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사랑니>를 두 번째로 봤다. 정유미의 불안하고 풋풋한 연기를 한 번 더 보고 싶고, 이 영화에서 겹쳐지는 인물과 시간의 구성을 미흡하게 이해한 면이 있어 한 번 더 보고 싶었다. 다시 보니 정유미의 연기는 더 좋았고, 이 영화의 같지만 다른 인물과 과거-현재-미래의 시간을 뒤섞어 버리는 서사 구조는 정말 인상적이었다. 현재 하고 있는 사랑에서 문득 옛 연인과의 비슷한 상황과 행위를 마주치게 되면 기분이 묘한데, <사랑니>는 이 순간을 잘 포착했을 뿐만 아니라 이것을 통해 사랑이 무엇인지를 끈질기게 묻는다.
이 영화의 시간 개념이 공간적으로 단번에 드러나는 장면은 조인영(김정은 분)이 자기 집에서 러닝머신으로 운동을 하는 장면이다. 한국형 옛집 지붕 아래에 어색하게 놓인 러닝머신과 그 위에서 자연스럽게 운동을 하는 조인영의 모습은 시간이 응축된 공간을 보여준다. 이런 공간은 시간에 의해 교란되고, 주체의 정동에 의해 교란된다. 후반부에 고등학생 이석, 30살의 이석, 정우 그리고 30살의 조인영이 인영-정우의 집에 모여 있는 한 장면에서 공간의 교란은 잘 나타난다. 평상에 누운 30살 이석은 옆에 같이 누워있는 정우에게 나무에 핀 꽃을 보며 “꽃이 피었네” 하고 말한다. 정우는 “꽃이 피었지” 하고 응수한다. 지금까지 30살 이석과 정우와 잘 어울리지 못하던 고등학생 이석도 “정말 꽃이 피었네” 하고 말한다. 그리고 인영과 이석은 마주 보고 웃는다. 고등학생 이석이 본 것은 지난날 모텔에서 인영이 들고 온 난에 핀 꽃이다. 인영과 이석은 다른 꽃을 보며 다른 기억을 느낀 것이다.
이 영화에서 이 세 명의 남성이 한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긴장감이 돈다. 그들이 모두 인영과 사랑하는 관계라는 긴장감과 그들이 각각 차지하고 있는 시간 때문에 그렇다. 그들은 어떤 측면에서는 과거에만 있거나 현재에만 있거나 그래야 하는 존재들이지 같은 공간에 있어서는 안 될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그들은 그 공간에서 모두 ‘동상이몽’을 꾸고 있는 것이다.

공간은 시간과 주체의 정동에 의해 교란된다.
영화에는 하이힐이 몇 번 등장한다. 하이힐을 카메라가 주목하는 장면은 두 번 정도이지만 30살 조인영이 하이힐을 일상 시에도 싣고 있음을 감안한다면 꽤 자주 나온다. 고등학생 이석에 대한 사랑이 옛 첫사랑에 대한 사랑인지 아닌지 고민하던 인영은 영화 중반부에 가면 현재의 고등학생 이석을 자신이 사랑함을 알게 된다. 하지만 이것은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아닌 듯하다. 옛 사랑이 아닌 현재의 사랑이지만 현재의 사랑이 옛 사랑보다 반드시 더 강렬한 것이 아닌 만큼 인영은 옛 사랑에 대한 상념에 빠진다. 혹은 사랑 그 자체에 대한 생각에 빠진다. 이 때 인영은 차 속에서 하이힐을 벗어놓고 있다. 조수석에 하이힐을 비추고 카메라는 인영의 발을 보여준다. 그 발뒤꿈치에는 반창고가 붙어 있다. 그녀는 아픔을 참으면서 하이힐을 신고 있었던 것이다.
하이힐은 분명 여성들에게는 강요된 미적 도구이다. 하지만 이 강요 속에서 여성들은 하이힐을 선택해서 신으며 자신의 미를 찾고 자신감을 갖기도 한다. 사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속에서의 여성은 항상 이중적이다. 온전한 강요가 없으며 온전한 능동성이 없다. 여성들은 이 사이에서 계속 교섭하고 엇나간다. 하이힐은 예쁘지만 아픈 존재이다. 고등학생 인영이 고등학생 이석이 다른 사랑을 택한 것이 너무 슬퍼 눈물로 양호실에 누워있을 때 양호 선생님은 인영을 재우고 실내화를 벗고 하이힐을 신으며 거울에 자신의 다리를 비춰본다. 그리고 30살 인영은 하이힐을 벗고 묘한 사랑에 대한 상념에 빠진다.
인영에게 자신이 인정하게 된 사랑도 이런 하이힐과 같은 존재가 아닐까. 고등학생 이석을 사랑하는 게 현재 조건에서는 손가락질 받는 일이다(‘원조교제’. 영화에서 인영은 이것 때문에 학원 학생들에게 따돌림 당한다). 하지만 이 보다 더 고민인 것은 자신의 안에 있었던 사랑이 계속 변하고 요동치며 뭔지 알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일 것이다. 그녀는 현재 동거남 정우와 옛 사랑 30살 이석, 그리고 현재 새롭게 사랑하게 된 고등학생 이석의 사랑 속에서 아픈 사랑니를 어루만진다. 사랑니. 사랑이라는 말에 붙은 아픈 것이 아니겠는가.
영화 마지막 장면. 맹장 수술을 한 고등학생 인영은 고등학생 정우에게 말한다. “나 다시 태어나면 이석이 되고 싶다”고 말이다. 이 말은 쉬운 말이 아니라 좀 더 곱씹어 보고 있다. 인영은 왜 이석이 되고 싶어 했을까. 그가 되면 그녀는 사랑을 온전히 맞이하게 되는 것일까.

'나 다시 태어나면 이석이 되고 싶어' 그가 되면 그녀는 사랑을 온전하게 맞이하게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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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멋진 감상글인걸? ^^ 나도 몇 년 전에 봤는데, 글 읽으니 새록새록 기억이 난다. 좋았는데..^^
좋은 영화지^^ 두 번째로 보니 첫 번째 때 보이지 않던 대사와 장면들이 조금 보여서 놀랐어^^
우공님. 글 잘 읽고 갑니다. 섬세한 감정선이 흐르고 있는 영화같아요. 저는, 아직 정리가 안되네요, 특히 시간. ㅠ 덕분에 좋은 영화 한 편 봤어요. ^^
저도 시간은 어설프게나마 설명하고 말했던 것이에요. 풀어야 숙제이죠. 이 영화에서 표현되는 인물들의 감정은 참 절묘합니다. 전 대사와 대사 사이에 들어오는 행동들이 특히 그러한 것 같아요. 햐, 말하다 보니 영화 다시 한 번 보고 싶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