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트리 스피박을 통해서 주로 접했던 서발턴 연구의 대표적인 학자 라하지트 구하(Ranajit Guha)의 책이 김택현 교수의 번역으로 출간되어, 출판사의 서평을 옮겨온다. 서평을 읽는 것만으로도 공부가 된다.
서발턴과 봉기
라나지트 구하 (지은이), 김택현 (옮긴이) | 박종철출판사
‘서발턴 연구’의 대표작 번역되다!
서발턴(subaltern). 하층민이나 군대 내에서 서열이 낮은 자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이다. 그런데 영국의 지배를 받는 식민 인도에서의 민중들의 저항운동을 ‘서발턴 연구’라는 이름으로 수행해 온 집단이 있었다. 그 대표자는 라나지트 구하(Ranajit Guha)이다. 그 구하의 ‘서발턴 연구’의 대표작인 Elementary Aspects of Peasant Insurgency in Colonial India가 『서발턴과 봉기』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옮긴이는 한국에서 서발턴 연구를 대표하는 김택현 교수이다.
저자의 이력에서 알 수 있듯이, “서발턴 연구” 집단은 기본적으로 맑스주의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정통’을 자처하는 맑스주의자들이 봉기를 자신들이 생각하는 정치, 조직, 의식 등의 기준에 견주는 것에 서발턴 연구 집단은 반대한다. 예를 들면, 대표적인 맑스주의 역사가인 홉스봄 역시 구하에게는 비판의 대상이다.
저자 구하는 식민 시대 인도 농민들의 봉기를 묘사함에 있어서, ‘봉기’라는 말 대신에 ‘딩’, ‘비드로하’, ‘울굴란’, ‘훌’, ‘휘뚜리’ 등을 사용한다. 모두 인도 여러 부족에서 ‘봉기’를 가리키는 말들이다. 이 뿐만이 아니라 지주, 고리대금업자, 경찰서장 등을 가리키는 말들도 당시 인도 여러 부족의 언어를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그것이 “농촌 대중의 그 행위를 특징짓는 의식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구하가 보기에, 영국의 지배를 받던 인도에서 벌어진 농민 봉기는 그 자체로 정치적이다. 그리고 이 책의 원제 “식민 인도에서의 농민 봉기의 기초적 측면들”이 말하듯, 구하는 그 여러 봉기들의 기초적 측면들을 고찰한다. 그리고 각 장의 제목에 나타나 있듯, 부정, 모호성, 양상, 연대, 전파, 영토성 등에서 그 기초적 측면을 확인할 수 있다.
농민들의 저항은 기존의 것에 대한 ‘부정’에서 시작된다. 명확한 방향을 지니지 않고 시작되는 ‘부정’은 그저 전복일 수도 있고, 뒤죽박죽으로 만들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서발턴에게는 ‘부정’ 자체가 중요하다. 그 부정은 지배층과 자신들 사이의 차이 또는 거리의 부정이다.
‘모호성’ 역시 기초적 측면의 하나이다. 도대체 산적질과 봉기 사이의 구분이 모호하다. 어디까지가 개인의 범죄인지 어디부터 사회적 의미를 갖는 봉기인지 경계가 애매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인도 농민들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식민 인도에서 농민 봉기의 ‘양상’은 어떠했을까? 때려 부수기, 불 지르기, 먹기, 빼앗기! 적의 권위의 상징을 부수고, 적의 화려한 주택과 관공서에 불을 지르고, 지주와 대금업자의 가축을 먹어 치우고, 금품을 빼앗는다. 각각으로 보면 그저 파괴와 약탈처럼 보이는 이 행위들은 적절한 형식으로 결합함으로써 식민 인도에서 봉기의 요소가 될 수 있었다.
당연히 봉기에는, 곧 딩, 비드로하, 울굴란, 훌, 휘뚜리에는 ‘연대’가 필요하다. 인도에서 그 연대는 기본적으로 “5개의 번외 카스트” 사이에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전통적인 맑스주의에서 말하는 계급의식으로 무장되지는 않았으나, 배신자들에 대한 배제와 처벌은 무시무시했다.
한 곳에서 시작된 봉기는 ‘전파’된다. 영국과 인도의 관리들은 이를 ‘전염’ 또는 ‘감염’이라 부르지만, 농민은 봉기를 ‘집단 사업’으로 인식했던 것이다. 그들은 농촌에서 협동하며 농사를 짓듯이, 집단 사냥을 나가고 집단 어로 활동를 하듯이, 봉기에서 함께했다. 그리고 이 전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루머’였다. 과학적 인식과 정확한 지휘가 아닌 루머!
끝으로 ‘영토성’이 기초적 측면의 하나였다. ‘쑤드’ 또는 ‘디쿠’라 불린 외지인이 자신의 영토에서 벌이는 행위에 대한 반감과 배타가 식민지 인도의 농민 봉기에서 분명 중요한 작용을 한 것이다. 이방인이 출현하기 이전인 ‘그때’와 이방인이 출현한 ‘지금’을 비교하면서, 인도의 농민들은 새로운 천년왕국을 준비한 것이다.
저자는 독일 농민전쟁을 연구한 치머만과 엥겔스, 프랑스혁명기 농민의 운동을 다룬 르페브르, 중국혁명을 이끈 마오쩌둥, ‘서발턴’의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 그람시 등의 논지를 자신의 소결과 연결시킨다. 비록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지역에서 벌어진 운동들이지만 그것들 모두에 공통된 어떤 것이 있는 것이다.
오랜 전통의 힌두 경전, 매우 낯선 인도 방언들은 독서를 방해하기보다는 식민 인도 서발턴인 농민들의 모습을 생생하기 전달하기 위한 도구처럼 느껴진다. “식민 인도에서의 농민 봉기의 기초적 측면들”이라는 원제가 매우 딱딱하게 느껴질지 모르나, 『서발턴과 봉기』는 마치 『수호전』과 같은 매우 재미있는 역사서이다.
원문 링크 ; 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 ··· 85022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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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 민중신학도 민중언어로서의 "유언비어"에 매우 주목했는데. 광주 경험을 예수 이야기를 "유언비어"의 형태로 전승한 1세기 갈릴래아/이스라엘 민중과 연결시켰더라는...
표지의 투박함에도 불구하고 내용은 매우 흥미로워 보이는데 짬을 내서 읽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언젠가 꼭 읽게 될 것 같아요.

이번 촛불봉기에도 유언비어론을 내세운 집단이 있었지요. 이런 점에서 볼 때 다중의 표현은 유언비어로도 나타난다는 점, 그렇기에 일상의 유언비어에 좀 더 귀기울일 수 있는 예민함이 내게 있으면 좋겠네요. 유언비어를 그냥 듣고 잊는 관성이 있는 것 같아서요.
좋은 정보 얻어갑니다. <젠더트러블>도 그렇구요. 리플에서 용기를 얻었어요. ^^ 즐거운 주말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