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기 2008년 08월 07일 01시 20분

분노와 실질적인 실천

8월 5일 집회에서 나를 사로잡은 가장 강력한 감정은 분노였다. 이 분노가 무엇이었는지를 설명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분노의 대상도 나 자신, 전견들, 연행되는 사람을 막기 위한 절규하는 목소리가 들리는데도 지들끼리 농담하며 웃고 지나가는 국가인권위 사람들(분노를 참지 못한 나는 그들을 따라가 고성으로 그들에게 소리를 쳤다), 쥐새끼, 시위대들을 향해 욕을 하는 취객(나는 이 사람과도 싸웠다. 말과 몸으로), 고립되는 것이 뻔한데도 대책 없이 소라광장으로 이동한 대책회의 등 다양했다. 연행되는 사람들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야 하는 내 자신이 답답했던 것일까.


나의 분노는 청계천 소라광장으로 사람들이 들어갈 때부터 시작되었다.
오후 5시 종각네거리 보신각 앞. 인도에 사람들이 있기에는 비좁아 차도 한 차선에 사람들이 꽉 차도록 사람들이 모였다. 부시방한을 반대하는 자리였다. 발언이 끝난 후 7시 경에 사람들은 청계1가 광교에서 소라광장으로 행진을 하여 들어갔다. 사람들이 소라광장으로 들어간 후 소라광장 뒤쪽 무교동사거리로 교통경찰들이 차량통제를 풀고 차들이 지나가게 했다. 8월 2일에도 이곳이 막힌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이곳에 차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다. 지나가던 할머니께서 할아버지에게 ‘이곳을 우리가 지켜야 (소라광장의 사람들을 손으로 가리키며) 저들이 나올 수 있는 거야. 그러니깐 여기 있자.’고 말씀하신다.


청계천에서 종로구청으로 나가는 곳에서 시민들과 경찰들의 충돌. 곧 소라광장 뒤쪽의 모든 길은 경찰들에 둘러싸이고 시민들은 천변을 따라 청계천3가 방향으로 이동한다. 3가 출입계단으로 올라오던 시민들은 또다시 경찰들로 인해 막히고 시민들 몇 명이 연행된다. 이미 올라온 시민들과 소라광장에서 빠져나온 시민들이 종각네거리에 모여 있고, 사람들은 점차 늘어난다. 보신각에 있던 전의경들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청계천3가에서 다시 나온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연행되고, 시민들을 연행하는 경창들에게 항의하는 사람들도 무작위로 연행된다. 이 날 이렇게 연행된 사람들은 부지기수다.


종각네거리가 고립되자 종로3가 방향 차도에 민주노동당 국회의원들과 당직자들이 경찰과 시민 사이에 서 있다. 경찰과 방송차, 살수차 너머로 깃발과 시민들이 차도에 모여 있는 것이 보인다. 살수차는 이미 소라광장에서부터 등장해서 형광붉은색소물을 시민들에게 뿌렸고, 나중에 이들을 마구잡이로 연행했다. 형광붉은색소물은 살수차뿐만 아니라 휴대용 분사기로도 시민들에게 쏟아진다. 오마이뉴스는 휴대용 분사기 앞에 서 있는 종교인의 당당한 모습을 사진으로 보여준다. 종로2가 네거리로 사람들이 모여든다. 이때부터 전경들, 경찰관 기동대들과 시민들의 술래잡기식 시위는 지속된다. 경찰들은 멀리서부터 뛰어와 시민들을 연행하고, 경찰들이 뒤로 빠지면 다시 시민들은 차도로 나온다. 그리고 기동대는 다시 뛰어와 연행한다. 종로2가 네거리와 종로3가 네거리 사이에서, 골목골목에서 강제연행이 이뤄진다. 기동대는 훈련이 잘 되어 있다. 지휘자가 명령하면 화장품 가게든 문구점이든 들어간다. 갑자기 뛰어온 경찰들에게 놀라서 가만히 서 있는 소수의 시민들을 그들이 사각형으로 둘러싸서 한명씩 연행한다. 인도에 있는 사람들도 연행하고, 심지어 인도에서 무력을 쓰는 경찰들에게 항의하는 사람들도 마구 연행한다. 기자도 장애인도 십대도 노인도 예외 없이 연행한다. 한 중년의 남성은 기동대에게 잡히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나체로 차도를 걸어가고, 그 주위에 기동대 20여 명이 그를 둘러싸고 기자들의 취재를 연신 방해한다. 새벽까지 이뤄진 명동성당 앞 집회에서도 사람들은 계속 연행된다. 이렇게 연행된 사람들의 수는 5월 2일 이후 하루 최대치인 167명이라고 언론들은 보도하고 있다.


연행한 시민들이 불구속이면 2만원, 구속이면 5만원씩 포상금을 준다는 경찰의 방침이 이런 사태를 불러온 것이다. 경찰은 쏟아지는 비판 여론을 의식해서 현금이 아니라 ‘포인트’를 주는 최신 자본주의 시스템을 도입하겠다고 한다. ‘포인트 적립’, ‘마일리지 적립’은 오늘 자본주의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네트워크마케팅의 주요한 제도가 아니던가. 이 자본주의적 상상력.


이 장면들을 보며 (그리고 시간이 지나 상상하며) 분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미 이 시민들의 분노는 누적되어 왔고, 이 분노는 제도정치적 해결과 군사적 해결의 방향으로, 구체적인 행동지침들로 변화하여 실행되고 있다. 아직은 군사적 해결방식보다는 제도정치적 해결방식이 더 많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알 수 없다. 이와 동시에 장기적으로 동네촛불들처럼 일상에서 촛불을 들기 위한 실질적인 제안들이 이뤄지고 있다. 벌금폭력에 대한 대책과 또 다른 액션을 위한 공통기금을 마련하자는 제안들도 있다. 이것을 비롯한 모든 잠재된 방식들은 현실적 협력방식을 찾아 네트워킹하고 있다. 어떻게 보다 강하게 협력할 것인가. 다시 한번 촛불다중들의 천재적 창안이 이뤄지며 이것에 대답하고 있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

Trackback url :: http://ugongisan.net/trackback/309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