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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심지에서 열리는 집회는 여전히 열린다.
동시에 서울 각 지역에서도 열린다. 그리고 서울 이외 지역에서도 촛불집회는 열리고 있었다.
촛불이 꺼졌다고? 뭘 모르는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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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 각 지역촛불 일정 알림입니다.
[서울]
* 매일(월~금)
1. 서대문구 촛불 : 매일(월~금) 저녁 7시. 신촌 현대백화점 앞
2. 송파구 촛불 : 매일(월~금) 저녁 8시. 잠실역 4번출구 50m 버스정류장 뒤, TGI 앞
화,목집중 경향/한겨레무료배포는 매일 자봉한다고 합니다 <<음화화화 님께서
제보해주셨습니다.
3. 성북구 촛불 : 매일(월~금) 성신여대역 2번출구 직진 넓은 인도 앞. 저녁 7시
4. 강남/ 서초촛불 : 매일(월~금) 저녁 7시. 2호선 강남역 6번 출구 외환은행 앞
5. 강서구/양천구 : 매일(월~금) 저녁 7시. 목동 행복한세상 뒷편 현대백화점 CBS건물 사이 횡단보도 앞 안경점 앞
6. 관악구 촛불 : 매일(월~금) 저녁 7시. 2호선 신림역 2번출구 GS 문고 앞
관악촛불 서울대입구역 7번 출구에 분가를 시도하고있습니다.^^꾸러기 님제보
* 화요일
7. 은평구 촛불 : 매주 화요일 7시. 3호선 연신내역 물빛 공원
연신내및응암역도했다고합니다. 응암역도 매주할것같음.[희망의나라로]님제보
8. 중랑구 촛불 : 매주 화요일 7시. 면목역 광장.
19. 동작구 촛불 : 매주 화요일 7시 노량진역앞 망울,찐빵 님께서 제보
* 수요일
9. 구로구 금천촛불 : 매주 수요일 저녁 7시30분. 금천 홈플러스 앞
이번주수요일이 구로역 애경백화점앞/다음주가홈플러스라고합니다
격주로 돌아가면서 합니다 [무지개]님께서 제보
10. 강동구 촛불 : 매주 수요일 저녁 8시. 5호선, 8호선 천호역 3,4번 출구 현대 백화점 앞
매주 수요일 7시30분: 천호역3번출구 광진교사거리 대우베네시티앞입니다...
피닉스 님께서 제보해주셨습니다
11. 강북구 촛불 : 매주 수요일 저녁 8시~10시. 4호선 미아삼거리역 1번 출구 롯데백화점 앞
12. 노원구 촛불 : 매주 수요일 저녁 7시. 4호선 노원역 롯데 백화점 앞
매주 목요일 저녁7시30분[폭스멀더,쥐니,비상님이 제보해주셨습니다]
13. 마포구 촛불 : 매주 수요일 저녁 7시. 홍대앞 놀이터 (마포촛불연대)
14. 서울 용산촛불 : 매주 수,목,금요일 저녁 7시 이태원역 1번출구 50m진행, 외환은행앞
* 목요일
15. 도봉구 촛불 : 매주 목요일. 4호선 쌍문역
20.영등포 촛불 : 매주 목요일 7시30 영등폭역전 롯데백화점앞 이똥 님께서 제보
* 금요일
16. 동대문구 촛불 : 매주 금요일 저녁 7시 30분. 1호선 청량리역 4번 출구 롯데 백화점 앞
17. 광진구 촛불 : 매주 금요일 2,7호선 건대입구 5번출구
18. 성동구 촛불 : 매주 금요일 7시. 건대역 사거리
* 참고로 이랜드노조의 문화재가 매주 금요일 저녁 7시 홈에버 상암점 앞 천막농성장에서 있습니다.
* 상시[공영방송사수]
1. 5호선 여의도 KBS, MBC (상시) , 국회 앞 국민은행 천막농성장
2. 남대문로5가 YTN본사앞 래시 님이 제보
아고라원문 - 전국현황 정리...



이 글의 출처는 http://www.dambee.net/news/read.php?sec ··· o%3D7834
로쟈(이현우 님) 님 블로그에 PS와 함께 출가된 글은 http://blog.aladdin.co.kr/trackback/mramor/1747960
폭력, 야누스의 두 얼굴
[Philosophy] 21세기, 폭력에 대한 사유
이현우│서울대 노어노문학과 강사 master@dambee.net
“욕망이여 입을 열어라 그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겠다”(‘사랑의 변주곡’)고 시인 김수영은 적었다. 어디 ‘그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사랑뿐이겠는가. 사랑을 발견하기 위해 욕망의 입을 뒤지는 행위가 필수적으로 취할 수밖에 없는 것이 폭력이라면, 사랑의 밑자리에는 언제나 폭력이 가로놓여있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이건 보편적 폭력이다.
