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기 2007년 01월 09일 23시 33분

듣기와 말하기


나는 나의 이야기를 표현하는 데 서툴다. 남의 눈치를 많이 보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저 사람이 날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소심한 자의 전형적인 생각. 그것은 내 안에 똬리를 틀고 앉아 있다. 이것은 결국 내가 원하는 게 뭔지를 스스로 부단히 묻는 과정을 건너뛰게 만들어버렸다.

물론 이것이 나를, 내 감정과 육체를 좀 먹는 벌레로 성장하기도 했지만 '생각 많이 하는 자', '고민도 많은 자'라는 수식어를 일부 친구들에게서 받게도 해주었다. 생각을 많이 한다는 것은 과하지만 않다면 좋은 일이다. 하지만 요즘 내 생각들은 과잉되고 있다. 그래서 대학 1학년 때 두어 번 겪었던, 머리의 생각들이 꼬여서 속이 미식거리고 누가 망치로 내 머리를 치듯이 아픈, 그래서 큰 소리를 치고 싶은 가공할만한 두통이 얼마 전 나를 강타했다. (사실 이때 내가 심각한 정신분열과 우울이 있는 것은 아닐까 진지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일만 발생하지 않는다면 생각을 많이 한다는 것은, 좋은 것이다. 타인과의 관계, 타인과 타인과의 관계, 타인과 타인과 나와의 관계, 등등. 일상적인 내 고민 중 적지 않은 부분이 내 친구들과의 관계에 대해서이다. 나와 몇 년간 끈질기게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좋은 점이 있는 사람이야’라고 내 친구들이 말해준다면 그 이유는 ‘관계에 대한 고민’과 그 고민 안에 잠재된 나의 애정을 눈치 챘기 때문이라고, 나는 믿는다. 하지만 아직은 나의 애정은 ‘날이 선’ 애정이라 ‘따뜻함’과는 그 거리가 멀다. 물론, 간혹 따뜻한 온기를 내 품기도 하는 것 같지만 그것은 소 뒷걸음질에 쥐 잡는 꼴이라, 나도 당황스럽고 상대도 (좋은 의미로?) 놀라고 의외라는 반응을 보인다. 따뜻한 애정. 이것은 나를 겉돌고 있다.

남의 눈치보다 내 할 말, 내 안의 잠재된 욕구를 말하지 못해 몇 가지 것들이 꼬이기 시작했다. 이제 말하는 법도 잊어서, 아니 말하는 법을 몰라서 다시 말하기를 배워야 할 상황에 이르렀다. 욕구하는 것을 말하기, 그리고 그것(말하기)을 배우기.

그런데 말하기는 듣기를 잘해야 비로써 완성이 된다고 믿는 나는, 말하기보다 듣기가 문제임을 알게 되었다. 듣기를 먼저 배워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말을 들어야 하는 상대는? 다름 아닌 ‘나’다. 남의 눈치보다 내 말을 못하다보니 말도 잃고, 내가 욕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순간순간 튀어나오는 나의 욕구들과 대화하는 방법, 그 욕구들의 아우성을 듣는 것이 어렵게 되어버렸다. 혹은 내 안의 욕구가 나도 모르게 이상한 통로로 흐르기 시작한 것 같다. 듣기와 말하기. 실제로는 듣기와 말하기를 더 많이 하면서도 읽기와 쓰기에만 초점이 맞춰진 내게, 듣기와 말하기는 새로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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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는 나의 이야기를 표현하는 데 서툴다. 남의 눈치를 많이 보기 때문이다.]
    첫 문장부터 확 공감이 드는군요.
    저도 그렇거든요. 그런데 사실은 우공말대로 전형적;;이라는 거.

    이글은 퇴근 후에 다시 와서 찬찬히 읽어봐야겠어요.

    2007년 01월 19일 15시 04분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 조금 벗어난 얘기일 수도 있겠지만,
    어려운 대화 중 하나가, [자기 자신과 솔직하게 나누는 대화]라고 생각해요.
    그런 대화를 잘 하는 사람은 엉뚱한 욕구들을 잠재우거나 남의 눈치를 심하게 보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2007년 01월 19일 15시 06분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