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부/트랜스젠더 2008년 06월 09일 21시 13분

트랜스/젠더정치학

이 글은 루인, 「젠더를 둘러싼 경합들(gender dysphoria): 트랜스/젠더 정치학을 모색하며」, 『여/성이론』 15호, 여이연, 2006에서 결론 절을 발췌한 것이다. 이 글을 요약하려 했지만 고민들이 정리되지 않아 한 절을 옮겨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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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트랜스/젠더정치학을 모색하며

젠더 정치학은 남성과 여성이라는 양성 간의 불평등이나 권력 관계를 다루는 것 혹은 젠더(여성)의 관점으로 세상을 다시 해석하는 인식론에서 ‘젠더란 무엇인가’하는 젠더 자체에 던지는 질문과 개개인들이 젠더와 어떻게 협상하고 수행하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경합․갈등․협상을 경험하는지를 질문하는 것으로 변할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그리하여 트랜스/젠더 정치학은 (트랜스)남성과 (트랜스)여성이 어떻게 젠더와 경합하는지를 묻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들(트랜스건 아니건 상관없이)이 여성, 남성이라는 젠더 호명과 어떻게 경합하고 협상하며 자신의 젠더 정체성을 구성하는지를 묻고, 여성과 남성이 있다는 믿은 자체가 젠더(이데올로기/신화)이기에 그런 것이 환상임을 밝히는 작업이다. 이를 위한 한 방법으로 트랜스젠더가 자신의 몸과 어떻게 경합․갈등․협상하는지를 묻는 질문구조 속에, 어떻게 시스젠더의 문제가 없는 것처럼 여기거나 질문구조(문제시)에서 제외―질문 자체를 안 하는 방식―하고 있는지를 질문할 필요가 있다. 성기는 몸의 극히 일부일 뿐이지만 과잉 의미화하는 언어체계에서 그것 자체를 다시 질문하자는 것이며, 그리하여 트랜스젠더를 통해 시스젠더를 안정화하는 구조를 질문하고 남성/여성이란 체계 자체를 질문하자는 것이다. 시스젠더의 몸 역시 구성적인 몽일 때, 트랜스젠더의 몸만이 구성이 아니라 시스젠더의 몸 역시 외과적 구성임을 제기하고, 트랜스젠더의 몸이 사회적(/외과적) 구성이라고 말하는 그 권력 작동(해석체계)를 질문할 필요가 있다. 서로가 서로의 젠더를 구성하고 ‘안정화’함으로써 환성을 구축하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젠더가 이미 있다고 가정하면 그것이 아무리 구성 중에 있는 것이라고 말을 해도 결국 본질주의와 결정론의 덫에 빠지기 쉽다. 젠더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정말 구성 중에 있는 과정이라면, 젠더란 무엇인지, 젠더가 끊임없이 의미를 가지게끔 하는 체계는 무엇이고 어떻게 작동하는지, 상대방을 특정 젠더라는 건 어떤 맥락 속에서 의미를 가지는지, 상대방(개인이건, 의료체계건, 국민국가건)이 요구하는 젠더를 수용하길 거부하는 사람은 왜 그런지, 수용하는 것 같지만 끊임없이(혹은 간간히) 갈등하는 사람은 어떤 맥락인지, 그런 갈등과 협상은 어떤 맥락에서 발생하는지, 젠더들 간에 발생하는 긴장과 폭력은 어째서이고 젠더마다 동일한 문화적 무게를 지니지 않음은 어째서인지 등을 물을 때 더욱 풍성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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