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째, 카이로스는 이름을 확증하는 순간이다. 이름은 카이로스의 망설임(vacillation) 속에서 스스로를 제시하며, 진실한 것이 드러나는 것은 바로 이 망설임을 통해서이기 때문이다. 레오빠르디가 말하듯이, 젊은이가 망설이면서 이름을 전유하는 것은 순식간이다. 마찬가지 방식으로 창안하는 자가 새로운 것에 접근한다. 시인 또한 망설이면서 시구를 정한다. 망설임의 해결, 그 필연적인 결정이 바로 이름의 제시이다. 이는 지식의 기초적인 현상학의 관점에서 확립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덜 현실적인 것은 아니다.
- 안또니오 네그리,『혁명의 시간』, 42쪽 (강조는 uGonG)
이름이 좋았다. 그들이 정한 이름 속에서는 확신과 결연한 의지가 느껴졌다. 이제 그들은 (평화를) ‘택하라’고 권하기보다 (평화를) ‘택했다’고 스스로의 결정(자기-결정)을 좀 더 적극적으로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 확신과 의지 속에서는 말할 수 없는 쓸 수 없는 열정과 고민, 슬픔, 기쁨 그리고 망설임이 묻어나 있다는 것을 <평화를 택한 사람들의 첫 번째 잔치>에서 감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대추리/도두리에 가지 못한 그 ‘망설임’의 시/순간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언론 매체에서 블로그에서 클럽과 미니홈피에서 그리고 친구들에게서 대추리/도두리 소식들을 듣고 마음은 복잡해져만 갔다. 대추리/도두리로 갈 것인가 말 것인가. 간다면 내 마음 속 무엇을 가지고 갈 것인가. 이런 질문들과 함께 내 마음 한 구석에는 망설임이 놓여져 있었다. 이 싸움과 나는 얼마나 함께 갈 수 있을 것인가. 끝까지 가지 못하면 어쩌지라는 생각들이 마음과 몸을 잡고 있었다. 물론 인터넷 행동과 집회는 틈과 시간이 날 때마다 행하고 나갔다. 하지만 대추리/도두리로 가는 것은 망설여졌다. 내 안의 무엇을 담고 대추리/도두리와 함께 싸울 것인가. 이 스스로에 질문에 답해야 했다.
평화를 택했다. 보쳉의 <평화대세>라는 노랫가락을 듣고 일기 시작한 내 안의 작은 변화는 <평화를 택했다>라는 말을 듣고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스스로에 대한 생각과 운동에 대한 능동적인 이름 만들기. 내 안의 망설임들은 조금씩 변화기 시작했다.
1월 27일~28일 알고 있고, 새로이 알게 된 분들과 함께 가서 자리했던 <평화를 택한 사람들의 첫 번째 잔치>는 평택에 상주하는 지킴이와 비상주하는 지킴이들이 만나 현재 평택 상황을 이야기하고 이후의 행동을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고 갔으며 구체적인 행동도 결정되었다. 그리고 아직 해야 할 말도 해야 할 것들도 많다. 지금까지 해온 것들만큼이나.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인사도 하고 손들고 말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망설여졌다. 내가 하는 말들을 내가 다 지켜야 한다는 생각들이 들기 시작하니 말하는 것이 조심스러워졌던 것이다. ‘제가 먼저 하고 싶습니다’라고 번쩍 손을 들어 말하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그래서 잘 할 자신도 있었지만 한 번 더 생각을 하며 나를 다스렸다. 서울에 올라와 평택에 다녀온 이야기를 쓰기 전에 책을 뒤적이다 위의 문구를 만났을 때. 나의 망설였던 시간들이 나를 평택으로 이끌었고,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를 하게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망설임을 버려야 할 것도 지워버려야 할 것도 아니었다. 망설임은 항상 내 옆에 있을 것이기에 그 망설임과 함께 하면서도 새롭게 스스로 행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난 상주-지킴이들이 <평화를 택했다>라는 이름을 새롭게 만든 것뿐만 아니라 그들이 이 새로운 이름을 창안하기 위해 가졌을 ‘망설임’의 감정들(이 감정에는 반성, 두려움, 기대, 기쁨, 불확실함들이 포함되지 않을까 싶다)에도 충분히 귀와 마음을 기울여야겠다고 생각하고 느끼게 되었다. 이럴 때 새롭게 만들어진 이름과 결정은 더욱더 힘(역량)을 발휘할 것이다.