러시아 시인 푸슈킨은 시 ‘예언자’에서 예언자로 재탄생하는 장면을 마치 세라핌(천사)이 ‘외과적 수술’을 시행하는 것처럼 묘사한 바 있다(실상 ‘세라핌’이라는 이름 자체가 히브리어로 ‘높은 존재’ 혹은 ‘수호천사’를 의미하는 ‘셀’과 ‘치유하는 자’, 혹은 ‘외과의’를 의미하는 ‘라파’의 합성어이다).
시에서 세라핌은 ‘나’의 죄 많은 혀를 뽑아내고 그 자리에 지혜로운 뱀의 혀를 다시 심는다. 그리고 또 가슴을 칼로 가르고 심장을 뽑아낸 다음에 불타오르는 숯 덩어리를 집어넣는다. 그리하여 ‘내’가 황야에서 시체처럼 누워있을 때 신의 음성을 듣는다. “일어나라, 예언자여, 보라, 들으라,/ 나의 의지로 가득 차서,/ 바다와 육지를 돌아다니며/ 말로써 사람들의 가슴을 불태우라.”
세라핌에 의해 ‘나’는 강제적으로 시체가 되고 그런 이후에야 ‘예언자’로서 부름을 받으며 다시 태어난다. 여기서의 ‘성스러운’ 폭력은 모든 (재)탄생이 수반하거나 요구하는 폭력이기에 보편적이다. 자살폭탄 ‘테러리스트’의 탄생 또한 동일한 과정을 거치는 것 아닌가. 다만 그는 ‘말’이 아닌 ‘폭탄’으로 사람들의 가슴을 불태울 것이다.
기원으로서의 폭력
태초에 폭력이 있었다. 오직 폭력을 통해서만 새로운 세상은 창조되기 때문이다. 로제 다둔이 <폭력>(동문선)에서 지적한 대로 ‘창세기’에서 “신은 명령하고 명명하고 구분하고 분리하고 분류하는데, 이 모든 행위가 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폭력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들이다.” 폭력이 사라지는 유일한 순간은 다만 일곱째 날인 ‘안식일’뿐이다(비폭력의 윤리는 이러한 신의 모습을 따르는 것이다).
그리고 알다시피 낙원에서 추방된 아담과 이브가 낳은 형제 중에 인류의 조상이 된 자는 동생 아벨을 죽인 살인자 카인이다(인류는 모두 ‘카인의 후예’이다!). 카인은 자신의 행위로 인해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할까봐 두려워하지만 신(여호와)은 그를 보호한다. 카인에게 표를 주며 그를 죽이는 자는 일곱 배의 복수를 당하리라고 말했던 것이다. 성서에 따를 때, 인류의 역사는 살인자(카인)와 보호자(신)가 공모한 역사, 곧 ‘폭력의 역사’이다.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영화 <폭력의 역사>(2005)는 이러한 인류사에 대한 알레고리로도 읽힌다. 미국의 한 작은 마을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톰 스톨은 평범한 중년 가장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식당에 이유 없이 살인을 일삼고 다니는 두 남자가 침입하여 소동을 일으키고 그는 여종업원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두 악당을 순식간에 해치운다.
이 사건으로 매스컴의 ‘영웅’이 된 톰에게 마피아 일당이 찾아와 그가 20년 전 조직의 일원이자 유명한 킬러 ‘조이’였음을 상기시키며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것을 강요한다. 톰은 자신이 조이라는 사실을 부인하지만 결국 가정을 지키기 위해 일당과 맞선다. 그리고 필라델피아로 가서 그를 제거하려는 형 리치 일당 또한 모두 해치우고 집으로 돌아온다.
이 영화에서 다루고 있는 폭력은 두 가지다. 먼저 톰이 자신의 새로운 삶을 위해서 철저하게 숨겨야만 했던 조이의 폭력, 그리고 이제는 자신의 가정과 아버지의 자리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저지르게 되는 폭력. 그 폭력은 톰의 것인가 조이의 것인가. 과거의 조이는 현재의 톰이 부인하지만 제거할 수 없는 그의 또 다른 자아이자 그림자이다. 역설적인 것은 조이의 킬러 본능이 위험의 순간에는 자신과 가족을 구하는 영웅적인 능력이 된다는 점. 때문에 이 가장의 폭력은 가정을 위협하면서도 동시에 보호하는 양면적인 것이다.
문학비평가이자 인류학자 르네 지라르가 ‘세상이 만들어질 때부터 숨겨져 온 것’이라고 이름붙인 것이 말하자면 이러한 초석적 폭력, 정초적 폭력이다(톰/조이의 경우에는 ‘가정이 만들어질 때부터 숨겨져 온 것’이라고 말해야겠다). 한 공동체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폭력이 제어·제한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폭력을 속이는 수밖에 없다(톰은 학교에서 괴롭히는 친구들에게 폭력을 휘두른 아들을 크게 야단치고 훈계한다).
