 열띤 논쟁 저변에는 조선시대 이전의 성문화에 대한 엇갈린 감정들이 깔려 있다. <화랑세기>는 근친결혼, 자유로운 성 표현, 여성들의 능동적인 욕망과 모권제의 흔적들을 담고 있고, 해석에 따라 다르겠지만 화랑들이 누렸던 ‘부드럽고 여성스러운 사회적 성’ 내지는 동성애를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 근거들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화랑세기>의 진위 여부를 떠나, 안타까운 것은 천년 고도에서 터잡고 있을 당시 신라사회의 성문화에 대한 한국 사학자들의 관심과 연구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이익이 <성호사설>에서 신라의 화랑과 낭도들을 남색자들로 싸잡아 비난했던 것이나, 1920년대 일본 학자들이 일본 봉건시대의 소성(小姓: 귀족 곁에서 시중드는 미소년)과 동성애 성격이 짙었던 사무라이 집단과 화랑의 유사성을 논했던 것에 대한 설득력 있는 비판과 연구를 한번도 접해보지 못했다. 오히려 고대 국가의 군사집단에서 적잖이 발견되는 동성간 성적의례의 한 갈래로 화랑과 낭도간의 관계를 설명해내려 했던 80년 이전의 일본 학자들의 성실성이 더 돋보인다.

죽지랑이 죽은 7일 만에 통곡하다 따라 죽은 사다함 이야기를 은근슬쩍 교우미담의 본보기로 치장하고 말았던 우리 학계의 무성실성은, 미소년들을 궁궐로 불러들였다는 진성왕에 대한 소문을 신빙성 없는 ‘사건과 야사’로 몰아 기각하려는 것만큼이나 신뢰를 얻지 못한다.

한 사회를 연구하고 그 사회의 성문화를 이해하는 데서 중요한 것은 생물학적 성이 사회적 성과 성적 욕망을 결정짓는다는 도그마적 믿음에서 해방되는 일이라 여긴다. 그런 의미에서 연구자들의 성실함만 전제된다면 기각되어도 상관없을 명제 하나를 제시하고 싶다. 그건 이렇다. 죽지랑과 사다함은 공인된 동성애자였다고.

이송희일/ 독립영화감독 heeil@dreamwiz.com


출처 링크
http://www.hani.co.kr/section-021003000 ··· 01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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