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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문화와 엘리트 담론 사이의 혼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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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여숙 화랑에서 퍼옵니다. 화랑 홈피에 가면 더 자세한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예술적 시도를 거듭하는 독일 현대미술가인 스테판 칼루자는 이번 사진 프로젝트를 통하여 역사의 순환구조를 제시하며 우리의 역사의식에 대해 진지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형식적으로는 각각의 디아섹 사진을 띠 형태로 빈틈없이 연결하고 앤틱가구를 함께 배치하여 하나의 응축된 설치작업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립벤트롭씨의 응접실'은 국제적으로 많은 비평가들과 큐레이터들로부터 가장 주목할 만한 설치작업이라는 찬사를 받은 바 있습니다. 박여숙 화랑에서 한국 최초로 소개하는 그의 이번 개인전은, 평면예술인 사진을 3차원 공간에 끌어들이는 설치작업을 통해 그가 의도한 가상 공간의 체험을 관람자에게 유도하는, 참신하고 괄목할 만한 전시입니다. 희망적인 역사의 르네상스를 떠올리며 미소 짓는 기회를 가지시도록, 스테판 칼루자의 '립벤트롭씨의 응접실'로 변모한 전시장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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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pring” - The new contemporary Artworks Festival


이 책의 원제는 A History of Six Ideas: An Essay in Aesthetics 이다. ‘여섯 가지 개념의 역사: 미학에 관한 에세이’ 정도 되겠다. 타타르키비츠는 이 책이 자신의 『미학사History of Aesthetics』라는 책과 짝을 이루고 있다고 말한다. “필자가 이 책보다 먼저 썼던 『미학사』는 인물들의 역사, 즉 지나간 시대에 미, 예술, 형식, 창조성 등에 관해 논했던 집필자와 예술가들의 역사였다. 이 책은[『미학의 기본 개념사』] ...... 미학적 문제, 개념, 이론들의 역사를 다루는 것이다.” 『미학사』는 총 3권으로 한국에는 2권까지 번역되어있다. 1권이 2005년에, 2권이 2006년에 나온 것으로 봐서는 3권은 2007년인 올해에 나올 것으로 기대해도 될지 모르겠다.
현재 『미학의 기본 개념사』 ‘서론’과 ‘1장 예술: 개념의 역사’까지 읽었는데 아주 흥미롭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강의하듯이 써진 덕에 호흡이 끊어지지 않고 읽을 수 있어 글 읽는 맛이 나서 좋다. 내가 흥미로웠던 부분은 현재(2차 대전 이후를 말하는 듯 하다)의 상황을 ‘승리한 아방가르드의 시기’로 규정한 곳이었다.
“1차대전 이후, 특히 2차대전 이후 아방가르드는 승리를 거두었다. 사람들은 인습을 파괴하는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을 추종하여 명사 대접을 하고 특별 대우를 하였다. 보수적인 예술가들은 수세에 몰렸고 아방가르드를 모방함으로써 간신히 구제받았다. 그 이후로는 아방가르드만이 어엿한 예술로 대접받았다. 투쟁적인 아방가르드[”자유라는 것이 예술에서 허용되는 정도라 아니라 꼭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아방가르드]를 모더니즘으로 이를붙인다면, 양차대전 이후에 시작되는 시기는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어떠한 아방가르드도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지금은 아방가르드밖에 없기 때문이다.”(64쪽)
이 아방가르드 중에서도 “가장 큰 새로움”은 초현실주의자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전적으로 창조성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고 그것만이 중요할 뿐, 창조성으로 제작된 대상은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하는데, 이것을 타타르키비츠는 “예술작품 없는 예술-이것은 이론상의 변화일 뿐만 아니라 예술 개념 자체의 변화이다. 이것이야말로 새로운 것을 탐욕스럽게 갈망하는 시대에 나타난 가장 큰 새로움 것이다.”라고 평한다. 이것은 ‘예술’에 대한 공격일 뿐만 아니라 예술을 제거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타타르키비츠가 이러한 예술 개념에 동의하는 것 같지는 않다.
“예술은 본성적으로 자유의 한 영역이며 여러 가지 형식을 취할 수 있다. ...... 그러나 예술은 제한된 범위의 자유이다. 말하자면 형식의 구성, 사물의 모방, 경험의 표현 등을 구체적인 작품 속에 실현시키는 한도 내에서의 자유인 것이다. 실현되지 않는 고안 자체는 예술이 아니다. 또 예술은 ‘스스로 주목을 끌 수 있는 그런 것’도 아니다. 만약 그런 것을 예술이라고 이름붙인다 하더라도, 그 표현만 있을 뿐 개념은 보존되지 않을 것이다.”(69쪽)

W. 타타르키비츠

2005년과 2006년은 제라르 프로망제에게 대단한 해가 될 것이다. 그를 위한 여섯 번의 전시가 <회고전 1962-2005>의 형식으로 프랑스와 해외를 순회한다. 올 봄에 이미 롱스 르 소니에에 위치한 돌 미술관에서 전시를 마쳤고 11월 서울의 국립현대미술관 순회를 앞두고(이어 2006년에는 뤽상부르크, 쿠바의 하바나, 프랑스의 루비에, 에브로에서 전시가 이어질 예정이다.) 이번 여름에 라 센느 쉬르 메르의 빌라 타마리스 아트센터에서도 같은 전시가 개최되었다(9월 18일까지). - <리베라시옹>과의 인터뷰에서 [전문보기]