그렇게 ‘폭력을 속이는 폭력’이 제의적 희생에서의 폭력이며, 이때 요구되는 믿음이 ‘좋은 폭력’(정당한 폭력)과 ‘나쁜 폭력’(부당한 폭력), ‘순수한 폭력’과 ‘불순한 폭력’을 구분하는 이분법적 믿음이다.
가령, 한나 아렌트는 <폭력의 세기>(이후)에서 폭력(violence)과 권력(power)을 엄격하게 구별한다. 아렌트에게 권력이란 사람들이 함께 모여 행동할 때, 곧 정치적 행위에 참여할 때 생겨나는 것으로 이미 그 자체가 정당성을 갖는다. 때문에 ‘정당화’가 따로 필요한 폭력과는 동일시될 수 없다는 것이다. 발터 벤야민이 <폭력의 비판을 위하여>(1921)에서 제시하고 있는 정초적 폭력과 보존적 폭력의 구분도 마찬가지다. 그가 ‘정초적 폭력’이라고 부른 것은 자기 이전에 어떠한 토대도 갖지 않으며 오직 자신에게만 의지할 수밖에 없는 폭력이었다.
물론 벤야민의 ‘폭력비판’에서 ‘폭력’이란 말의 원어는 ‘게발트(Gewalt)’이고 이것은 ‘지배/통치를 유지하기 위한 정당한 가제’란 뜻을 갖기 때문에 권력과 모순되지 않는다. 다만 그는 의회/대의 민주주의를 비판하면서 폭력의 두 계기를 분리하고 신적 폭력으로서의 정초적 폭력을 옹호한다.
데리다가 <법의 힘>(문학과지성사)에서 벤야민의 폭력비판론을 검토하며 다시 한 번 반복하고 있는 것도 그러한 ‘권위의 신비한 토대’이면서 ‘법의 구조’이다. 그에 따르면 모든 법의 정초 혹은 정립은 정초적 폭력에 근거한다. 요컨대, 법의 힘은 폭력에 대립적이지만, 법의 기원에 놓여 있는 것은 폭력이다. 기원적 폭력, 즉 “권위의 기원이나 법의 기초, 토대 또는 정립은 정의상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들에게 의지할 수 있기 때문에, 토대를 지니고 있지 않은 폭력들이다.” 때문에 법은 그 정초의 순간에 불법적이지도 비합법적이지도 않다.
중요한 것은 표상 불가능한 것으로서의 이러한 정초적 폭력이 보존적 폭력에 의해 언제나 표상/대리되고 필연적으로 반복되어야 하다는 사실에 있다. 때문에 데리다가 보기에 법의 구조는 언제나 해체가능하며 정초적 폭력과 보존적 폭력은 서로 의존적이다.
폭력에 대한 사유 - 이분법을 넘어서
아렌트나 벤야민의 경우에서 알 수 있지만 폭력에 대한 사유나 성찰은 폭력을 무엇과 대비시키느냐, 혹은 그것을 어떻게 구분하느냐에 따라 그 성격이 규정된다. 아렌트에 의해 폭력을 정당화하는 좌파 사회주의자로 비판을 받기도 했던 조르주 소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단, 아렌트와 달리 그가 <폭력에 대한 성찰>(나남)에서 제시하고 있는 이분법은 무력(force)과 폭력(violence)이다.
전자가 지배체제가 동원하는 제도적 강압이나 물리적 강제 등의 억압적 폭력을 가리킨다면, 후자는 그에 대한 탈법적 항거나 저항 같은 해방적 폭력을 뜻한다. 단순하게 말하면, “무력이 소수 지배자의 통치 질서를 강제하는 힘이라면, 폭력은 기존 질서의 파괴를 지향하는 힘이다.” 소렐은 그런 의미에서의 폭력, 보다 구체적으론 프롤레타리아의 혁명무기로서의 총파업을 적극적으로 옹호한다. 그리고 이때의 폭력은 그 라틴어 어원인 ‘비스(vis)’에 충실한 것이기도 하다.
로제 다둔에 따르면, ‘비스’는 ‘힘의 발휘’ ‘폭력행위’ 그리고 ‘군대의 힘’을 가리키며 ‘존재의 본질’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기도 했다. 즉 폭력은 인간에 대한 본질적인 규정이기도 한 것이다. 호모 비오랑스, 곧 ‘폭력적 인간’이란 규정이 이로부터 생성된다. 그리고 이 ‘폭력적 인간’은 니체적인 명명에 따르자면 ‘디오니소스적 인간’이 될 것이다.
