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한 번에 휴학도 없이 9학기를 다녔는데, 그 중 학생회 ‘집행부’로 활동한 시기는 5학기이다. ‘학생회’ 언저리(과대표와 워크샵 기획단, 학생회 부원)에서 했던 활동 기간까지 포함하면 4학기를 더 보태야 할지도 모른다. 결국 9학기를 학생회와 그 주변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나도 이 사실을 옛 일을 생각해보다 알았다. 내가 생각해도 좀 놀라운 일이다.) 물론, 난 학생회만을 하진 않았다. 다른 것들도 <겹치기 출연>하며 하고 있었다. 학회, 소모임, 정치조직 등.
마지막 9학기 때는 학생회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 애초 내 생각이었지만 활동의 지속성을 생각하다보니 졸업을 앞둔 한 학기에도 학생회를 하게 되었다. 총여학생회 활동이 그것이다. 이 활동은 그 전에 했던 <여성주의 소모임>의 연장선상에 있던 것이었다. 총여학생회는 졸업을 앞두고 있었기에 한 학기만 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한 한기였지만 그 기간의 고민은 몇 년 간의 학생회 경험보다 더 깊고 무겁기도 했다. 활동의 양도 적지 않았고.
졸업 이후 총여학생회는 4명의 집행부로 진행되었다. 그 다음 해에 총여학생회는 다시 구성되지 않았고, 비대위 체제로 두어 달 운영되다 마무리되었다. 총여학생회를 계속 하겠다는 논의가 없지는 않았던 것 같지만 결국은 각자의 사정으로 총여학생회는 <지속>이 아니라 <중단>으로 마무리되었다.
나의 고민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각자의 사정>. 난 이 말에 주목하고 있었다. 한 조직 내에서 활동을 같이하다보면 이런저런 갈등들이 발생한다. 약간의 오해로 시작된 갈등들도 있지만 갈등의 근원적인 이유는 삶-운동의 방식과 연결되어지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이런 문제는 단기간의 논의와 고민으로 푼다는 것이 쉽지 않다. 때로는 그 고민을 미뤄두거나 <장기 과제>로 설정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 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활동에 대해 애정이 담긴 만큼, 딱 그 만큼 갈등을 해결하려는 ‘집착 아닌 집착’과 의지가 생겨나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 여유가 생겨 다시 그 때를 돌아보면 다른 길도 보이지만 그 길을 열심히 걷고 있을 때는 옆 샛길도 지나치게 마련인가 보다. 1년간 총여학생회를 하고 그 후 비대위 활동을 했던 사람들 사이에서도 이런 일은 여지없이 발생했다. 그리고 그 갈등은 <현재진행형>이다. <각자의 사정>에 맞게 말이다.
지금은 그 시간과 강도가 예전에 비하면 약해지기는 했지만 한 동안 내게 이 문제는 큰 고민거리였다. 그리고 여전히 고민거리다. 졸업 후 학생회와 비대위 안에서 같이 활동을 하진 않았지만 이야기를 듣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의 서로에게 상처주고 상처받고 고민하는 모습이 답답하고 안타까웠으며, 도움이 될 수 없다는 무력감이 나를 한 동안 우울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미 졸업한 전(前)활동가라는 위치가 나를 더 무력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고민이 깊어지던 나는 한 가지 방법을 생각했고, 실행했다. 총여학생회가 비대위로 활동을 정리했던 그 해 가을쯤에 난 한 친구에게 물었다. 네게 예전에 했던 여성주의 활동이 어떤 것이었는지, 네게 무엇을 남겼는지 등. 갈등들의 구체적인 상황을 정리하고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도 없었고, 그것은 나의 몫도 아니었다. 그것은 각자가 스스로에게 묻고, 상대에게 묻고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갈등의 근원에는 삶-여성주의 자체에 대한 물음이 놓여져 있다고 생각했고, 이것에 관해서는 나도 고민하는 바가 있으므로 대화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도 할말이 있었으니깐. 그러나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가 질문을 했던 그 친구는 총여학생회 이전 여성주의 소모임에서부터 있었던 좀 더 세밀한 고민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말을 하는 그 친구의 목소리는 어느새 떨리고 있었고, 눈에는 눈물이 살짝 고이기도 했다. 그것을 발견했을 때 정말 진심으로 나는 ‘아차’ 싶었다. 아직 때가 아니었던 것이다. 아직 그-여성주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지 않은 듯 했다. 그 친구는 ‘요즘 여성주의 책은 보지 않는다’, ‘여성주의 관련 매체들도 부러 찾아 읽지 않는다’라고 말하면 자신과 여성주의 사이에 요즘 거리가 있음을 말하기도 했다. (난, 이 때 이 말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중에 내 삶의 다른 경험을 통해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삶-몸에 있는 어려운 고민과 직접 대면하지 않고 멀리 돌아가거나 순간 눈을 돌린다는 것은 당연할 뿐만 아니라 고민을 지속하는 다른 형태라는 것을.)
그 친구와의 대화로 나는 다시 내 생각의 방향을 돌려야 했다. 그 친구를 시작으로 나는 예전의 여성주의 소모임과 총여학생회를 같이 했던 사람들과 한 명씩 대화를 해보려고 했다. 어떤 방향을 설정한 대화라기 보단 이미 진작 했어야 하는 대화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모여 그것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한 명씩 시간을 두고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좀 더 집단적인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한 명씩 만나 (현재진행형인) 과거의 이야기들을 하기 보단 (현재진행형인) 미래의 이야기를 해보기로 했다. 즉, 다들 자주 모이거나 논의를 길게 하지 않아도 같이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보고자 했다. 그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줄 수 있는 작은 도움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것을 여성주의 소모임과 총여학생회를 했고, 그 활동을 <가입>형태는 아니지만 <지지>형태로 같이했던 이들과 함께 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이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여성주의 소모임과 총여학생회 이후 시간이 많이 지나 <여성주의>라는 이름으로 서로의 고민을 묶어내기에는 서로 공유되지 못한 삶의 조건과 그 속에서의 고민들과 욕구들이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난, 다시 방향 선회를 해야 하는 시점과 지점에 서있는 듯 하다.
나의 이런 고민들은 조금씩 내비친 친구들은 있지만 구체적으로 내 계획까지 모두 말한 친구들은 없다. 나도 아직 모색 중이었기에. 하지만 얼마 전 친구-나비가 “쫌 얘기 좀 해”라고 했을 때, 이젠 조금씩 얘기를 해도 되겠구나 싶었다. 현재 구상하는 아이디어가 있기도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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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디어라는것이 무엇인지 함께 얘기해보고 싶은걸.
당신은 이미 알고 있는 건데...후* *장. 기억나지? ㅋㅋ
이와 비슷한 방식을 좀 더 생각을 해보려고. 아직은 아이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