<평화를 택한 사람들의 첫 번째 잔치>에서 결정한 것, 다음 모임에 대한 것, 그리고 계속 진행될 것들은 카페 <평화를 택했다>(http://cafe.daum.net/vigil)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이 공간은 새로운 이름과 행동, 결정들이 이뤄지는 곳이기도 하다. 가입과 활동을 권한다. 그리고 다음 ‘평화를 택한 사람들’ 대추리/도두리 (상주/비상주) 지킴이들의 모임은 3월 초에 대보름을 맞이 하는 것으로 정해졌다. 함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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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택했다, 그리고 망설임.
좋아요, 좋아. 공감 가득.
우공님 반가웠어요
당고 님, 저도 반가웠어요. 평택에서의 1박 2일은 참 좋았어요. 그래서 그런지 쓰고 싶고, 말하고 싶고, 행하고 싶은 것들도 많이 생겨버렸네요. 좀 더 바쁘게 살아야 겠어요. 아웅 =^..^=
히히 여기는 처음 들어와 봤어요.
이 글 완전 공감입니다.
반가웠어요. ㅋㅋ
저도 반가웠어요.
저는 스캔 님의 블로그에 몇 번 다녀 간 적이 있습니다.
또 뵙지요^-^
대추리에 친구들이 오기만 하면 마구마구 붙잡고 싶어지는거,
이것도 병이 아닌가 싶네-_-
여튼, 나한테 발목붙잡혀서 하룻밤 자고 간것도 나쁘지는 않았지?ㅋ
사람들이 내게 한 말 속에 담긴 감정을 느끼고 난 다음에, 그 감정에 대한 응답을 해줄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정말 따뜻한 일이란 걸 잘 알지만, 나는 말이 먼저 많이 나오는 편이야. 그리고 지나고 나서야 그 말 속에 담겨져 있는 감정을 생각하고 알게 돼. 참 많이 고쳐야지 하면서도 잘 되지 않는 정말 어려운 문제 같은 거야.
노인정에서 설거지를 할 때 당신이 “우공 (집에) 가지마”라고 말 했을 때 난 장난스럽지만 매몰차게(스스로도 매몰찼다고 생각하고 있어, 미안) “내일 출근해야 돼”라고 말했고, 방송국에서 평택역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릴 때도 당신이 같은 질문을 했고, 나는 같은 대답을 반복했지. 우리는 그냥 스치듯이 일상의 대화를 하고 있었던 걸 거야. 우린 싸운 것도 아니었고, 서로에게 뭔가를 요구한 것도 아니었지.
대추리를 떠난 버스가 들판을 지나갈 때, 그때서야 난 당신의 말 속에 담긴 감정이 무엇이었는지 조금이나마 짐작하게 되었어. 정말 어찌나 미안하던지. 들판이 내게 뭔가를 알려준 걸까. 아님 내가 둔해서 미처 알진 못했지만 내 안에 남았던 당신의 감정이 날 깨우친 걸까. 참, 미안했어.
나, 발목 붙잡힌 거 없어. 나도 발과 마음이 떨어지지 않았거든. 아니, 잡아줘서 고맙다고 해야겠다. 평택에서 보낸 시간들은 기분 좋은 일들뿐이었으니.
너무 늦어버렸지만 그래도 당신이 가지 말라고 한 말에 대한 응답을 다시 하고 싶어.
“나비, 평택에 와서 좋기는 하지만 가야 할 것 같아. 또 올게. 다른 사람들도 좀 더 데리고 다시 올게. 나도 가서 아쉽지만 다시 올게. 그러니 다음에 또 보자”
자기-결정.
저도 이글 많이 공감되요. 반가웠습니다.
나비 블로그를 타고 였는지 종종 들어왔었는데. 다시 반갑 ^^
와, 달군 님도 오셨군요. 저도 달군 님 블로그에 종종 갔었어요.
저도 그날 봐서 반가웠고, 또 만날 것 생각하니, 다시 반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