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 뷰/영화6 Articles

  1. 2008년 02월 23일 2001년 여름과 메트로폴리스
  2. 2008년 01월 03일 영화 <사랑니>의 시공간, 그리고 하이힐 (4)
  3. 2007년 10월 15일 <원스once>, 한때-한 번-동시에 (6)
  4. 2007년 10월 15일 <본 얼티메이텀>, 적과 위기 (2)
  5. 2007년 01월 14일 내 곁에 있어줘Be with me (2)
  6. 2006년 12월 13일 혁명을 둘러 싼 것들, 랜드 앤 프리덤 (2)
리 뷰/영화 2008년 02월 23일 12시 33분

2001년 여름과 메트로폴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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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여름. 이렇게 적고 보니 정말 멀게 느껴지는 때이다. 그 때 우리 집에는 물이 차 있었다. 여름 장마와 한 건설회사가 수로를 막아 (생각해보니) 다소 어이없는 수해를 입었던 것이다. 수해보다 연인과의 헤어짐이 더 힘들었던 나는 나름대로 수해를 즐기는 상황이 되었다. 옥탑방에서 자는 것도 새로웠고, 시멘트 바닥에 찬 물을 말리기 위해 선풍기와 보일러를 틀어 놓은 방에서 황석영의 『손님』을 읽는 재미도 괜찮았다. 이 때가 20대 이후 가장 한가한 때였고, 그래서 그만큼 내겐 쉽지 않은 때이기도 했다. 뭔가를 해야 살아있음을 느끼는 내게 집-알바를 오가는 상황은 무료하기만 했다.

종로3가의 한 팬시점에서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일을 하고, 집에 오고, 방학 동안에 다 읽기로 다짐한 『청년을 위한 한국현대사』를 정독하고. 이런 단조로운 생활이 반복되는 여름. 이 때 가장 재미있었던 경험은 서울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애니를 보는 것이었다. 그 후로 한 번도 이 행사에 가서 애니를 보지 못했기에 그 때의 기억은 생생하고 소중하게 남아 있다. 무턱대고 개막식 상영관(정동극장)에 찾아갔다 입석을 끊어서 개막작 <메트로폴리스>와 감독 린 타로를 보게 되었고, 그 다음날에도 무작정 심야상영을 보겠다고 찾아갔다 입석을 끊어 새벽까지 애니를 보았다. 물론 두 번 다 요행으로 자리에 앉아서 영화를 보았다. 개막식에는 빈자리가 조금 있어서, 심야상영에서는 한 애니평론가 혹은 기자가 영화가 시작하자 짐을 싸서 가는 바람에 그 자리에서 영화를 볼 수 있었다. 내가 (기사로만) ‘아는’ 기자였고, 짐 싸는 폼이 다시는 오지 않을 것 같아서 그 자리를 내가 차고 앉았다. 다행이도 그는 오지 않았다. 상영작은 <원령공주>, <라스트 뱀파이어>, 그리고 기억이 안 나는 미국 풍자 애니.

