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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재일조선인’이라는 말이 누구를 지칭하는지는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는 듯 하다. ‘조선’이라는 말은 ‘조선시대’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현재 한국에서는 ‘북한’을 떠올리는 단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내게도 이런 혼란이 있었지만 서경식의 구분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재일조선인은 크게 나와 같은 ‘한국 국적 소직자’, ‘조선적 소지자’, ‘일본 국적 소지자’의 세 부류로 나뉜다. 여기서 ‘한국 국적’ 소지자란 사실상, ‘한국 국민’과 거의 동일한 의미이다. 그럼 ‘조선적’ 소지자는 북한의 국민인가 하면 그렇지가 않다. 일본이 조선을 ‘병합’한 1910년대 이후 조선 사람은 ‘야마토大和 민족’과 똑같은 천황의 ‘신민’이 되어, 싫건 좋건 일본 국적을 지니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대략 80년 전에 당시의 내지內地인 일본으로 건너오셨다. 그때 할아버지는 ‘외국인’으로 일본에 이민 온 것이 아니라 일본 국적 소지자라로서 일본국의 영토 안에서 이동했던 것이다.”(20쪽)
이렇게 ‘황국의 신민’이 된 조선인은 일본 패전 이후 일본 국적을 잠시나마 유지하게 되지만, 1947년 재일조선인을 외국인으로 간주한다는 외국인등록령이 선포됨으로써 그들은 국적을 새롭게 하여 외국인등록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시기에 참으로 난감한 문제가 생긴다. 이 문제를 통해 나는 1945년 해방 이후 한국전쟁 전후까지의 역사가 얼마나 복잡했는지를 다시 느끼게 되었다.
“ ‘외국인’으로 간주된 재일조선인들은 외국인등록 수속을 할 때, 자기의 ‘국적’을 신고하고 기입해야 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는 한반도에서 민족분단을 둘러싼 대립이 심화된 상태로, 조선 사람들의 독립국가는 아직 성립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국가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국적을 신고하라는 것이다. 할 수 없이 많은 재인조선인은 국적란에 ‘조선’이라고 기입했다. 그것은 ‘조선’이라는 국가의 국민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조선반도 출신, 조선 민족의 일원이라는 의미, 즉 국적인 아니라 민족적 귀속을 나타내는 기호였다.”(23쪽)
강제로 국적이 바뀐 것도 먹먹한 일인데 다시 기입할 국적이 없게 되었던 것이다. 참 기구한 운명인 것이다. 47년 이후 상황을 생각해보면 상황은 더 막막해진다. 한반도는 분단이 되었고, 일본 내에서는 재일조선인에 대한 배제와 차별이 심해졌다. 그리고 그들의 아이들이 일본, 피식민지에서 태어나 자신의 ‘모어’를 일본어로 삼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그렇게 태어난 그들의 국적은 일본이 아니다.
3. 「GO」는 재일조선인 2세(3,4세?)의 이야기다. 아버지는 ‘국적’을 ‘북한’에서 ‘한국’으로 바꾸려고 한다. 이유는? 브라질에 가기 위해서! 영화에서는 이 부분을 코믹하게 그리고 있다. 북한 서적을 들고 가서 의미심장한 태도로 국적을 바꾸겠다고 하지만 담당자는 ‘북한 국적이어도 여행하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다’며 귀찮은 듯이 대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박박 우기고 난리를 치며 좀 ‘오버’를 하신다. 이 상황은 코믹하게 그려졌지만 현실에서는 그렇게 코믹한 상황이 될 수 없는 일이다. ‘북한 국적’을 가진 이들에게 ‘북한’은 ‘신념’의 또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국적 변환’은 ‘신념을 버린다’라는 말과 같은 말인 것이다. 이것은 「디어 평양」에서 그려지는 아버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조총련의 핵심 활동가 아버지와 어머니를 둔 감독이 아버지의 말과 삶을 중심에 두고 찍은 다큐 형식에 이 영화에서, 아버지는 확고한 ‘김일성주의자’이기 때문이다. 영화 홍보의 카피대로 하자면 ‘자유주의자’ 딸인 감독은 자신과 아버지가 너무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버지와의 대화를 놓치지 않으려고 웃음과 눈물로 노력한다. 이 영화가 끝나고 나는 이 영화에서 보여준 것만으로도 혼란스러웠지만 이 영화에서는 보여줄 수 없었던 그들의 다른 일상적인 생활을 생각하며 혼란스러워했다. 영화에서 감독과 아버지의 대화는 자유스럽게 이뤄지지만 이렇게 대화하기까지 겪었을 과정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어려운 일이었다.