제라르 프로망제Gérard Fromanger, 1939 ~
저는 모든 색에 동등한 기회를 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각각의 작품 속에 온갖 색들이 모두 등장합니다. 물론 지배적인 하나의 색이 있고 몇몇 색들은 눈에 잘 띠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푸른 클라인(클라인의 파란색)”, “푸른 모노리(모노리의 파란색)”라고 말하는 것처럼 어떤 색에 특별하게 집착하여 빠져있지는 않습니다. 저의 작업에서 색들은 모두 시민권, 생존권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서로 투쟁할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색들이 마치 사람처럼 인격을 부여받는 것이죠.
최근에 저는 존 포드(John Ford)의 영화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My Darling Clementine>을 다시 보았습니다. 그는 아무것도 꾸며내지 않고 그저 현실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현실은 모든 계층과 비열함, 전쟁, 만취한 술꾼, 배신, 승리한 또는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 마피아, 총격, 범죄 등과 함께 합니다. 최고의 작품이죠. 그는 현실로 유토피아를 만듭니다. 그는 관념론자들처럼 자신의 유토피아가 실제로 도래할 것이라고 하지 않고 현실을 유토피아로 바꾸어 놓는다고 말합니다.
들뢰즈에 따르면 창조의 장은 새로운 저항의 장입니다. 미술가는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말하고 있다고 단언할 수 없습니다. 그냥 작은 술집의 대화 속에서 변화하고 있는 것이죠. 보르헤스(Borges)는 사막에서 손에 모래를 한 줌 쥐어 왼쪽에 뿌리고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저는 방금 사하라 사막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우리가 이렇습니다. 미술가들은 한 줌의 모래로 사하라 사막을 바꾸어 놓습니다.



디자이너가 아닌 이들의 디자인 전시.흥미진진한 인물들이다!!
그래서 이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의 면면은 굉장히 다양하다. <기계비평>이라는 책을 출간하여 기계문명을 바라보는 인문학자의 시선을 보여주는 사진평론가 이영준, <근대의 책읽기>,<끝나지 않는 신드롬>,<혁명과 웃음>(공저) 등 문제작들을 잇달아 내놓아 주목받고 있는 문화 연구자 천정환, 과거 동성애자 인권운동가로 활동했던 예술비평가 임근준, 유럽을 무대로 활발한 활동을 벌이며 명성을 얻고 있는 아티스트 양혜규, 평택 대추리에 ‘위장전입’한 후, 사진관을 열어 미군기지 이전으로 인해 뿔뿔히 흩어질 대추리 사람들의 기념사진을 찍어 주는 작업으로 유명한 다큐멘터리 사진가 노순택 등이 각자 자신이 생각하는 ‘정치’, 혹은 ‘정치성’이 무엇인지에 대해 자신의 매체를 통해 직접적으로 발언하고 있다.
물론 <한국생활사박물관>으로 2004년 백상예술대상 편집부문 대상을 수상한 편집디자이너 김영철과 세로쓰기 글씨체 ‘꽃길’을 비롯하여 90여개의 한글 폰트를 디자인한것으로 유명한 글자 디자이너 이용제, 분당의 대안학교인 <이우학교> 프로젝트에서 학교에서 사용되는 모든 것들을 좀더 아름답고 편안하게, 그리고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디자인해서 화제를 모았던 이정혜 등굵직굵직한 젊은 디자이너들의 작품들 역시 눈길을 끌고 있다.
또한 디자인사회연구소장 권혁수, 공공미술추진위원회 상임위원 겸 사무국장 최범 등 우리 디자인계의 ‘원로’들도, 정치와 디자인의 관계에 대해서 진지하게 모색하는 작업을 보여준다. [전문보기]

아도르노가 지적했듯이 현대의 예술은 철학과 상보적인 관계를 이루고 있다. 오늘날의 전시회 카탈로그에서 작품의 빈약성과 철학의 풍성함을 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오늘날 비평은 작품 이후에 오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성립 자체에 참여한다. 과거에는 어떤 대상이 작품인지 아닌지 판별하는 기준이 작품 밖에 미리 존재했지만, 오늘날 예술은 자신을 예술을 만들어주는 정의를 자기 안에 품고 나와야 한다. 뒤샹이 소변기로 만들어낸 것은 바로 이 새로운 예술의 정의이다. 오늘날 예술에 '주제'라는 게 남아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내가 왜 예술인가'하는 것이리라. 이 자기 정체성self-referentiality 때문에 오늘날 예술은 비평에 결정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으며, 이 때문에 원하든 원하지 않든 철학과 밀접한 공모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진중권의 현대미학 강의』
베이컨의 회화는 이 보이지 않는 힘을 가시화하는 가운데 시간성을 내포하게 된다. 회화는 전통적으로 공간예술에 속했으나, 베이컨의 그림은 이처럼 리듬을 묘사함으로써 시간예술에 근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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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데요.ㅎ
그렇죠? ㅎㅎ 이 글과 더불어서 제가 이불에 대해 본 흥미로운 글은 임근준 님의 <크레이지 코리아, 아트 인 서울>(제목이 가물가물^^)에서의 글이었어요. 이 책은 이불 이외에도 오늘날 한국 출신의 현대 미술 작가들을 더 다루고 있는데, 저는 쉽지는 않았지만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퍼온 이 글을 보고 이 책을 다시 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