정은임의 라디오 방송에서 애니메이션 음악을 소개하는 것을 듣다 옛 기억에 빠졌다. 그 덕에 <메트로폴리스>를 기회가 생기면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메트로폴리스>는 데즈카 오사무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애니이다. 린 타로 감독은 애니 <X>의 극장판 감독이며 화려한 영상을 구사하는 감독으로 유명하다. (내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영화감독 서극과 비슷하게 생겼던 것 같다. 간혹 나는 <메트로폴리스>를 다른 사람에게 소개할 때 “영화 <A.I.>와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어”라고 소개하곤 한다. ‘로봇이 “Who am I?"라는 질문을 갖게 되었을 때, 그것은 어떻게 풀려야 할까’라는 질문이 이 두 영화를 관통하는 질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을 푸는 서사 구조와 표현은 많이 다르다. (이것을 다 쓸 여유는 없으니 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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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폴리스>에서 내가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I can't stop loving you 가 흐르면서 도시가 무너지는 장면이다. 이 곡만 들으면 노래가 슬픈데, 애니에서는 그렇게 슬프지가 않다. ‘도시가 무너지는 구나’ 정도이지 ‘어쩌면 좋아’는 아니다. 보면 그대로 수용하게 된다. ‘무너지네. 어쩔 수 없지 뭐. 다시 잘 살아 보자고. 잘 되겠지 뭐.’ 이런 식으로. 사실 무너지는 장면이 예쁘기도 했다. 지금에 와서 드는 생각은, 진정한 해체는 구축일 수밖에 없는데 감독은 도시의 무너짐(해체)이 새로운 것을 구축하는 것임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영화의 끝, 도시가 무너지고 난 다음을 어떻게 이해하는지에 따라 각자가 다를 것이다. 같이 볼 사람과 이 이야기를 하게 되면 재미있을 것 같다. 그래서 약간 흥분된다. (근데, 혼자 보면 어쩌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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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사랑니>를 두 번째로 봤다. 정유미의 불안하고 풋풋한 연기를 한 번 더 보고 싶고, 이 영화에서 겹쳐지는 인물과 시간의 구성을 미흡하게 이해한 면이 있어 한 번 더 보고 싶었다. 다시 보니 정유미의 연기는 더 좋았고, 이 영화의 같지만 다른 인물과 과거-현재-미래의 시간을 뒤섞어 버리는 서사 구조는 정말 인상적이었다. 현재 하고 있는 사랑에서 문득 옛 연인과의 비슷한 상황과 행위를 마주치게 되면 기분이 묘한데, <사랑니>는 이 순간을 잘 포착했을 뿐만 아니라 이것을 통해 사랑이 무엇인지를 끈질기게 묻는다.

이 영화의 시간 개념이 공간적으로 단번에 드러나는 장면은 조인영(김정은 분)이 자기 집에서 러닝머신으로 운동을 하는 장면이다. 한국형 옛집 지붕 아래에 어색하게 놓인 러닝머신과 그 위에서 자연스럽게 운동을 하는 조인영의 모습은 시간이 응축된 공간을 보여준다. 이런 공간은 시간에 의해 교란되고, 주체의 정동에 의해 교란된다. 후반부에 고등학생 이석, 30살의 이석, 정우 그리고 30살의 조인영이 인영-정우의 집에 모여 있는 한 장면에서 공간의 교란은 잘 나타난다. 평상에 누운 30살 이석은 옆에 같이 누워있는 정우에게 나무에 핀 꽃을 보며 “꽃이 피었네” 하고 말한다. 정우는 “꽃이 피었지” 하고 응수한다. 지금까지 30살 이석과 정우와 잘 어울리지 못하던 고등학생 이석도 “정말 꽃이 피었네” 하고 말한다. 그리고 인영과 이석은 마주 보고 웃는다. 고등학생 이석이 본 것은 지난날 모텔에서 인영이 들고 온 난에 핀 꽃이다. 인영과 이석은 다른 꽃을 보며 다른 기억을 느낀 것이다.

이 영화에서 이 세 명의 남성이 한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긴장감이 돈다. 그들이 모두 인영과 사랑하는 관계라는 긴장감과 그들이 각각 차지하고 있는 시간 때문에 그렇다. 그들은 어떤 측면에서는 과거에만 있거나 현재에만 있거나 그래야 하는 존재들이지 같은 공간에 있어서는 안 될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그들은 그 공간에서 모두 ‘동상이몽’을 꾸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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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은 시간과 주체의 정동에 의해 교란된다.


영화에는 하이힐이 몇 번 등장한다. 하이힐을 카메라가 주목하는 장면은 두 번 정도이지만 30살 조인영이 하이힐을 일상 시에도 싣고 있음을 감안한다면 꽤 자주 나온다. 고등학생 이석에 대한 사랑이 옛 첫사랑에 대한 사랑인지 아닌지 고민하던 인영은 영화 중반부에 가면 현재의 고등학생 이석을 자신이 사랑함을 알게 된다. 하지만 이것은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아닌 듯하다. 옛 사랑이 아닌 현재의 사랑이지만 현재의 사랑이 옛 사랑보다 반드시 더 강렬한 것이 아닌 만큼 인영은 옛 사랑에 대한 상념에 빠진다. 혹은 사랑 그 자체에 대한 생각에 빠진다. 이 때 인영은 차 속에서 하이힐을 벗어놓고 있다. 조수석에 하이힐을 비추고 카메라는 인영의 발을 보여준다. 그 발뒤꿈치에는 반창고가 붙어 있다. 그녀는 아픔을 참으면서 하이힐을 신고 있었던 것이다.

