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다>의 사전적 규정
1. 가루, 풀, 물 따위가 그보다 큰 다른 물체에 들러붙거나 흔적이 남게 되다.
2. 일을 드러내지 아니하고 속 깊이 숨기어 감추다.
3. 무엇을 밝히거나 알아내기 위하여 상대편의 대답이나 설명을 요구하는 내용으로 말하다.
4. 어떠한 일에 대한 책임을 따지거나 추궁하다.
이 밖에도 사전을 찾아보면 <묻다>에 대한 몇 개의 정의를 더 볼 수 있다. 그 중 내 미니홈피의 새 이름 <다시, 묻다>의 의미는 위의 네 가지이다.
삶의 흔적이 묻어난 내 미니홈피의 글과 사진을 보며,
내 마음 깊은 곳에 묻어 있는 그것을 찾으며,
내게 묻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묻기 시작했다.
무엇을? 삶을 다시 묻기 시작했다.
일전에, 나에게 묻는 것은 성찰이고, 타인에게 묻는 것은 대화/소통이며, 사회에게 묻는 것은 투쟁이라고 쓴 적이 있다. 그리고 n[앤] 창간준비호 독자모임에서 나에게 묻는 것은 나를 열기 위한 것이고(open), 타인에게 묻는 것은 관계를 맺는 것이며(hyphen), 이 대화는 타인과 나 그리고 이 사이 관계에 숨겨진(hidden) 힘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묻기의 정치학'이 가능하며, 이것이 n[앤]이 해야 하는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회의에 회의를 거듭하여 몰아에 이르는 것과는 다르다. 이것은 그야 말로 관계맺기이며 이것은 절대적인 되기(becoming)의 과정이다.
지금 내게 어려운 점은 묻기에 방식을 찾기이다. 이쯤되면 n[앤]이 지향하는 "내가 묻는 방식"은 한 친구의 말처럼 <내가 사는 방식>, 즉 삶의 양식의 다른 이름임을 알 수 있게 된다. 나는 어떻게 삶을 살 것인가? 나의 삶의 양식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만들 것인가?
친구는 말했다. 내가 나일 수 있게, 사람들이 사람들일 수 있게 사는 것이 꿈이라고. 이 꿈은 어떻게 실현될 것인가? 그는 또 말한다. 나는 나를 사랑한다고. 그럼으로써 그는 제안한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방식이 내가 나일 수 있는 방식이라고. 사람들이 사람들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이 가장 자기다운 방식이라고.
이것은 '사랑'의 일원론이다. 타인을 사랑하면서도 나를 더욱 사랑할 수 있게 되는 '사랑'의 일원론이다. 이것은 타인의 대한 사랑과 나에 대한 사랑이 다른 이원론적 사랑이 아니다. 또한 이것은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며 기쁨을 얻는 '반영의 기쁨'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가 비춰보는 대상은 정태적 거울이 아니라 정동적 사람이기 때문이다(無鑒於水 鑒於人무감어수 감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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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최근 우공의 글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
내가 나를 진정 사랑하게 되면 사람들을 또한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게 될까? 그 사람 일 수 있게? 그리고 그들도 나를 더 사랑하게 될까?
우공도 알 수 없다면..
것도 바람에게 묻자구.
바람에게도 묻고, 나에게도 묻는 중.
같이 묻고, 같이 응답을 생각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