이때의 디오니소스는 테리 이글턴이 <성스러운 테러>(생각의나무)에서 다시 읽고 있는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바쿠스>에서 등장하는 디오니소스이다. 즉 “포도주와 가무, 환희와 연극, 풍요와 과잉, 영감의 신”이면서 동시에 “탐욕적이고 폭력적이며 차이를 적대하는 획일성의 지지자”로서의 디오니소스. 디오니스소의 이러한 양면성이 분리될 수 없는 것이라면, 폭력성은 인간의 부정적이거나 부수적인 자질이 아니라 그 본성이다.
<바쿠스>에 등장하는 테바이의 지도자 펜테우스는 디오니소스 숭배에 적개심을 품고서 그의 성소를 부숴버리고 아예 신을 감옥에 가두어버린다. 물론 화가 난 디오니소스는 지진을 일으켜 감옥을 나온 뒤에 무자비한 복수를 감행한다. 디오니소스성이 우리가 제거할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이라면 우리에게 필요한 태도는 그에 대한 억압이 아니라 존중이다. 그것은 디오니소스가 펜테우스의 타자가 아니라 펜테우스 안에 잠복한, 또 다른 자아이기도 하다는 걸 인정하는 태도이다. <폭력의 역사>에서 비록 타의에 의한 것이긴 하지만 마치 톰이 자신의 내면에 숨어 있는 조이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폭력’과 ‘비폭력’이란 개념쌍의 상투적인 이해도 이러한 맥락에서 교정될 필요가 있다. 사카이 다카시가 <폭력의 철학>(산눈)에서 정리하는 바에 따르면, ‘비폭력’은 단지 ‘평화’를 희원하는 것이 아니라 ‘평화에 힘을!’이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마틴 루터 킹은 이렇게 말했다: “비폭력 직접 행동의 목적은 대화를 끊임없이 거부해온 사회에 어떻게든 우리가 제시한 쟁점과 대결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는 위기감과 긴장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것입니다.(중략) 저는 지금까지 폭력적 긴장에는 진실로 반대해왔습니다. 그러나 어떤 종류의 건설적인 비폭력적 긴장은 사태의 진전에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1960년 정치운동으로서의 비폭력 직접행동은 잠재적으로 숨어 있는 사회의 적대성을 폭로하거나 구축하는 수단이었다. 때문에 비폭력은 폭력에 대한 무저항과는 거리가 멀다. 이 점에 있어서는 킹과 다른 노선을 걸었던 맬컴 엑스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은폐되고 억압된 적대성을 드러내는 것이 그에게서도 일차적인 목표였기 때문이다. 맬컴이 주장한 것은 흑인들이 자기 혹은 타자에게 갖고 있는 증오를 분노로 전화시키는 것이었다. 증오는 증오를 낳는 근본 원인 대신 결과를 특정한 인간이나 집단에 투사함으로써 카타르시스를 얻고자 하는 데 반해, 분노는 보다 광범위한 사회적 조건을 변화시키려는 태도를 함축한다.
맬컴 엑스의 동시대인이었던 알제리의 정신과의사 프란츠 파농 역시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그린비)을 통해서 식민주의의 폭력성을 고발하고 대항적 폭력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에 따르면 식민주의는 그 자체 속에 이미 폭력이 편재해 있으며, 이러한 폭력은 굴절적인 형태(정신병)로 피식민 주체들에게 들러붙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폭력은 이러한 내향성을 중단시키고 식민주의 자체로 방향을 돌리게끔 하는 긍정적인 계기가 된다. “폭력은 취기를 깨우는 해독작용이다. 원주민의 열등 콤플렉스나 방관 내지 절망적인 태도를 없애준다. 폭력은 그들을 대담하게 만들며 자기 자신에 대한 존엄성을 회복시킨다.”
폭력을 넘어서기 - ‘정치적인 것’의 도입
사카이 다카시는 이렇듯 폭력의 다양한 양상과 양태, 그리고 의의를 파악하는 데 있어서 폭력/비폭력이란 이분법은 부적절하다고 판단하며 거기에 ‘반폭력(anti-violence)’이란 범주를 추가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반폭력은 테러에도 반대하고 전쟁에도 반대한다는 ‘막연히 올바른 도덕’에 대한 반대를 뜻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도덕이 아니라 정치이고, ‘정치적인 것’의 복원이다.
정치란 무엇인가. 자크 랑시에르는 광의의 행정을 포함시킨 폴리스(police)의 논리와 정치를 일컫는 폴리틱스(politics)의 논리를 구분한다. 폴리스란 이미 존재하는 지위나 역할에 사람들을 배분하고 고정시키는 것이고, 폴리틱스란 배제된 사람들(이민자, 비국민, 이등시민, 정신이상자 등)을 보편적인 이해를 공유하고 있는 자들로 간주하는 것이다.