하이힐은 분명 여성들에게는 강요된 미적 도구이다. 하지만 이 강요 속에서 여성들은 하이힐을 선택해서 신으며 자신의 미를 찾고 자신감을 갖기도 한다. 사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속에서의 여성은 항상 이중적이다. 온전한 강요가 없으며 온전한 능동성이 없다. 여성들은 이 사이에서 계속 교섭하고 엇나간다. 하이힐은 예쁘지만 아픈 존재이다. 고등학생 인영이 고등학생 이석이 다른 사랑을 택한 것이 너무 슬퍼 눈물로 양호실에 누워있을 때 양호 선생님은 인영을 재우고 실내화를 벗고 하이힐을 신으며 거울에 자신의 다리를 비춰본다. 그리고 30살 인영은 하이힐을 벗고 묘한 사랑에 대한 상념에 빠진다.

인영에게 자신이 인정하게 된 사랑도 이런 하이힐과 같은 존재가 아닐까. 고등학생 이석을 사랑하는 게 현재 조건에서는 손가락질 받는 일이다(‘원조교제’. 영화에서 인영은 이것 때문에 학원 학생들에게 따돌림 당한다). 하지만 이 보다 더 고민인 것은 자신의 안에 있었던 사랑이 계속 변하고 요동치며 뭔지 알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일 것이다. 그녀는 현재 동거남 정우와 옛 사랑 30살 이석, 그리고 현재 새롭게 사랑하게 된 고등학생 이석의 사랑 속에서 아픈 사랑니를 어루만진다. 사랑니. 사랑이라는 말에 붙은 아픈 것이 아니겠는가.

영화 마지막 장면. 맹장 수술을 한 고등학생 인영은 고등학생 정우에게 말한다. “나 다시 태어나면 이석이 되고 싶다”고 말이다. 이 말은 쉬운 말이 아니라 좀 더 곱씹어 보고 있다. 인영은 왜 이석이 되고 싶어 했을까. 그가 되면 그녀는 사랑을 온전히 맞이하게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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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다시 태어나면 이석이 되고 싶어' 그가 되면 그녀는 사랑을 온전하게 맞이하게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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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음.. 멋진 감상글인걸? ^^ 나도 몇 년 전에 봤는데, 글 읽으니 새록새록 기억이 난다. 좋았는데..^^

    꿈의택배
    2008년 01월 04일 16시 35분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좋은 영화지^^ 두 번째로 보니 첫 번째 때 보이지 않던 대사와 장면들이 조금 보여서 놀랐어^^

       댓글주소  수정/삭제 2008년 01월 06일 10시 50분
  2. 우공님. 글 잘 읽고 갑니다. 섬세한 감정선이 흐르고 있는 영화같아요. 저는, 아직 정리가 안되네요, 특히 시간. ㅠ 덕분에 좋은 영화 한 편 봤어요. ^^

    2008년 06월 16일 23시 14분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저도 시간은 어설프게나마 설명하고 말했던 것이에요. 풀어야 숙제이죠. 이 영화에서 표현되는 인물들의 감정은 참 절묘합니다. 전 대사와 대사 사이에 들어오는 행동들이 특히 그러한 것 같아요. 햐, 말하다 보니 영화 다시 한 번 보고 싶네요 -

       댓글주소  수정/삭제 2008년 06월 17일 00시 13분

once, 그 첫 번째 : 한때

Guy는 노트북 앞에서 가사를 적고 있다. 그는 한참 화면을 보다 가사를 다시 읽는다. 그리고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른다. 그가 뭘 보고 있었던 걸까. 그가 보고 있던 것은 캠코더로 찍은 흔들리는 영상이다. 그 영상엔 두 명, 한 연인이 나온다. 리듬도 가사도 슬프다. 그는 계속 노래 부른다. 아니 외친다. 너와 나 사이를 갈라놓은 것은 당신의 거짓말이었다고. 그들은 한때 연인이었다.

