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2월 16일. 만 레이 특별전 및 세계사진역사전 전시회가 마지막 날이라고 해서 전시회를 보러 갔다. 전시장에 도착하니 07년 2월까지 연장한다고 하여 김이 팍 새기는 했지만.
듣도 보지도 못한 사진가들의 사진이 많았던 덕에 사진을 보는 눈을 기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이것만으로도 입장료가 아깝지는 않았다.
만 레이 사진은 보며 생각한 것은 "별짓 다 했네"하고 알 수 없는 '거부감'이었다. 이 거부감의 실체를 좀처럼 찾을 수 없었는데, 생각해보니 예전에도 이런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다다이즘 계열의 그림에는 뭔가 모르게 거부감이 생겼던 것이다. 다다이즘이라는 사상에는 관심이 있는데 그 작품들에는 거부감이 들다니. 좀 더 이 기분을 깊게 들여다 볼 필요가.
누구누구의 무슨 사진인지 기억하기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기억에 약간 남아 있는 것을 적바림(='메모'와 같은 옛('우리')말)해보면,
영국의 사진작가 빌 브란트Bill Brandt의 '누드 원근법' 시리즈의 몇 작품과 누드 원근법 이전의 작품들이 인상적이었다. 그의 누드 사진을 보며 다음 문장이 떠 올랐다. 과잉된 원근법을 사용하여 여성의 누드를 왜곡한다. '왜곡'이란 표현이 적절한지는 아직도 고민 중이지만 사진 속 여성들이 뒤틀려 있다는 느낌이 '왜곡'이라는 단어를 떠 오르게 했다. '벗은 여성'이라는 말에 집착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튀틀려고 한 것 같기도 하고, 세상을 여성을 다양한 시선으로 왜곡한다는 것을 말하려 한 것 같기도 하고, 그랬다. 쓰다보니 '왜곡'보다는 '뒤틀림'이라는 단어가 더 적절한 듯 하기도 하다. 이 누드 사진 이전에 찍은 사진들도 전시되어 있었는데, 사진의 소재는 영국의 거리, 집 등의 풍경이었다. 내가 다큐멘터리 사진을 선호해서 그런지 난 브란트의 이 사진들이 느낌이 더 좋았다. 사진을 보다 친구와 두 개의 영화를 이야기했는데, 공교롭게도 그 두 영화다 배경이 영국이었다. <빌리 엘리언트>와 <브이 포 벤데타>. '영국스러움'이 잘 포착되어 있다고 생각해야 할까.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Henri Cartier-Bresson의 작품들도 있었다. 대부분의 사진은 3개월 전 홍대 앞 헌책방에서 구입한 브레송 사진집에서 본 것들이었지만 보지 못한 작품들도 몇 점 있었다. 그 중에서 인상적이었던 사진은 한 여성이 촘촘한 망사같은 검은 천에 아이를 감싸고 서 있는 사진이었다. 안타까움이 전해지는 사진이었는데 그 안타까움 느낌이 너무 강해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유럽에 힘들게 사는 하층민의 어려움이 느껴져 안타까웠던 것 같다. 근데,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뭔가 문제가 있는 감정이었다. 나의 안타까움은 그들과 정면으로 서서 대화하지 못한 '동정'에 안타까움이었기 때문이다. 타자에 대한 대상화된 동정을 항상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짧은 시간에, 즉시, '동정'에 감정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래리 클락Larry Clark이라는 처음 알게 된 작가도 있었다. 짧은 작가 소개를 보니 1970년대 젊은이들의 모습을 찍었다고 한다. 이 날은 작품 두 점이 있었는데 하나는 1971년, 다른 하나는 1970년 작품이었다. 1970년 미국의 분위기는 내가 알기론 반전 운동의 기운이 쇠퇴하고 있었다. 1968 혁명의 기운이 점차 사글라들고 신자유주의의 반격이 시작되는 해. 1969년 우드스탁 공연이 68 혁명의 기운으로 절정에 이르렀지만 그 다음 해의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고 한다. 이때의 젊은이들의 모습들. 호기롭게 전쟁과 국가, 권력에 저항하여 싸웠지만 싸움이 잘 되지 않았던 젊은이들의 모습. 고개를 돌리고 담배를 피우는 한 젊은이 배 위에 올려진 아이가 사랑스러운 것이 아니라 무거운 짐짝처럼 느껴지는 사진과 미국기가 매달린 방에서 권총을 조준하고 있는 허세의 찬 모습에서 난 느낄 수 있었다. 권태. 그래 그것은 권태로운 장면이었다.
만 레이Man Ray 사진들은 무척 많았지만 <오달리스크 키키>라는 작품이 눈에 들어왔다. 검색해보니 오달리스크odalisque(클릭)는 회화사에서는 중요한 것인가 보다. 자료가 엄청 풍부하다. '여성 노예'가 어떻게 그려졌을까. 왜 그렇게 미술에 주요 소재가 되었는가. 좀 더 찾아볼테지만 불편한 사실들을 알게 될 것 같기도 하다. '이국'에 '노예'이며 '여성'이니.