폴리스의 논리가 사람들을 고립시키고 위계질서를 세우고자 한다면 폴리틱스의 논리는 평등을 도입함으로써 이러한 질서를 뒤흔든다. 랑시에르에 따르면 “정치가 발생하기 위해서는 폴리스의 논리와 평등주의의 논리가 만나는 지점이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랑시에르가 들고 있는 사례로는 “너의 직업은?”이라는 폴리스적 논리의 질문에 “프롤레타리아”라고 폴리틱스적 논리로 대답하는 대목이 정치가 발생하는 지점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정치적 주체로서의 해방적 주체, 혁명적 주체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슬라보예 지젝이 <혁명이 다가온다>(길)에서 데이비드 핀처의 <파이트클럽>(1999)을 예로 들면서 말해주는바, 자기 구타(폭력)를 통해서이다. 영화에서 주인공은 자신이 일을 하지 않아도 월급은 내놓아야 한다고 상사를 협박하면서 스스로를 피가 나도록 때린다.
지젝의 해석에 따르면, 이러한 급진적인 자기 비하를 통해서만 ‘순수한 주체’는 나타나게 된다. 자신을 직접 구타한다는 사실은 스스로에게 주인이 더 이상 불필요하다는 자기주장이며 “이러한 구타의 진정한 목표는 주인에게 집착하는 내 안의 어떤 것을 이겨내는 일이다.” 들뢰즈는 <매저키즘>(인간사랑)에서 가학주의가 지배의 관계를 포괄하는 반면, 피학주의는 해방을 위해 필요한 첫 과정이라고 적었다.
요컨대 “폭력은 일차적으로 자기 폭력으로 또 주체적인 존재의 본질에 대한 폭력적인 재형성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바로 이것이 <파이트클럽>의 교훈이다.” 여기서 ‘순수한 폭력’은 곧 ‘순수한 사랑’과도 만난다. 사랑은 모든 맥락에서 사랑의 대상을 떼어내어 대문자 사물(Thing), 곧 ‘숭고한 대상’(이건 '괴물'이기도 하다)으로 고양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시 김수영의 시구를 빌자면, “복사씨와 살구씨가/ 한번은 이렇게/ 사랑에 미쳐 날뛸 날이 올 거다!” 이렇듯 미쳐 날뛰는 것이 사랑의 광기이고 폭력의 광기일 테다. 모든 현상을 ‘좋은’ 면과 ‘나쁜’ 면으로 구별하고 좋은 것만 취하고 나쁜 것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태도(웰빙적 태도!)는 맑스가 지적한바 전형적인 쁘띠부르주아적 태도이다. 이것은 사랑과 폭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아닐까.

8월 5일 집회에서 나를 사로잡은 가장 강력한 감정은 분노였다. 이 분노가 무엇이었는지를 설명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분노의 대상도 나 자신, 전견들, 연행되는 사람을 막기 위한 절규하는 목소리가 들리는데도 지들끼리 농담하며 웃고 지나가는 국가인권위 사람들(분노를 참지 못한 나는 그들을 따라가 고성으로 그들에게 소리를 쳤다), 쥐새끼, 시위대들을 향해 욕을 하는 취객(나는 이 사람과도 싸웠다. 말과 몸으로), 고립되는 것이 뻔한데도 대책 없이 소라광장으로 이동한 대책회의 등 다양했다. 연행되는 사람들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야 하는 내 자신이 답답했던 것일까.
나의 분노는 청계천 소라광장으로 사람들이 들어갈 때부터 시작되었다.
오후 5시 종각네거리 보신각 앞. 인도에 사람들이 있기에는 비좁아 차도 한 차선에 사람들이 꽉 차도록 사람들이 모였다. 부시방한을 반대하는 자리였다. 발언이 끝난 후 7시 경에 사람들은 청계1가 광교에서 소라광장으로 행진을 하여 들어갔다. 사람들이 소라광장으로 들어간 후 소라광장 뒤쪽 무교동사거리로 교통경찰들이 차량통제를 풀고 차들이 지나가게 했다. 8월 2일에도 이곳이 막힌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이곳에 차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다. 지나가던 할머니께서 할아버지에게 ‘이곳을 우리가 지켜야 (소라광장의 사람들을 손으로 가리키며) 저들이 나올 수 있는 거야. 그러니깐 여기 있자.’고 말씀하신다.
청계천에서 종로구청으로 나가는 곳에서 시민들과 경찰들의 충돌. 곧 소라광장 뒤쪽의 모든 길은 경찰들에 둘러싸이고 시민들은 천변을 따라 청계천3가 방향으로 이동한다. 3가 출입계단으로 올라오던 시민들은 또다시 경찰들로 인해 막히고 시민들 몇 명이 연행된다. 이미 올라온 시민들과 소라광장에서 빠져나온 시민들이 종각네거리에 모여 있고, 사람들은 점차 늘어난다. 보신각에 있던 전의경들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청계천3가에서 다시 나온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연행되고, 시민들을 연행하는 경창들에게 항의하는 사람들도 무작위로 연행된다. 이 날 이렇게 연행된 사람들은 부지기수다.