Girl은 잠시 쉬러 나왔다. 그는 방금까지 스튜디오에서 몇 시간 째 노래를 녹음하고 있었다. 호기심에 옆방을 봤다. 너무 예쁜 피아노가 스탠드의 은은한 빛을 받으며 어두운 방에 놓여 있다. 곧 Guy가 따라 온다. 그리고 그녀에게 노래를 불러 보라고 말한다. 그녀는 머뭇거리고 사양하다 노래를 부른다. 하지만 슬픈 감정이 진정되지 않아 끝까지 부르지 못한다. 그는 이 노래를 싫어했었다. 그녀의 남편은 이 노래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들은 한때 부부였다.


once, 그 두 번째 : 한 번

드르륵 드르륵. 길바닥에 청소기를 Girl이 끌고 간다. Guy와 함께. Guy는 Girl의 피아노 연주를 듣기 위해 악기가게로 가고 있다. 곧 그들은 아무도 없는 악기 가게에서 기타를 치고 피아노를 치고 노래를 부른다. 열정적인 목소리를 가진 Guy와 낮지만 깊은 목소리를 가진 Girl. 그들의 소리는 너무 아름답다. 사랑스럽다. 한 번이었다. 그들의 사랑은 한 번이었다.


동시에, 당장, 즉시(at once)

한때의 사랑, 한 번의 사랑. 그들은 서로를 만나며 두 가지 사랑을 함께 한다. 서로를 만날 때 한 번, 서로를 만났음으로 한 번. 음악과 연인을 찾아 런던으로 Guy는 가고, Girl은 남편과 함께 살기로 한다. 런던으로 가는 버스에 탄 Guy의 품에는 밤새 녹음한 CD가, Girl의 집에는 Guy와 함께 노래를 연주했던 피아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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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표현이 멋진대요.ㅋ

    노래가사가 감정을 움직인 멋진 영화였죠.ㅎ

    외국에 나올 때 포스터에 쓰인 이 문구가 기억이 나네요.

    How often do you find the right person?

    once..

    2007년 10월 16일 00시 01분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 그런데, 제목이 <원스>인 이유가 무엇인가.

    =글렌 한사드: 내 입장에서 ‘원스’라는 말은 몇 가지 의미가 있다. 가장 중요하게는 그 단어를 사용해서 남자의 상태를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다. “음반을 만들기만 한다면(once I make a record) 행복해질 텐데”, “여자친구를 되찾기만 한다면 삶이 나아질 텐데” 처럼 말이다. 또한 이것은 “옛날 옛적에”(once upon a time)로 시작하는 동화 같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제목의 ‘공식적인’ 유래는 사실, 존이 애초에 시나리오를 쓸 때, 남자와 여자가 단 한번(once)의 키스를 나눈다는 점이었다. 물론 나중에 존이 키스신을 시나리오에서 빼버렸지만.


    요번 씨네21에 이 두 주인공을 서면 인터뷰 한 기사가 실렸어. 그래서 또 난 냉큼 찾아봤지~
    거기에 글렌의 'once'에 대한 답변이 있더라구.^^

    꿈의택배
    2007년 10월 17일 14시 48분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3. 스크랩했어.. ^^
    후배들이 강력(!!!) 추천하는 영화이네..
    음악 때문에도 그렇고.

    2007년 10월 21일 09시 53분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음악만 들었다면 좋다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 같은데,
      영화를 보고 나니 좋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댓글주소  수정/삭제 2007년 10월 22일 09시 44분