이 사진전을 가야겠다고 마음 먹게 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으젠느 앗제Jean Eugene Auguest Atget의 작품을 볼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의 사진들도 내가 가지고 있는 사진첩을 통해 보았는데, 보지 못한 작품들도 있었다. 그의 사진을 보면 '관조'라는 단어가 생각난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보는 것인데, 그의 사진은 단순히 본다기 보다 '거리를 두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김소월의 시 「산유화」에 보면 '저만치'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시인이 의도한 뜻과 무관하게) 난 이 단어가 앗제의 사진을 보면 떠오른다.
이외에도 이름의 메모한 두 작가가 더 있다. 로버트 메이플소프Robert Mapplethorpe(클릭. 전시회에 있었던 작품은 볼 수 없지만 다른 작품을 구경할 수 있다.), 베르나르드 포콩Bernard Faucon 등이다.
메이플소프는 탄력있는 흑인 남성의 몸을 찍었는데 묘한 '섹시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고, 포콩의 사진에서는 섬뜩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밖에도 내가 미처 감상을 정리하지 못한 숱한 작가들이 있었다. 그들은 각자의 색을 지니고 있었다. 점점 1:1 만남을 선호하게 되는 요즘, 가끔은 만찬처럼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을 한꺼번에 만나는 것도 좋겠구나 생각하게 된다. 특히, 사진처럼 말이 없어서 불필요한 질문을 하지 않는 만남이라면 더욱 좋다. 만일 말을 한다면 그것은 내가 대화를 시도할 때 뿐이다. 그러니 꼭 필요한 것에만 내 힘을 쏟을 수 있지 않겠는가.
07년 2월까지 한다고 하니 한 번 더 가야겠다.
월간 사진의 관련 기사(클릭)
추신1: 브레송 사진에는 아는 사람이 많아서 좋다. 까뮈, 베케트, 사르트르 등...ㅋㅋ 그리고 최근 복간된 『결정적 순간』이 엄청사고 싶다. 정가는 80,000원. 어쩌란 말이냐.
추신2: 일전에 거금을 들여 샀던 사진집을 다시 들여다 보겠다는 생각이 들게 해서 아주 좋았다. 완전 본전 심리인데, 내가 투입한 만큼 그 사진집에서 뽑아내고 말리라. -_-
듣도 보지도 못한 사진가들의 사진이 많았던 덕에 사진을 보는 눈을 기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이것만으로도 입장료가 아깝지는 않았다.
만 레이 사진은 보며 생각한 것은 "별짓 다 했네"하고 알 수 없는 '거부감'이었다. 이 거부감의 실체를 좀처럼 찾을 수 없었는데, 생각해보니 예전에도 이런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다다이즘 계열의 그림에는 뭔가 모르게 거부감이 생겼던 것이다. 다다이즘이라는 사상에는 관심이 있는데 그 작품들에는 거부감이 들다니. 좀 더 이 기분을 깊게 들여다 볼 필요가.
누구누구의 무슨 사진인지 기억하기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기억에 약간 남아 있는 것을 적바림(='메모'와 같은 옛('우리')말)해보면,
영국의 사진작가 빌 브란트Bill Brandt의 '누드 원근법' 시리즈의 몇 작품과 누드 원근법 이전의 작품들이 인상적이었다. 그의 누드 사진을 보며 다음 문장이 떠 올랐다. 과잉된 원근법을 사용하여 여성의 누드를 왜곡한다. '왜곡'이란 표현이 적절한지는 아직도 고민 중이지만 사진 속 여성들이 뒤틀려 있다는 느낌이 '왜곡'이라는 단어를 떠 오르게 했다. '벗은 여성'이라는 말에 집착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튀틀려고 한 것 같기도 하고, 세상을 여성을 다양한 시선으로 왜곡한다는 것을 말하려 한 것 같기도 하고, 그랬다. 쓰다보니 '왜곡'보다는 '뒤틀림'이라는 단어가 더 적절한 듯 하기도 하다. 이 누드 사진 이전에 찍은 사진들도 전시되어 있었는데, 사진의 소재는 영국의 거리, 집 등의 풍경이었다. 내가 다큐멘터리 사진을 선호해서 그런지 난 브란트의 이 사진들이 느낌이 더 좋았다. 사진을 보다 친구와 두 개의 영화를 이야기했는데, 공교롭게도 그 두 영화다 배경이 영국이었다. <빌리 엘리언트>와 <브이 포 벤데타>. '영국스러움'이 잘 포착되어 있다고 생각해야 할까.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Henri Cartier-Bresson의 작품들도 있었다. 대부분의 사진은 3개월 전 홍대 앞 헌책방에서 구입한 브레송 사진집에서 본 것들이었지만 보지 못한 작품들도 몇 점 있었다. 그 중에서 인상적이었던 사진은 한 여성이 촘촘한 망사같은 검은 천에 아이를 감싸고 서 있는 사진이었다. 