종각네거리가 고립되자 종로3가 방향 차도에 민주노동당 국회의원들과 당직자들이 경찰과 시민 사이에 서 있다. 경찰과 방송차, 살수차 너머로 깃발과 시민들이 차도에 모여 있는 것이 보인다. 살수차는 이미 소라광장에서부터 등장해서 형광붉은색소물을 시민들에게 뿌렸고, 나중에 이들을 마구잡이로 연행했다. 형광붉은색소물은 살수차뿐만 아니라 휴대용 분사기로도 시민들에게 쏟아진다. 오마이뉴스는 휴대용 분사기 앞에 서 있는 종교인의 당당한 모습을 사진으로 보여준다. 종로2가 네거리로 사람들이 모여든다. 이때부터 전경들, 경찰관 기동대들과 시민들의 술래잡기식 시위는 지속된다. 경찰들은 멀리서부터 뛰어와 시민들을 연행하고, 경찰들이 뒤로 빠지면 다시 시민들은 차도로 나온다. 그리고 기동대는 다시 뛰어와 연행한다. 종로2가 네거리와 종로3가 네거리 사이에서, 골목골목에서 강제연행이 이뤄진다. 기동대는 훈련이 잘 되어 있다. 지휘자가 명령하면 화장품 가게든 문구점이든 들어간다. 갑자기 뛰어온 경찰들에게 놀라서 가만히 서 있는 소수의 시민들을 그들이 사각형으로 둘러싸서 한명씩 연행한다. 인도에 있는 사람들도 연행하고, 심지어 인도에서 무력을 쓰는 경찰들에게 항의하는 사람들도 마구 연행한다. 기자도 장애인도 십대도 노인도 예외 없이 연행한다. 한 중년의 남성은 기동대에게 잡히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나체로 차도를 걸어가고, 그 주위에 기동대 20여 명이 그를 둘러싸고 기자들의 취재를 연신 방해한다. 새벽까지 이뤄진 명동성당 앞 집회에서도 사람들은 계속 연행된다. 이렇게 연행된 사람들의 수는 5월 2일 이후 하루 최대치인 167명이라고 언론들은 보도하고 있다.
연행한 시민들이 불구속이면 2만원, 구속이면 5만원씩 포상금을 준다는 경찰의 방침이 이런 사태를 불러온 것이다. 경찰은 쏟아지는 비판 여론을 의식해서 현금이 아니라 ‘포인트’를 주는 최신 자본주의 시스템을 도입하겠다고 한다. ‘포인트 적립’, ‘마일리지 적립’은 오늘 자본주의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네트워크마케팅의 주요한 제도가 아니던가. 이 자본주의적 상상력.
이 장면들을 보며 (그리고 시간이 지나 상상하며) 분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미 이 시민들의 분노는 누적되어 왔고, 이 분노는 제도정치적 해결과 군사적 해결의 방향으로, 구체적인 행동지침들로 변화하여 실행되고 있다. 아직은 군사적 해결방식보다는 제도정치적 해결방식이 더 많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알 수 없다. 이와 동시에 장기적으로 동네촛불들처럼 일상에서 촛불을 들기 위한 실질적인 제안들이 이뤄지고 있다. 벌금폭력에 대한 대책과 또 다른 액션을 위한 공통기금을 마련하자는 제안들도 있다. 이것을 비롯한 모든 잠재된 방식들은 현실적 협력방식을 찾아 네트워킹하고 있다. 어떻게 보다 강하게 협력할 것인가. 다시 한번 촛불다중들의 천재적 창안이 이뤄지며 이것에 대답하고 있다.

우공 왈: 길어도 끝까지 읽어주세요. 그리고 할 수 있는 일을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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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 ··· imitdate}
[명박퇴진] 8월 촛불이 나아가야 할 길 [개념글 - 반대 요망] [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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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아고라에 올라 왔던 많은 아고리언님들의 주옥 같은 글들을 정리해봤습니다.
제 생각도 첨가했습니다만, 지난 행복했던 10년이 제 자신을 나태하게 만들었나 봅니다.
촛불이 좀 더 진화되기 위해서는 ON/OFF 라인에서의 동시 실천이 필요합니다.
제목의 ON은 ON 라인을, OFF는 OFF 라인을, ON/OFF는 동시를 의미합니다.
< ON/OFF: 포괄적인 범국민대책위의 구성이 시급합니다 >
그 동안 광우병국민대책회의(광우병대책위)를 중심으로 촛불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이제 촛불은 광우병을 넘어서 정치, 경제,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종교인, 교수, 각종 사회단체들을 포함한 범국민대책위원회의 발족이 시급합니다.