「GO」는 무거운 상황도 무겁게 풀지 않고 상황 전개를 빠르게 치고 나가는 영화다. 그에 반해 「디어 평양」은 천천히 하나씩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디어 평양」이 조금씩 풀어 놓는 이야기는 그냥 듣고 보게 되지만 영화가 끝날 때 처음에 들었던 이야기, 장면 하나하나는 큰 무게로 다가왔다. 오전에 영화를 보고 점심을 먹고, 오후에 송년회에 갔다, 저녁에 조용한 찻집에서 책을 보다 우연히 창문을 봤을 때. 난 울고 있었다. 영화에 여운은 계속 내 몸에 남아있었던 것이다. 올해 초 평화박물관에서 했던 <바그다드는 흐른다>라는 제목에 이라크 전쟁 속의 사람들의 삶을 사진과 그림과 영상과 퍼포먼스로 보고 돌아온 다음 날에도 나는 울고 있었다. 그날 저녁 찻집에서는 이 잊었던 몸-기억까지 한꺼번에 다시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내 앞에는 『디아스포라 기행』이 놓여져 있었다.
4. 한 줄이 넘어가는 문장을 찾는 것이 쉽지 않을 정도로 단문으로 써진 『디아스포라 기행』은 빠르게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한 장 한 장 넘기는 속도는 점점 떨어지고 있었고, 어느새 읽기보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처음에 열심히 치던 줄도 뒤로 갈수록 점차 줄어들다 한 줄도 치지 않게 되었다.
책을 다 읽은 지금 이 책 전체가 풀 수 없는 난제, 아포리아로 느껴진다. 어떻게 이런 일이, 어떻게 이런 통찰을, 어떻게 이런 그림이, 어떻게 이런 작품이...... 계속 탄복하고 가슴 아파하며 한 문장 한 문장을 기억하려 애썼지만 구체적인 문장은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표현할 수 없는 혼란만이 마구 어질러진 책상처럼 남아있었다. 어쩌면 그 혼란은 이 책의 이야기들이 계속 내 안에 들어오지 못하고 내 주위를 돌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국적을 택할 수 없고, 강제 수용소로 끌려가고, 갇히고, 고문당하고, 자살하고...... 이런 것들이 읽히기는 하지만 내 안에 좀처럼 들어오지 못한다. 무서워서 그런 걸까. 아니면 이런 사실들을 이제야 알았다는 것이 부끄러워서 그런 것일까. 나는 이 책의 물음으로부터 도망치려 하는 걸까. 어디로 가려는 걸까. 도망칠 수 있을까......
아직 내겐 똑바로 바라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자꾸 도망가려는 나를 끌어다가 앉혀 놓고 말이다.
추신: 에세이에 무게가 있다면 그것은 삶과 존재에 대한 깊고 넓은 사유의 무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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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잘 읽었네... 당신은 늦게 울음이 터지는 스타일? 납이에 비해서 말야... 청승 맞게 카페에서 혼자 울다니 쯧쯧...
'머리로부터 가슴에 이르는 길이 가장 먼 길이다'라는 선생님 말씀 이 떠오르는 군. 아! 그리고 나 학교에서 서경식씨 본적있다. 언젠가 지하 열람실에 컴터를 잠깐 하실때 뵈었지. 분위기는 글과 달리 조폭같더라고...
청승이긴 한데 내겐 가끔 있는 청승이라 귀중한 것이라오.
사진보니 서경식 씨 풍채가 좀 있으시긴 하더군. ^^
저는 우공의 청승 떠는 면이 마음에 든다는.. ^^;
^^감솨.