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식. 그의 글은 불편하다. 정돈된 단문으로 이루어진 그의 문장은 빛과 희망을 이야기할 때조차도 어둠과 절망이 느껴진다. 불편하지만 한 번 읽으면 좀처럼 손에서 놓기 힘들다고 조심스럽게 고백해야 겠다. 그래서 나는 그의 책 두 권을 읽었다. 『디아스포라 기행』,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 두 번째 책을 읽고나서 계속 읽어봐야 겠다고 생각했지만 기회가 생기지 않았다. 그의 이름으로 새롭게 출간되는 책 목록만을 외워두고 있었다. 철 지난 계간지를 찾으러 헌책방을 돌아다니다 늦은 저녁 처음 간 헌책방에서 그의 책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를 구입했다. 한국어판 서문만을 읽어본다. 그의 문장은 여전하다. 서문을 읽다 문득 생각한다. 아마 그는 자신의 책을 읽고 좋았다는 말보다 불편했다는 말에 더 호기심을 보일 것 같다고.
얼마 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다가 자신의 일상을 관찰하고 그 속에서 피어난 사유를 기록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를 생각한 적이 있다. 그 기록은 자신을 지키는 일일까. 아님 새로운 만남을 여는 일일까. 생존을 위한 기록일까.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는 기록이다. 하지만 쁘리모 레비에 관한 기록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이 책은 그 동안 내 사유 활동의 핵심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쁘리모 레비라는 드문 인물과 나의 대화로 이뤄진 책이라도 할 수 있다."(8쪽) 이 책은 서경식에 관한 기록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기에 이것은 '평전'이자 '자서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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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어떤)일상에 대한 사유의 기록이라는 것과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생각했다는 너의 고백에는 동감하지만 서경식의 기록은 다소 다른 점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프리모 레비를 찾아서'라는 책은 폭력의 결과가 된 타자의 죽음과 마주하려는 (아주 많이) 의도된 (일종의) 기행의 결과라는 생각을 했었거든.
난 그 책을 읽을 때 결국 서경식 선생이 프리모 레비가 갇혀있던 수용소에까지 찾아가는 장면에서는 정말 괴로워서 책장을 덮어 버리고 싶었어. 그럼에도 서경식 선생은 책을 계속 읽어야 한다거나 타인의 고통 앞에서 눈 감지 말아야 한다고 이야기 하고 싶은걸테지만..
어쨌든 서경식 선생님 글은 괴롭지만 참 좋아. 어쩌면 그 괴로움에도 불구하고 계속 읽어야 하는 것 같기도 하고(다른 많은 것들이 그렇지만)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가 "폭력의 결과가 된 타자의 죽음과 마주하"기 위한 서경식의 기행의 결과라는 것을 나는 좀 더 책을 읽으며 경험해야 할 것 같아. 지금은 조금씩 읽고 있거든. "폭력의 결과가 된 타자"에는 서경식 스스로의 삶(디아스포라라는 삶)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기에 이것은 그 스스로에 대한 기록일 수도 있겠다 싶어. 내가 조금 더 부지런히 이 책을 읽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