수구세력정권의 잘못된 정책에 대해서 좀 더 강력하게 국민의 목소리를 전달해야 합니다.
이 부분은 사회 지도층에서 솔선수범하여 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ON/OFF: 질기게 그러나 생활 속에서 싸워야 합니다 >
우리는 생활 속의 촛불이어야 합니다. 절대로 생계를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학생들의 경우에는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으셔야 합니다.
일주일에 단 하루라도 촛불을 드십시오. 시간이 된다면 더 자주 참가하면 좋겠죠.
눈 내리고, 꽃피고, 다시 여름을 맞이 한다고 하더라도 지치지 않는 끈기가 필요합니다.
이 정권은 끊임없는 부패의 고리와 연결되어 있어서 촛불의 동력은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불매운동과 한겨레, 경향, 삼양, 르까프, K2여행사, 제일생명 등의 지원도 끊임이 없어야 합니다.
전현일님의 글입니다. 한겨레와 경향의 광고주를 자주 업데이트 시켜주시는 군요.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 ··· D1799797
< ON/OFF: 선택과 집중을 적절히 활용해야 합니다 >
집회장소가 특정지역으로 고착화되는 것은 현재 상황에서는 그리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이제는 서울역, 남대문, 명동, 강남, 여의도 등 다양한 장소를 고려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1차 장소 집회의 무산을 대비한 제 2, 제 3의 장소에 대해서도 논의되어야 합니다.
집중일에는 서울, 평일에는 선택적인 각 지역 단위의 촛불 활성화가 필요합니다.
온라인에서는 아고라 이외의 선택적인 집중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특히, 선거 때에는 과감하게 아고라를 박차고 나가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아고라는 우리에게 대부분은 약이 되겠지만, 때에 따라서는 독이 되기도 합니다.
<ON/OFF: 지역 촛불을 좀 더 활성화 시켜야 합니다 >
촛불이 3개월 이상 지속되면서, 평일에도 계속 광화문 근처에서 모이는 것은 힘듭니다.
이제 각 지역 단위의 촛불 모임을 활성화해 나아가야 합니다.
지역 단위의 촛불 모임은 강한 유대감과 자유롭고 창의적인 토론을 가능하게 합니다.
지역 촛불들은 스스로의 카페를 개설하고 독창적인 발전이 가능합니다.
평일에는 청계광장 이외에도, 집에서 가까운 지역 촛불을 찾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예슬아빠님의 글입니다.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 ··· D1797492
< ON/OFF: 홍보를 다양화해야 합니다 >
온/오프라인을 망라한 다양한 홍보는 매우 중요합니다.
아래 글에서 알려드릴 각시탈님의 한겨레, 경향신문 알리기 매우 좋습니다.
아고라책의 편찬도 매우 좋았습니다. 한글사랑나라사랑님의 글입니다.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 ··· 3D111373
Jay Kim님의 쥐코 동영상도 매우 좋았습니다. 2편도 나왔다고 합니다.
1편: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 ··· D1213346
2편: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 ··· D1706040
관악촛불의 식코 상영도 매우 좋았습니다. 사고뭉치님의 글입니다.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 ··· D1783773
조중동의 거짓... 책도 글씨만 컸으면 좋았습니다. 이승리님의 글입니다.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 ··· %3D42631
다양한 홍보 전단지도 매우 중요합니다. 소금사탕님의 글입니다.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 ··· D1801911
이렇게 다양한 홍보를 하는 데도 약간의 아쉬움이 남습니다.
좀 더 다양한 아이디어와 실천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나라가썩었네님의 아고라신문 발행에 대한 글입니다.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 ··· D1734730
식코 영화를 봤지만 너무 깁니다. 쥐코도 훌륭하지만 너무 짧습니다.
사람들은 텍스트(글씨)보다 이미지(사진 또는 그림)에 강한 인상을 받습니다.
러닝 타임 1시간 내외의 홍보용 CD 제작은 정말로 필요하면서 좋은 생각입니다.
아고라책을 편찬했던 팀에서 다시 한 번 수고해주시면 좋겠네요.
돌아가고파님의 글입니다.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 ··· D1743722
< ON/OFF: 보수적인 지역이라고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
그들도 우리의 소중한 국민입니다. 단지, 잘못된 반공 이데올로기의 희생자일 뿐입니다.
아고라라는 광장에 갇혀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어항 속으로 밀어 넣으면 안됩니다.
나이 많으신 분들과 컴퓨터보다는 신문에 익숙하신 분들에게 정직한 신문은 도움이 됩니다.
아고라의 오프라인에서 벌어지는 한겨레와 경향신문 알리기는 바람직한 방법을 제시합니다.