리 뷰/영화 2007년 10월 15일 16시 21분

<본 얼티메이텀>, 적과 위기

Know your enemy

영화 초반. 러시아에서 부상을 입고 병원에 들어선 본은 자신을 뒤쫓던 러시아 경찰 2명을 간단히 제압하고 한 명의 경찰에게 총을 겨누고 말한다. '나의 적은 네가 아니다.' 그렇다면 그의 '적'은 누구 혹은 무엇인가? 본(Bone) 씨리즈 3편에서 본이 알고자 하는 건 자신을 '살인병기'로 만든 사람이 누구인가, 언제 살인병기가 되었는가 이다. 본은 이 시작을 찾으면서 자신을 둘러 싼 세력이 어떤 세력인지 알아간다. 그리고 결국 3편에서 그는 자신이 속한 프로젝트의 담당 박사를 만나게 된다. 그곳에서 본이 발견하는 건 '적'이다. 하지만 그 적은 타인이 아니라 자신이다. '데이빗 웹'을 버리고 '제이슨 본'이 되는 선택을 했던 사람이 자신이었던 것이다. 영화 초반 '나의 적은 네가 아니다' 라고 경찰에게 말하기 직전 본은 가물가물거리는 안개같은 기억을 떠올리며 괴로워한다. 그는 그 기억 속 인물들이 자신의 적이라고 생각하고 경찰에겐 적이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기억 속 인물도 적은 아니었다. 그 기억 속 인물들--CIA 부국장, CIA 연구소장 등 -- 이 본의 삶을 결정함에 있어 책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선택'의 주체가 자신이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어쩌면 그렇기에 본의 몸-기억(현재-기억)은 과거-기억을 떠올리는 것을 거부했는지도 모른다. 그는 과거-기억과 마주칠 때마다 괴로워한다.


9.11 이후 영화
- 두 개의 위기, 미국의 위기

영화 끝에서 본은 내적 고민에 이르게 되지만 그는 CIA로 상징되는 국가로부터 '위기'로 인식된다.(하지만 이 고민이 길게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 정부가 키워낸 본이지만 더이상 본을 통제할 수 없게 된 미국 정부는 그를 위기로 규정한다. 그가 연루된 사건이 있을 때마다 CIA 부국장은 항상 국가 위기라고 말한다. 그는 본이 사살되어야 국가 위기가 해결된다고 생각한다. 이와 반대로 랜디는 본을 위기라고 여기진 않는다. 그는 본을 둘러싼 CIA의 비밀 프로젝트 자체를 위기라고 생각한다. 랜디는 미국을 바로잡기 위해 본과 협력한다. 이 위기는 서로 다른 위기인것처럼 보이지만 '미국의 위기'라는 점에서 하나의 위기이다. 본은 이 위기의 중요한 키워드인 것이다. 이것은 9.11. 이후 미국을 소재로 한 영화의 무슨 공식 같다. 미국은 위기고, 영화는 그 위기를 이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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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본 아이덴티티 봤어? 본 얼티메이텀은 아직 보지 못했는데.
    아이덴티티 최고ㅋ

    나도 시험 끝나면 마저 볼꺼야.

    navi
    2007년 10월 16일 09시 19분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아이덴티티, 슈프리머시 모두 봤어. 3편을 보고 나니 앞에 두 편을 다시 한 번 봐야 겠다는 생각이 드네 -

       댓글주소  수정/삭제 2007년 10월 16일 09시 31분

리 뷰/영화 2007년 01월 14일 17시 44분

내 곁에 있어줘Be with me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 비록 육체는 모든 고통으로 사라질지언정
사랑은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없을 때 사라지는 것이다"

"내 곁에 있어줘요, 사랑하는 사람이여,
나의 미소가 사라지지 않도록"

- 영화 <내 곁에 있어줘Be with me> 중에서


1. 나를 울게 하지 말아주세요. 나를 울게 해주세요.

2. 영화를 혼자 봤다. 그래서 누군가와 같이 보고 싶다. 몇 번이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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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영화관에서 재상영하고 있나봐요-?

    우공 힘내요-

    2007년 01월 19일 10시 15분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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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땅으로 떠나 보내지만
대지는 우리의 것입니다, 동지여
이 곳에서부터 전의를 다져야 합니다.
전투는 지속될 것이고 우리의 적은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더 많습니다.
언제가 우리가 더 많을 것입니다.
내일은 우리의 것입니다, 동지여"

- 쿠간의 장례식에서 블랑카가 한 대사, 그리고 블랑카의 장례식에서 나온 대사



켄 로치의 「랜드 앤 프리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이 개봉된다고 했을 때 난 「랜드 앤 프리덤」이 다시 보고 싶어졌다. 마치 오래된 갈증으로 목이 칼칼해져서 물을 찾는 느낌 같았다. 대학 1학년 때 혁명에 관한 영화라는 말에 잔뜩 호기심을 가지고 봤지만 잘 이해하지 못해서 그랬던 것일까. 나의 갈증은 무척 오래된 것 같았다.


