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시사’는 역사를 중요한 특징들을 가지고 묘사한다. ‘서유럽 중세’를 상상할 때 떠오르는 대다수의 것이 거시사적 시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장원-농노 관계, 왕과 영주의 계약 관계, 삼포제 등등. 하지만 이런 특징만으로 그 시대인의 삶의 방식과 문화까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혹자는 ‘역사 서술은 일반적일 수밖에 없는 만큼 사람의 미세한 삶의 방식까지 아는 것은 어차피 불가능한 것 아니냐. 한 사건을 통해 그 당시의 사회를 보려는 것은 일반적인 역사를 한 사건으로 환원하려는 행위이지 않은가’라는 질문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미시사’적 역사 서술은 그 당시의 생활을 구체적으로 서술해주고 이로 인해 당시의 생활사를 이해할 수 있는 상상력의 기초를 제공해준다. ‘미시사’는 ‘역사’라는 이름으로 ‘인간’의 불안정하고 다양한 삶의 형식이 가려지는 것을 막아주고, ‘역사’는 (인간의) 삶의 구성임을 다시 확인시켜준다. 이러한 특징은『마르탱 게르의 귀향』에서 잘 드러나는데, 프랑스 각 지방의 재산 제도의 차이, 아르노와 피에르 게르의 갈등에서 드러나는 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충돌 등과 같은 문화적인 갈등 등이 바로 그것이다.
『마르탱 게르의 귀향』, ‘여성’을 말하다.
『마르탱 게르의 귀향』에서 베르트랑드는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그런 만큼 그녀를 둘러 싼 생활 조건 및 그의 심리적 고민들도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런 묘사는 ‘중세 서유럽에서 여성은 남성의 재산으로 속한다.’라는 서술의 단순함을 견제하며 그 당시 여성의 삶을 풍부하게 알 수 있다. 우리는 이 책에서 그녀의 다양한 고민들을 짐작할 수 있다. 91~92쪽에서 베르트랑드의 고민은 얼마나 인간적인가. “창안된 결혼”(70쪽)과 법정 공방에서는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구성하려는 의지, 주체성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이런 의지를 너무 강조하여 주지주의적인 역사 해석을 하려고 하는 것은 무리가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창안된 결혼”은 베르트랑드의 주체적인 의지가 있기도 했지만 프로테스탄트라는 당시의 새로운 기류에 영향을 받은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성의 행위가 주목되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 밖에도 이 책의 특이한 장점은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탐구이다. “그러나 사진도 없고 초상화도 드물고, 테이프 리코더도, 지문 날인도, 신분증도, 출생 증명서도 없고 그나마 교구 기록이 있다 해도 여전히 일정치 않았던 시대에 어떻게 개인의 정체를 의심의 여지 없이 확고히 밝힐 수 있겠는가?”.(94쪽) 이는 “16세기 사회에서 진정한 정체성이란 무엇인가를 결정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리고 20세기를 살면서 역사가가 진실을 추구하는 것 또한 좀처럼 쉽지 않은 일”(한수덕,「미시사의 상상력, 그리고 모호함」, http://www.libro.co.kr/books/book_detai ··· 38033%29 임을 알고 있는 저자 데이비스가 끈임없이 자신의 태도와 역사적 사료를 의심하려는 태도 때문이다. 그는 역사 이해에 있어서 열린 태도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비판
하지만 이 책은 'Her story'일 뿐이라는 점에서 젠더(Gender)적 시선을 견지하는 페미니즘으로부터 비판 받을 수 있는 여지는 충분히 있다. 조금 거칠게 이 사건을 재구성해보면, 사건의 법정에 서게 된 것은 아르노와 피에르 게르의 ‘재산권’ 다툼 때문이었고 그 속에서 베르트랑드는 명목상의 신고인일 뿐 재판의 중요한 ‘참고인’, ‘증인’ 이상은 아닌 것이다. 이것은 그 당시 가부장적 사회 질서의 한 반영이지 않을까라는 지적은 가능할 것이다. 물론, 이런 과정 속에서도 우리는 베르트랑드의 당당한 태도를 접할 수 있으며 이 점을 놓쳐서는 곤란하다. 이점은 이 책의 중요한 미덕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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