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기 2008년 01월 08일 19시 09분

1968 혁명

올해는 1968혁명 4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래서 <동아일보>에서는 발 빠르게 68혁명 기획기사를 올리고 있습니다. 4회 정도 연재되었는데, 68혁명의 오늘날의 의미를 탄탄하게 조명한다기 보다는 '이명박 정부'를 맞이하여(?) '386세대'로 상징되(기도 하)는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비판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즉 프랑스 68세대와 한국의 386세대를 동일하게 두고, 각 세대가 주도하는 정부-정책이 문제가 많음을 지적하는 것이죠. 저는 68세대와 386세대를 묶는다는 것 자체가 의문입니다만. 기획기사의 의도가 어떻든 기사에서 재미있는 것들을 엿볼 수 있습니다. 알랭 레네 교수와의 인터뷰라든지, 제가 아래에 옮겨오는 글은 68혁명의 의미를 살짝 엿볼 수 있는 글입니다. 우파 신문이 68혁명을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활용하려고 하지만 그 혁명성은 감출 수 없는 것 같네요. 아래 글과 함께 지난 해 12월에 방송된 <EBS 지식채널e-society>의 영상 2개도 퍼옵니다. 영상이 매우 인상적이에요. 특히 1부가.


1. 동아일보 기사 중 일부

▼“모든게 동등한 가치라니 노력과 성과를 거부하나”▼
○ 사르코지의 ‘68정신’ 비판

68혁명 이후 사람들은 ‘도덕’에 대해 더는 말하지 않게 됐다. 프랑스의 정치 용어에서 도덕이란 말은 사라졌다.

당시 혁명의 지도자들은 도덕적 상대주의를 만연시켰다. 이들과 그 후예들은 ‘모든 것이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는 이념을 퍼뜨렸다. 그들은 학생들이 교사들과 동등하다고 믿게 만들었고, 불량배가 그들의 피해자보다 중요하다고 믿게 만들었다.

소르본대 벽에 쓰여 있던 ‘구속 없이 살고, 구속 없이 즐기자’란 구호를 기억하는가. 68혁명은 냉소주의를 낳았다. 보라, ‘68의 후예’들이 윤리적, 도덕적 지표들을 공격한 결과 자본주의적 도덕은 약화되었다.

1968년 5월 이래 좌파들은 ‘성과’와 ‘노력’을 거부했다. 그들은 노동의 가치를 내던졌다. 35시간 노동제의 이데올로기는 이제 과거 사회주의자들인 장 조레스나 레옹 블룸의 (노동 중시)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노동의 위기야말로 도덕의 위기다. 나는 1968년의 장(章)을 닫으려 한다. 프랑스인들이 1968년 5월의 정신, 행동, 이념과 단절할 것을 나는 제안한다.파리=송평인 특파원 pisong@donga.com

▼“평등 연대 자유를 꿈꾸고 독단을 막은게 죄라면 죄”▼
○ 혁명주역 콩방디 의원 반론

그렇다. 당시 국영 라디오와 TV에 자유와 자율의 바람을 불어넣은 게 우리 죄다. 그게 사르코지 대통령을 기분 나쁘게 했나 보다. 학교와 대학과 공장 안에서 자율과 민주주의를 꿈꾼 게 우리 죄다. 집에서처럼 직장에서도 정의와 평등을 꿈꾼 게 우리 죄다. 그게 사르코지의 기분을 잡치게 했나 보다.

드골주의자, 마르크스주의자, 공산주의자, 노동조합과 경영자의 독단을 제어한 것이 우리 죄다. 여성과 남성이 자유로이 자기 몸에 대해 결정하는 오늘날의 세상, 여성들이 낙태를 선택할 권리를 가진 오늘날의 세상을 만든 것이 우리 죄다. 분명히 사르코지에게 기분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평등과 연대와 자유의 욕망을 가졌던 것이 우리의 어쩔 수 없는 죄다. 환경주의적이고 사회복지적인 세계화를 꿈꾼 것이 우리의 어쩔 수 없는 죄다. 진공청소기(사르코지 대통령이 내무장관 시절 방리외의 비행청소년을 쓸어 버리겠다고 말한 뒤 붙은 별명)가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고, 경찰이 모든 것을 할 수 없다고 믿은 게 우리의 어쩔 수 없는 죄다.


출처: http://www.donga.com/fbin/moeum?n=dstor ··· 01010114

2. EBS 지식채널e-society
1968 - 1부 주동자가 없는 시위



1968 - 2부 실패한 혁명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Trackback url :: http://ugongisan.net/trackback/219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