영화를 다 보고 글을 썼는데 그만 그 글이 모두 날아가서 글쓰기를 그만두었다. 그러다 다시 영화를 처음부터 보았다. 그런데 이 영화는 처음부터 심상치 않은 영화였다. P.O.U.M.(통일노동자당)의 당원이며 이 영화에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노년에 데이브 카(이안 헌트 분)가 집에서 쓰러진다. 두 명의 구급 대원이 데이브가 사는 아파트에 올라가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하는데, 이 아파트 계단에 써있고, 붙여있는 전단지가 예사롭지 않다. 아나키스트를 상징하는 ‘A’ 표시, ‘NOT RACISM’이라고 써있는 붉은 전단지가 일상의 배경으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이 밖에 ‘NF’와 ‘ARA’라는 약어의 낙서가 있는데 이것은 내가 모르지만 무슨 뜻이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혹시 누가 아시면 도움을...) 이 밖에도 이 영화 초반부에는 영화에 끝과 다시 만나는 소도구가 보이는데 그것은 붉은 손수건이다. 이 손수건에 베어있는 슬픔과 아련함은 영화가 끝나면 알 수 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날 때 이 손수건은 투쟁의 상징물이 된다.


이 영화의 마지막 대사는 윌리엄 모리스의 시이다.


“전투에 참여하라

아무도 실패할 수 없다

육신은 쇠하고 죽어가더라도

그 행위들은 모두 남아 승리를 이룰 것이므로”


윌리엄 모리스라는 이름으로 구글에서 검색해보니 이 사람도 무척 흥미롭다. 윌리엄 모리스의 대한 소개는 많지만 그의 혁명성에 초점을 맞춰서 소개된 책은 박홍규 교수가 번역하고 해설한 『에코토피아 뉴스』이다. 이 책에 대한 알라딘의 소개에서 유독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짧게 언급된 이 책의 본문이다.


“지금 제가 당신에게 묻고자 하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노동의 대가가 없는데 어떻게 사람들이 일을 하게 되는가? 특히 어떻게 그들이 열심히 일하게 되는가 하는 점입니다.”

“노동의 대가가 없다고요?”

해먼드는 진지하게 말했다.

“노동의 대가는 '삶'입니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뛰어난 노동에 대해서도 대가가 없지 않습니까?” 내가 물었다.

“아닙니다. 많은 대가가 있습니다,” 그가 말했다.

“그것은 바로 ‘창조’라는 대가입니다. 과거의 사람들이라면 그것을 ‘신이 받는 임금’이라고 말했을지도 모르지요. 뛰어난 일을 뜻하는 ‘창조의 기쁨’에 대해 당신이 대가를 지급받고자 한다면, 그 다음에는 아이를 낳는 데 대해서도 대가 청구서를 보낸다는 말까지 듣게 될 겁니다.”

- 본문 165~166쪽 중에서


이렇듯 이 영화는 ‘혁명을 둘러 싼’ 것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특히 이 영화에서 묘사된 인물들의 모습은 복잡하기 이를 때 없다. (이것에 대해서는 노바리 님의 글에서 잘 묘사되어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 영화도 혁명의 한 과정으로 배치되는 것이 아닐까. 블루칼라의 시인. 왜 켄 로치를 그렇게 부르는지 조금은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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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노동의 대가는 삶, 신이 받는 대가는 창조.
    창조하는 삶.. 아후 아침부터 이렇게 힘이 되는 글을. (감사.. 꾸벅) 단, 쫓기지 않고 자율적으로 창조하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2006년 12월 19일 09시 15분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쫓기지 않고 자율적으로 창조하는 삶"이란 루냐가 추가한 글도 무척 마음에 들어요. '우리가 어떻게 매일 새로워질 수 있는가?' 이 질문은 예전에 내 친구가 그리고 내가 했던 생각이었는데, 루냐의 글이 고민의 고리를 풀 수 있는 하나의 단초를 알려주는 듯 하네요.

       댓글주소  수정/삭제 2006년 12월 19일 09시 58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