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의 시인’이라는 수식어가 원태연이란 이름 앞에 붙어있는 것을 실제 본 적은 없지만, 어딘가에서 누군가 이런 표현을 썼을 것 같다. 고등학교 1학년 겨울 한참 첫사랑이란 열병에 걸려 있던 내게 첫사랑 ‘그녀’가 이 시집을 소개해주었다. 그의 시에는 사랑의 설렘이 잘 드러나 있다. 노골적으로 말이다. 그래서 그의 시를 처음 접한 그 당시에도 나는 ‘뭐 이런 뻔한 내용을...’이라고 하며 냉소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새 마음에 남은 시 구절을 곱씹는 나를 보며 나도 ‘뻔한 놈’이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근데 이 시인이 영화를 찍었다. 당연히 사랑 영화. 제목도 그의 시 어딘가에서 뽑았을 것 같다. <슬픔보다 더 슬픈이야기>. 내가 그의 시를 안지도 벌써 10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그는 사랑을 이야기한다. 아니 앞으로도 그는 그럴 것 같다. 왠지 ‘뻔’해보이는 이 영화. 뭔가 ‘문제’가 있을 것 같기도 한 이 영화를 왠지 보고 싶어진다.
'2009/02'에 해당되는 글 3건
- 첫사랑의 시인 원태연 (6) 2009/02/28
- 아름다운 사람과 사랑의 변주곡 2009/02/14
- 그의 글은 불편하다 (2) 2009/02/10
오랜만에 시와 노래를 듣고 읽는다.
아름다운 사람
작사: 김민기
작곡: 김민기
어두운 비 내려오면
처마 밑에 한 아이 울고 서있네
그 맑은 두 눈에 빗물 고이면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세찬 바람 불어오면
들판에 한 아이 달려오네
그 더운 가슴에 바람 안으면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새하얀 눈 내려오면
산 위에 한 아이 우뚝 서있네
그 고운 마음에 노래 울리면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 김민기가 부른 노래와 나윤선이 다시 부른 노래는 그 맛이 다르다. 음악은 여기서 들을 수 있다. http://skokuma.tistory.com/tag/%eb%82%9 ··· 584%25a0
저 노래 가사에 나오는 '아이'가 생물학적인 아이만이 아니라 이 세상을 '아이'처럼 사는 사람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느 노인이 처마 밑에 울고 서있고, 어느 나이든 여성이 들판을 달리며,
어느 청년이 산 위에 서있다고 한들 그들이 '아이'처럼 세상을 본다면, 그 세상은 어떤 세상일지 궁금하다.
# 아래 김수영 시에는 아무말도 붙이지 않는다.
사랑의 변주곡
- 김수영
욕망이여 입을 열어라 그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겠다 도시(都市)의 끝에
사그러져가는 라디오의 재갈거리는 소리가
사랑처럼 들리고 그 소리가 지워지는
강이 흐르고 그 강 건너에 사랑하는
암흑이 있고 삼(三)월을 바라보는 마른나무들이
사랑의 봉오리를 준비하고 그 봉오리의
속삭임이 안개처럼 이는 저쪽에 쪽빛
산이
사랑의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우리들의
슬픔처럼 자라나고 도야지우리의 밥찌끼
같은 서울의 등불을 무시한다
이제 가시밭, 덩쿨장미의 기나긴 가시가지
까지도 사랑이다
왜 이렇게 벅차게 사랑의 숲은 밀려닥치느냐
사랑의 음식은 사랑이라는 것을 알 때까지
난로 위에 끓어오르는 주전자의 물이 아슬
아슬하게 넘지 않는 것처럼 사랑의 절도(節度)는
열렬하다
간단(間斷)도 사랑
이 방에서 저 방으로 할머니가 계신 방에서
심부름하는 놈이 있는 방까지 죽음 같은
암흑 속을 고양이의 반짝거리는 푸른 눈망울처럼
사랑이 이어져가는 밤을 안다
그리고 이 사랑을 만드는 기술을 안다
눈을 떴다 감는 기술―불란서 혁명의 기술
최근 우리들이 사·일구(四·一九)에서 배운 기술
그러나 이제 우리들은 소리내어 외치지 않는다
복사씨와 살구씨와 곶감씨의 아름다운 단단함이여
고요함과 사랑이 이루어 놓은 폭풍(暴風)의 간악한
신념(信念)이여
봄베이도 뉴욕도 서울도 마찬가지다
신념(信念)보다도 더 큰
내가 묻혀 사는 사랑의 위대한 도시에 비하면
너는 개미이냐
아들아 너에게 광신(狂信)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사랑을 알 때까지 자라라
인류(人類)의 종언의 날에
너의 술을 다 마시고 난 날에
미대륙(美大陸)에서 석유(石油)가 고갈되는 날에
그렇게 먼 날까지 가기 전에 너의 가슴에
새겨둘 말을 너는 도시(都市)의 피로(疲勞)에서
배울 거다
이 단단한 고요함을 배울 거다
복사씨가 사랑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할 거다!