안타까움이 전해지는 사진이었는데 그 안타까움 느낌이 너무 강해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유럽에 힘들게 사는 하층민의 어려움이 느껴져 안타까웠던 것 같다. 근데,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뭔가 문제가 있는 감정이었다. 나의 안타까움은 그들과 정면으로 서서 대화하지 못한 '동정'에 안타까움이었기 때문이다. 타자에 대한 대상화된 동정을 항상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짧은 시간에, 즉시, '동정'에 감정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래리 클락Larry Clark이라는 처음 알게 된 작가도 있었다. 짧은 작가 소개를 보니 1970년대 젊은이들의 모습을 찍었다고 한다. 이 날은 작품 두 점이 있었는데 하나는 1971년, 다른 하나는 1970년 작품이었다. 1970년 미국의 분위기는 내가 알기론 반전 운동의 기운이 쇠퇴하고 있었다. 1968 혁명의 기운이 점차 사글라들고 신자유주의의 반격이 시작되는 해. 1969년 우드스탁 공연이 68 혁명의 기운으로 절정에 이르렀지만 그 다음 해의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고 한다. 이때의 젊은이들의 모습들. 호기롭게 전쟁과 국가, 권력에 저항하여 싸웠지만 싸움이 잘 되지 않았던 젊은이들의 모습. 고개를 돌리고 담배를 피우는 한 젊은이 배 위에 올려진 아이가 사랑스러운 것이 아니라 무거운 짐짝처럼 느껴지는 사진과 미국기가 매달린 방에서 권총을 조준하고 있는 허세의 찬 모습에서 난 느낄 수 있었다. 권태. 그래 그것은 권태로운 장면이었다.
![]() | ![]() 래리 클락Larry Clark |
만 레이Man Ray 사진들은 무척 많았지만 <오달리스크 키키>라는 작품이 눈에 들어왔다. 검색해보니 오달리스크odalisque(클릭)는 회화사에서는 중요한 것인가 보다. 자료가 엄청 풍부하다. '여성 노예'가 어떻게 그려졌을까. 왜 그렇게 미술에 주요 소재가 되었는가. 좀 더 찾아볼테지만 불편한 사실들을 알게 될 것 같기도 하다. '이국'에 '노예'이며 '여성'이니.
이 사진전을 가야겠다고 마음 먹게 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으젠느 앗제Jean Eugene Auguest Atget의 작품을 볼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의 사진들도 내가 가지고 있는 사진첩을 통해 보았는데, 보지 못한 작품들도 있었다. 그의 사진을 보면 '관조'라는 단어가 생각난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보는 것인데, 그의 사진은 단순히 본다기 보다 '거리를 두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김소월의 시 「산유화」에 보면 '저만치'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시인이 의도한 뜻과 무관하게) 난 이 단어가 앗제의 사진을 보면 떠오른다.
이외에도 이름의 메모한 두 작가가 더 있다. 로버트 메이플소프Robert Mapplethorpe(클릭. 전시회에 있었던 작품은 볼 수 없지만 다른 작품을 구경할 수 있다.), 베르나르드 포콩Bernard Faucon 등이다.
메이플소프는 탄력있는 흑인 남성의 몸을 찍었는데 묘한 '섹시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고, 포콩의 사진에서는 섬뜩함을 느낄 수 있었다.

베르나르드 포콩Barnard Faucon, Le Banquet, 1978.
이 밖에도 내가 미처 감상을 정리하지 못한 숱한 작가들이 있었다. 그들은 각자의 색을 지니고 있었다. 점점 1:1 만남을 선호하게 되는 요즘, 가끔은 만찬처럼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을 한꺼번에 만나는 것도 좋겠구나 생각하게 된다. 특히, 사진처럼 말이 없어서 불필요한 질문을 하지 않는 만남이라면 더욱 좋다. 만일 말을 한다면 그것은 내가 대화를 시도할 때 뿐이다. 그러니 꼭 필요한 것에만 내 힘을 쏟을 수 있지 않겠는가.
07년 2월까지 한다고 하니 한 번 더 가야겠다.
월간 사진의 관련 기사(클릭)
추신1: 브레송 사진에는 아는 사람이 많아서 좋다. 까뮈, 베케트, 사르트르 등...ㅋㅋ 그리고 최근 복간된 『결정적 순간』이 엄청사고 싶다. 정가는 80,000원. 어쩌란 말이냐.
추신2: 일전에 거금을 들여 샀던 사진집을 다시 들여다 보겠다는 생각이 들게 해서 아주 좋았다. 완전 본전 심리인데, 내가 투입한 만큼 그 사진집에서 뽑아내고 말리라.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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