각시탈님의 글입니다. 각 지역별 상황은 닉네임(닉)을 클릭하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 ··· D1797216
<ON/OFF: 수익 모델을 창출하여 촛불을 지원해야 합니다 >
정말로 많은 힘없는 촛불들이 다치고, 구속되고, 검거 당했습니다.
그 분들을 조금이나마 도울 수 있는 수익 모델을 창출하여야 합니다.
아고라책은 좋은 본보기입니다. 권태로운창님 글입니다. 아래 글과 중복도 있네요.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 ··· D1797960
아고라 CD도 만들어서 공식적으로 판매하고 지원했으면 좋겠습니다.
좀 더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공해 주세요.
< ON: 아고라를 좀 더 널리 알려야 합니다 >
아시다시피 아고라는 다른 토론방에 비해서 알바들이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즉, 지적 사고능력을 가진 대다수의 국민들을 아고리언으로 흡수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 우리의 발목을 붙잡지 않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아고라를 처음 접하는 많은 국민들은 선동적인 언어나 욕설에 반감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알바들의 글이나 댓글이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우리는 욕설을 자제해야 합니다.
위에 있는 권태로운창님의 글을 참고하시면 됩니다.
< ON: 아고라를 지키되, 준비해야 합니다 >
한나라당,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 조중동은 다음에 다방면의 압박을 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인 대안이 없이 아고라를 버리는 것은 우리 스스로의 입을 막는 것과 같습니다.
아고라를 유지하면서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여야 합니다.
구글, 야후, 한토마(한겨레)와 같이 국내외 사이트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리고 한겨레신문 창간 때와 같은 국민주 포탈의 탄생도 조심스럽게 생각해봐야 합니다.
어렵게 찾은 은빛수평선님의 글입니다.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 ··· D1745585
< ON/OFF: 조중동에 대한 압박은 꿈속에서도 해야 합니다 >
권력은 자본과 지식과 행위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잘못된 권력을 끝내는 가장 쉬운 방법은 자본, 즉 돈줄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조중동은 이 정권의 온실이자, 돈 몇 푼에 영혼을 팔아버린 자들에게 헛된 논리를 제공하는 인큐베이터입니다.
조중동을 폐간할 수 있다면, 촛불은 90%의 승리를 달성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아고리언은 조중동을 전방위에서 압박해야 합니다.
조중동의 주수입원은 광고와 판매 부수입니다. 그 중에서 광고비는 가장 큰 수입원입니다.
우리는 그 동안, 조중동 안보기와 조선일보 광고주 압박 운동을 꾸준히 해왔습니다.
해당 사이트의 링크는 이 글이 삭제되므로 생략합니다. 스스로 찾아보시면 됩니다.
< ON: 알바들에게는 철저한 무관심이 약입니다 >
아고라에는 나름대로 유명한 알바들이 많습니다.
유명한 알바들은 대부분 자신의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게시판을 더럽힐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알바들은 그야말로 돈 몇 푼에 영혼을 판 경우입니다.
알바들의 글은 조회수, 댓글수, 찬반수 등에 의해서 일당이 지급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즉, 우리들의 분노가 그들의 돈줄입니다. 철저하게 무관심하면 알바는 힘을 잃습니다.
청정지역 아고라를 원하시면 아고라웹 프로그램을 권장합니다.
아고라웹을 설치하고 난 후, 최신리스트 업그레이드는 제 개인적으로는 후투티님을 선호합니다.
세상살아가기님의 글입니다. 아고라웹을 다운 받으실 수 있습니다.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 ··· D1633473
< ON/OFF: 저들에게 대항할 수 있는 정치인을 키워줘야 합니다 >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차선도 없으면 차악을 선택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정치인을 우리 스스로 키워줘야 합니다.
정치인에게 바랍니다. 통폐합을 하여서라도 제대로 저항해 주십시오.
그러면 우리 민주국민들은 저들에게 승리할 강력한 대항마를 만들어 드릴 것입니다.
가능하신 분들은 정당에 가입하시는 방법도 좋습니다.
돈까밀로와뻬뽀네님의 글입니다.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 ··· D1940667
< 보너스: 촛불시위 안전하게 귀가하기 >
제가 쓴 글을 링크 걸려니까 좀 쑥스럽네요. 하지만 다치지들 마세요.
상: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 ··· D1762480
하: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 ··· D1762490
이 글은 이 글이 필요 없어지는 날을 위해 반드시 반대를 눌러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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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발: 무덥고 지치기 쉬운 여름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용광로보다도 뜨거운 열정이 있습니다.
오늘, 중요한 날인 줄 알면서도 집안에 중요한 일이 있어서 집회에 가지 못했네요.
죄송한 마음에 시간을 내어서 그 동안 올라온 주옥 같은 글들을 정리해보았습니다.
스크롤의 압박이 있는 긴 글을 읽어 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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