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조는 uGonG 입니다.
<남성 페미니스트>이라는 주제로 이어지는 참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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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네트워크 월례토론회 “뜨거운 감자” 7월 주제 : “남성페미니스트를 고민한다” 발제문
2005-7-13 시타 (sitafight@freechal.com)
1.
“남성페미니스트를 왜 고민해야 하는데?” 라는, 상당히 시니컬한 질문에서 이야기를 시작해 본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남성페미니스트 자체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이 '문제'에 대한 여성페미니스트들의 태도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나도 얼마 전까지 아주 완고하게, 남성페미니스트를 내 고민의 의제로 삼는 것을 거부해 왔다. 남성페미니스트라 주장하는 남자들에게 맞은 뒤통수가 몇 번이며, '그나마 나은 남성'을 남성페미니스트로 만들기 위해 허비한 나날은 또 얼마나 새털같이 많았던가. 여러 번 상처받은 사람은 언제 다시 그 상처가 반복될 지에 대한 강력한 안테나를 지닌다. 남성페미니스트의 존재와 방식에 대해 여성페미니스트들이 갖고 있는 의심과 엄격함은 매우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결과다.
2.
"우리에게는 '성별 배신자'가 필요하다. 그것도 아주 많은 배신자가 필요하다." 샌드라 바트키는 {남성 페미니스트}라는 책의 머리말에서 이렇게 말했다. 너무나 맞는 말이다. 그러나 남성에게 과연 남성이라는 성별을 배신하는 것이 절박한 일일까 하는 의구심은 여전히 남는다. 페미니즘이 '누군가를 위한 좋은 일'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한 어떤 것일 때, 나는 그 사람이 페미니스트라는 정체성으로 이동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만났던 많은 남성들은 페미니스트 여성과 친하다거나 어떤 모임을 같이 했다거나 페미니스트의 애인이라는 이유로 '친-페미니스트'의 자격증을 딴 것처럼 행동했다. 즉, 자신에게 필요하거나 득이 되거나 인생 사는데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경우에만 '성별을 배신'했다. 이런 점에서, '남성페미니스트'라는 존재에 대한 고민이나 의문이 여러 해 동안 오리무중이었던 것은, 사실 그 고민을 진전시켜 줄 새로운 상황이 만들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남성페미니스와 '따로 또 같이' 나아가는 것을 고민할 수 있으려면, 일단 '따로 또 같이'를 할 만큼 독립적인 남성페미니스트가 '있어야' 할 거 아닌가?
3.
그렇지만 이 모든 이유 있는 시니컬함에도 불구하고, 남성을 하나의 동질적인 집단으로 가정하는 것이 좋은 것도 가능한 것도 아니라는 발견을 새롭게 하게 된 건, 여성학 강의를 하면서 만나게 된 '다른 남성들'의 존재를 확인하면서 부터다. 자신이 게이라고 밝힌 한 남학생의 기말고사 답안지를 보면서, 가령 군대에서 원치 않는 성경험 공개나 집단적 문화로서의 성구매가 '게이 남성'에게 어떤 다른 경험일지에 대해 생각했다. 어린 시절 동네 형에게 성추행 피해를 당했지만 "지금도 그것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면서 끝까지 성폭력이라는 언어를 사용하지 않았던 남학생의 쪽글을 읽으면서, 폭력을 문제화할 때 성별을 생물학적 실체로 다루지 말아야 할 구체적인 이유와 지향을 생각했다. 기존의 '남자다움'에서 벗어나서 살려고 할 때마다 주변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다고 호소하는 남학생의 발표를 들으며, 그 호소를 경청하고 격려하는 것이 여성들의 감정노동이 아니라 남성들의 지지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바램을 가졌다. '남자들'이라는 말 속에 포함시킬 수 없는 사람들이 여전히 '남성'의 경계 안에 혹은 그 이름 뒤에 조용히 숨죽인 채로 살고 있다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숨죽인 채로조차 '남성'이라는 범주 안에는 더 이상 기거할 수 없을 정도로 '남성'을 더욱 적나라하게 해체하는 것, 그래서 수많은 '다른' 남성들, '남성'이 아닌 남성들의 얼굴이 햇빛아래 드러나서 집단적 남성성에 부여된 힘이 무력해지게 하는 것이다.
4.
그러기 위해서, 여성과 비슷하거나 여성인척 하거나 여성의 친구 혹은 애인으로서가 아니라, '남성'으로서 '다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 그리고 다시 남성성의 그늘 안으로 되돌아가지 않게 서로 지지할 수 있는 남성페미니스트 집단이 형성되어야 한다. 이제 여성인 나는, 남성을 가르치거나, 배려하거나, 보살피거나, 이끌어주는 노력 이전에, 혹은 그렇게 하다가 나가떨어져서 "남자한테 뭘 기대해?"라는 말을 되뇌기 전에, 내가 여성주의자로서 어떤 남성과 손을 잡고자 하는지에 대한 입장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문제는 항상 손을 잡고 싶어지는 남성이 별로 없다는 데에 있지만 말이다.) 남성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지, 남성페미니스트란 가능한지를 그렇게 열렬히 질문할 필요는 없다. 그 답은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남성들 자신에게 있으므로. 오히려 여성인 내가 가져야 할 것은, 남성을 동질적 집단으로 상상하게 하는 경험적 증거들에도 불구하고 동질적이지 않으며 또 않아야 한다는 지향과 상상력이 아닐까 한다. 언젠가 손잡고 싶은 남성페미니스트가 출현한다면, 그들에게 내밀 손을 아껴두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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