복사씨와 살구씨가
한 번은 이렇게
사랑에 미쳐 날뛸 날이 올 거다!
그리고 그것은 아버지 같은 잘못된 시간의
그릇된 명상(瞑想)이 아닐 거다
Trackback Address >> http://ugongisan.net/trackback/406
댓글을 달아 주세요
서경식. 그의 글은 불편하다. 정돈된 단문으로 이루어진 그의 문장은 빛과 희망을 이야기할 때조차도 어둠과 절망이 느껴진다. 불편하지만 한 번 읽으면 좀처럼 손에서 놓기 힘들다고 조심스럽게 고백해야 겠다. 그래서 나는 그의 책 두 권을 읽었다. 『디아스포라 기행』,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 두 번째 책을 읽고나서 계속 읽어봐야 겠다고 생각했지만 기회가 생기지 않았다. 그의 이름으로 새롭게 출간되는 책 목록만을 외워두고 있었다. 철 지난 계간지를 찾으러 헌책방을 돌아다니다 늦은 저녁 처음 간 헌책방에서 그의 책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를 구입했다. 한국어판 서문만을 읽어본다. 그의 문장은 여전하다. 서문을 읽다 문득 생각한다. 아마 그는 자신의 책을 읽고 좋았다는 말보다 불편했다는 말에 더 호기심을 보일 것 같다고.
얼마 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다가 자신의 일상을 관찰하고 그 속에서 피어난 사유를 기록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를 생각한 적이 있다. 그 기록은 자신을 지키는 일일까. 아님 새로운 만남을 여는 일일까. 생존을 위한 기록일까.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는 기록이다. 하지만 쁘리모 레비에 관한 기록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이 책은 그 동안 내 사유 활동의 핵심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쁘리모 레비라는 드문 인물과 나의 대화로 이뤄진 책이라도 할 수 있다."(8쪽) 이 책은 서경식에 관한 기록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기에 이것은 '평전'이자 '자서전'이다.
Trackback Address >> http://ugongisan.net/trackback/405
댓글을 달아 주세요
-
나비
2009/02/17 02:06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어떤)일상에 대한 사유의 기록이라는 것과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생각했다는 너의 고백에는 동감하지만 서경식의 기록은 다소 다른 점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프리모 레비를 찾아서'라는 책은 폭력의 결과가 된 타자의 죽음과 마주하려는 (아주 많이) 의도된 (일종의) 기행의 결과라는 생각을 했었거든.
난 그 책을 읽을 때 결국 서경식 선생이 프리모 레비가 갇혀있던 수용소에까지 찾아가는 장면에서는 정말 괴로워서 책장을 덮어 버리고 싶었어. 그럼에도 서경식 선생은 책을 계속 읽어야 한다거나 타인의 고통 앞에서 눈 감지 말아야 한다고 이야기 하고 싶은걸테지만..
어쨌든 서경식 선생님 글은 괴롭지만 참 좋아. 어쩌면 그 괴로움에도 불구하고 계속 읽어야 하는 것 같기도 하고(다른 많은 것들이 그렇지만)-
우공uGonG
2009/02/17 10:21
address
modify / delete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가 "폭력의 결과가 된 타자의 죽음과 마주하"기 위한 서경식의 기행의 결과라는 것을 나는 좀 더 책을 읽으며 경험해야 할 것 같아. 지금은 조금씩 읽고 있거든. "폭력의 결과가 된 타자"에는 서경식 스스로의 삶(디아스포라라는 삶)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기에 이것은 그 스스로에 대한 기록일 수도 있겠다 싶어. 내가 조금 더 부지런히 이 책을 읽어야 겠다.
-


댓글을 달아 주세요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생각보다 좀 더 빨리 들어오는군!
채팅은 너무 늦어 나도 힘들 것 같지만,
이 아쉬움은 일찍 귀국하는 것으로 만회해보자고!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소식, 감솨감솨^^
그거 재밌을까? 시인이 디렉팅 했다면 왠지 궁금하긴 한데-.-
오 그리고 블로그가 리모델링 했군. 깔끔하고 더 예뻐졌네~ㅎ
재미있어 보이기 보다는 '어떻게 만들었을까?' 궁금해지는 영화야.
블로그 디자인은 내가 좀처럼 '못'고르는 스타일인데, 반응이 좋아 좋군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